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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이야기·섬세한 그림...봉테일은 외조부를 닮았구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외조부 박태원 소설·삽화 재조명

개성 살린 머리 스타일도 닮아







소설가 구보 박태원은 1933년 6월부터 8월까지 신문(동아일보)에 연재한 중편소설 ‘반년간’에서 직접 삽화를 그렸다. /사진출처=박일영SNS


나란히 앉은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 각도, 보도블럭과 전신주 만으로 특별한 분위기를 이루는 텅 빈 거리, 상호와 메뉴까지 상세하게 적은 간판과 전단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박태원(1909~1986)은 글솜씨 뿐 아니라 그림에도 재주가 있었다. 그는 1930년 신문에 연재한 ‘적멸’에 삽화를 그렸고, 1933년 6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중편소설 ‘반년간’에서는 이상범 화백에 이어 14화부터 직접 삽화를 그렸다. 글의 분위기와 내용 전환을 기발하게 포착한 그림은 표현력 뿐 아니라 섬세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영화 스토리보드를 손수 그리며 앵글·세트·효과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는 ‘봉테일’ 봉준호 감독과 흡사하다.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창의적 DNA의 원천으로 외할아버지 구보 박태원이 재조명받는 이유다.

봉 감독이 직접적 영향을 받은 이는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인 부친 봉상균(1932~2017) 교수다. 봉 교수는 한글 코카콜라 디자인이나 지하철4호선 이촌역의 타일벽화 등으로 친숙한 이다. 봉 감독은 어려서 아버지 방에서 본 화집과 작품들에서 충격과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설가 구보 박태원.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반면 봉 감독이 외할아버지를 만난 적은 없다. 박태원은 가족을 남겨둔 채 1950년 월북했다. 그럼에도 둘은 세상에 없던 장르를 만들어 그 속에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담고,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가적 특출함에서 빼닮았다. 박태원의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산책하듯 도시를 걷는 식민지 지식인의 분열적 심리를 독특하게 그린 실험적 소설로,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됐을 때 ‘이런 것도 소설이 되느냐’는 반응을 얻었다. 봉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가 영화광의 지지와 달리 흥행에 참패한 것과 비슷하다. “신선하고 예민한 감각은 반드시 기지와 해학을 이해한다”는 박태원의 말은 봉준호 영화 속 블랙유머와 같은 맥락이다.

구보 박태원과 그의 친구들.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시인 이상이 쓴 박태원의 결혼 방명록.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유족 소장


영화감독 안석주가 남긴 박태원의 결혼 방명록. 구보 박태원은 현재의 봉준호 감독 못지 않은 1930년대 문화계의 핵심인물이었다.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머리 모양에 얽힌 사연도 비슷하다. 봉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만화적 곱슬머리 못지않게 튀는 사진 속 외조부 박태원의 한 일(一)자 앞머리. 신지식인 대부분은 머리를 뒤로 넘기거나 가르마를 타 갈라 붙이던 시절에 박태원의 ‘뱅 스타일’은 이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박태원은 “내 머리터럭은 그저 제멋대로 위로 뻗쳤”던 까닭에 “(머리칼을)이마 위에다 가즈런히 추려 한일자로 짜르는 방법”을 시도했다며 “나의 머리가 그처럼 고집 센 것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봉 감독도 타고난 곱슬머리를 자신의 개성으로 끌어올렸다.

봉준호 감독이 지난 정부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고초를 겪었다면 그의 외조부 박태원은 월북했기에 오랫동안 ‘빨간 딱지’가 붙었다. 작품의 저자명은 이름 한 글자를 가진 ‘박○원’으로 소개됐고, 가족들은 연좌제로 고통받다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북한에서 박태원은 ‘삼국연의’ 등을 썼고 영양실조 등으로 시력을 잃은 뒤에는 구술로 ‘갑오농민전쟁’을 출간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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