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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일인지하 만인지상’ 국무총리 언어의 무게

코로나19 소비위축 타개 위해 신촌 나갔다가

식당 종업원에 "손님 적어 편하시겠다" 농담

야당 "상인에 비수"…식당 사장 "오해 말라"

총리도 "분위기 유화·위로차 편하게 말해"

'해프닝'이라해도 총리는 국정 운영 2인자

총리 역할 날로 커져…'말의 무게' 인지해야

정세균 국무총리가 14일 세종시의 한 식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던 중 잠시 생각하고 있다./연합뉴스




“어떻게 일국의 국무총리가 서민 고통에 ‘염장’을 지르는 발언을 면전에서 대수롭지 않게 늘어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자유한국당 대변인)”

“총리의 부족한 공감 능력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민주평화당 대변인)”

14일 취임 한 달을 맞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설화(舌禍)에 휩싸였습니다. 전일 코로나19로 손님이 확 줄어든 신촌 명물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나갔다가 현장에서 만난 상인에게 건넨 말이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서울 신촌 명물거리를 방문해 화장품 전문점에 들러 점원과 이야기하고 있다./연합뉴스


■신촌 상인 힘내세요! 하러 갔다가…

정 총리는 신촌에서 한 음식점을 들렀습니다. 그는 종업원과 인사를 나누던 중 “요새는 (손님이) 적으시니까 좀 (일하기) 편하시겠네”라고 말했고, 종업원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정 총리는 다시 “마음이 더 안 좋은 거죠. 아마 조만간 다시 바빠질 테니 편하게 지내시는 게 좋아요”라고 재차 위로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을 담은 영상 중 특정 장면이 스틸 컷 형식으로 잘려 자막과 함께 회자 됐습니다. 상인 조롱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급기야 국회에서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야당 대변인들은 일제히 논평을 냈습니다.

총리실은 “전체 영상을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다”며 “앞뒤 맥락이 다 잘렸다”고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정 총리 역시 직접 해명했습니다. 정 총리는 “(음식점 주인이) 내가 국회의원 되기 전 회사 다닐 때부터 (나를) 알았다면서 친밀감을 먼저 표했다”며 “나도 반가워서 편하게 해드리려는 뜻에서 농담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평소에도 여러 자리에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농담을 잘하는 편인데 이런 화법이 오해의 대상이 됐다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도 측면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대화의 딱 한 구절만 도려내어 난도질하는 게 과연 수 십 년간 민생 현장을 누비며 정치 경험을 쌓아 온 일국의 총리를 대하는 온당한 태도인가”라며 “비열하고 악의적인 정치공세”라고 야당을 되레 비판했습니다.

해당 음식점의 사장도 뒤늦게 개인 SNS에 글을 올려 “저나 직원 모두 기분 좋은 하루였다”며 이날 총리 방문이 논란이 된데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가 지난 8일 오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을 찾아 음압격리 병동을 둘러본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취임하자마자 감염병과 전쟁 중인 정 총리

정 총리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습니다.



정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과 맞닥뜨렸습니다. 신임 총리로서 정부 업무 파악을 마치기도 전에 유례없는 질병과 싸우게 됐습니다.

지난 13일에도 하루 종일 내수 진작을 위해 현장을 다녔습니다. 신촌에서 화장품 전문점, 콘택트렌즈 전문점, 커피숍, 음식점을 방문해 물건을 사고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경기도 이천의 국방어학원을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우한 교민 격리를 돕는 근무자들에게 신촌에서 구입한 핸드크림 100개를 선물로 전달한 후 인근 장호원 전통시장으로 갔습니다. 다시 고기와 쌀을 사서 복지시설 등에 보냈습니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대한민국 전체에 경제의 봄이 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와 싸우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내수 위축을 막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닌 하루였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3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우한교민 탑승 항공기 기장, 승무원과 통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는…

하지만 진의가 왜곡됐다면서 마냥 억울해할 수만은 없습니다.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입니다. 조선 시대 영의정이 위로는 단 한 사람, 임금을 모시면서 아래로는 조정의 다른 신하들과 지방 관리, 그리고 만백성을 모두 품었듯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총리가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총리의 지위와 역할이 더 강화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 초대 총리인 이낙연 전 총리는 물론 후임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정 총리에게도 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실제 내치와 외교에서 총리의 활동 공간은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살림 규모와 국제사회에서 지위가 높아지면서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엔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총리는 국내 주요 현장이나 행사에서 정부의 얼굴 역할을 하고,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기도 합니다. 한 예로 2018년 9월 동방경제포럼 당시 이 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할트마긴 바툴가 몽골 대통령과 나란히 섰습니다. 흔히 ‘4강’이라고 불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4개국 중 3개국의 정상과 한 무대에 오른 겁니다. 지난해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총리가 이끌었고, 10월에는 일본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던 중 일본으로 건너가 아베 총리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총리의 권한과 역할이 커지다 보니 총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와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국무회의나 현안점검조정회의는 물론 현장에서 일반 국민을 만난 자리에서도 총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대로 약속이 되고, 정책으로 여겨집니다.

이번 일을 ‘가벼운’ 해프닝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개인의 화법, 악의적 편집, 야당의 오해 탓만 해서도 안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총리는 한 번의 눈빛도, 한 마디의 말도 그 무게가 남다른 자리입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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