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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 건물 현판에 만주문자···곳곳 라오바이싱 '만주족' 흔적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 이야기] <1-1> 창건 600주년 맞는 자금성

청나라가 자금성 차지하며 한자와 병기

황태자 없는 경쟁 체제...동궁도 사라져

건청궁 현판(사진 왼쪽)은 한자와 만주문자가 병기돼 있지만 태화전 현판(오른쪽)은 한자만 있다. 청나라의 자금성 점령 이후 추가된 만주문자가 중화민국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부에서 다시 빠졌다. /최수문 기자




만주족의 청나라가 베이징을 점령한 1644년부터 한족 주도로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까지 267년 동안 자금성과 베이징의 주인은 이민족이었다. 지금은 만주족과 한족이 같은 ‘중화민족’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다른 민족이다. 고구려의 유민이기도 한 만주족은 오히려 우리 한민족과 더 가깝다.

베이징에 오래 거주한 만주족의 흔적은 자금성 곳곳에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판의 만주어 글씨다. 한족의 명나라 때는 당연히 현판에 한자로만 적혀 있었다. 이후 청나라가 자금성을 차지하면서 형태를 바꿨다. 현판에 한자와 함께 만주문자를 병기한 것이다. 천안문 현판에 한자와 함께 ‘압카이 얼허 오부러 두카’라는 만주문자를 함께 하는 식이다. 어디서나 보이는 만주문자는 만주족이 중국을 통치하고 있다는 상징과도 같았다.

현재 자금성 안에는 수백 개의 현판이 있는데 한자만 쓰인 것과 한자·만주문자가 함께 사용된 것 등 두 가지가 있다. 신해혁명으로 다시 한족의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일부 현판을 다시 한자 단독표기로 바꿨다. 일례로 태화전의 현판은 1915년 당시 중화민국 총통 위안스카이가 새로 중화제국 황제에 오르면서 즉위식을 위해 태화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수정됐다.



이외에도 청나라가 시작되면서 자금성에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후계 과정에서 황태자 제도가 사라졌고 자식들이 경쟁을 벌이던 만주족 특성에 따라 만들었던 황태자 숙소(동궁) 역시 필요 없게 됐다. 황제의 침소도 건청궁에서 서쪽에 있는, 보다 아담한 양심전으로 옮기기도 했다.

베이징성 전체로 보면 변화는 더 크다. 만주족이 베이징을 점령하면서 인구구성과 도시의 풍경도 바뀌었다. 17세기 중반 만주에서 중국으로 대거 이동한 만주족을 위해 기존 한족들은 베이징성 내성 전체를 비우고 남쪽의 외성으로 밀려났다. 1911년까지 베이징성의 라오바이싱(일반서민)은 만주족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한족들이 밀려 들어왔고 이후 100여년 만에 이번에는 만주족이 베이징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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