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단독]공공의료의 민낯...서울시립병원 5곳에 예방의학과 의료진 달랑 1명

방역전문의 처우 열악해 지원꺼려

전문성 약화·인력 부족 악순환

감염병 사태 터질때만 반짝대책

메르스 5년 지나도 변한것 없어

공공인프라 장기적 투자 나서야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코로나19 전담병원 전환에 대비해 레벨D 보호구 착탈 집중훈련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서울의료원




서울시 산하 5개 시립병원에서 일하는 예방의학과 의료진이 불과 1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예방의학은 감염병의 발생·원인 등을 연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감염병 예방 전문가’로 통하지만 재정 사정이 나은 서울시조차 의료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셈이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예방의학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소위 ‘돈 안 되는 과’인 탓에 전문의 자격을 따는 사람의 수 자체가 연간 15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제도 미비→전공의 기피→전문성 약화→인력 부족’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감염병 사태 당시 반짝 대책이 아닌 장기적으로 공공병원 인프라를 키우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27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립병원인 서울의료원·보라매병원·동부병원·북부병원·서남병원(어린이병원 등 특화병원 제외)에서 근무하는 예방의학과 의료진은 단 1명으로 조사됐다. 1명조차도 서울대병원에서 위탁운영하는 보라매병원 소속이다. 예방의학의 특성상 공공병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의료진이 태부족한 것이다. 예방의학은 감염병 등 위험요인의 분포와 발생 원인, 전파 경로 등을 연구하는 기초의학의 한 갈래다. 감염내과가 감염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는 임상의학이라면 예방의학은 감염병의 예방과 전파 차단에 집중하는 차이가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방의학 의료진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워낙 출신자가 적어 뽑기 힘들다”며 “임상인 감염내과 출신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예방의학과 전공의를 가장 많이 선발했던 해는 2017년으로 16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7명, 9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연간 전공의 진입인원 3,200명 중 0.3%에 불과하다.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 자격을 딸 수 있기 때문에 예방의학과 전문의도 해마다 10명 내외만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 예방의학자의 필요성은 대규모 감염병 사태가 발생했을 때마다 지적됐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해 있던 14번 환자의 역학조사가 응급실만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그나마 일부 접촉자만 격리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역학조사의 범위를 좁히는 바람에 ‘메르스 구멍’이 뚫렸다며 예방의학 전문가를 키워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문제는 5년이 지났는데도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역학조사관은 중앙 소속 77명, 지방자치단체 소속 53명으로 총 130명에 불과한데 재정 사정이 나은 서울시 역학조사관 중에서도 예방의학과 출신은 없다. 의사는 공중보건의 1명에 그친다. 중앙정부인 질병관리본부와 지자체 모두 역학조사관 출신이 대체적으로 수의사·간호사·약사 등이다. 방역 전문가가 태부족인데다 전문의는 거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예방의학이 ‘돈’이 되지 않아 기피한다고 지적한다. 예방의학 특성상 공공의료 분야에서 일해야 하는데 역학조사관의 초봉은 연 6,50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예과 2년, 본과 4년, 인턴·레지던트까지 거친 전문의 처우 치고는 너무 낮아 “차라리 임상을 배워 동네 의원을 차리는 게 낫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A정형외과 전문의는 “예방의학은 기초과학이라 연구를 해야 하는데 돈을 벌려면 제약·약리학 등 논문을 많이 쓸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공공병원 인프라 부족도 의료인들이 예방의학을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최근 공공병원도 지방공기업 성과 체계에 묶여 있어 관련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손상호 전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은 “의료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예방의학과가 진료과로 편입됐지만 수가(의사가 환자에게 수술 등 의료 행위를 할 때마다 받는 비용)가 없다”며 “예방의학과를 설치하더라도 돈을 쓰는 곳일 뿐 버는 곳이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8일 서울의료원을 방문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나면 서울시가 자체적으로 감염병연구센터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등 다시 공공의료 대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책이 얼마나 장기적·연속적으로 이뤄질지 여부다. 손 전 부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대책이 쏟아질 텐데 정권이 바뀌면 또 사라진다”며 “예방의학과 출신이 가는 자리는 정부가 바뀌면 없어지는 자리”라고 꼬집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