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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치에 "노벨상 박탈해야" 비판 쏟아지는 이유는?

로힝야 사건 재판서 집단학살 혐의 부인

미얀마 군경의 탄압으로 로힝야족 수천 명 사망

수치는 침묵으로 일관...외신 "내년 총선 의식한 결과"

미얀마 민주화 운동 이끌어 노벨평화상 수상

최고지도자 자리 오른 후 집단학살 부정하며 비판 커져

아웅산 수치(왼쪽) 미얀마 국가고문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열린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 종족 말살’ 혐의에 관한 공판에 출석해 피고석에 서 있다. /헤이그=AFP연합뉴스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다.” , “기만적이며 위험하다.”

미얀마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을 향해 국제사회가 쏟아낸 비판이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한때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수치 고문은 어느새 반인류범죄에 침묵하고 이를 옹호한 동조자 처지로 전락했다.

수치 고문에 대한 국제사회의 실망감이 극도로 커진 것은 그가 유엔의 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미얀마군의 집단학살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면서다. 지난 10일(현지시간)과 11일 수치 고문은 네덜란드 헤이그 ICJ에서 열린 ‘로힝야 집단학살’ 재판 최종 심리에서 재판부에 사건 기각을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수치 고문은 마지막 심리에서 미얀마 사법부에 먼저 기회를 줘야 한다며 “미얀마는 이번 사건을 재판부 명부에서 삭제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아프리카의 무슬림 국가인 감비아는 무슬림계 로힝야족이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됐다면서 지난달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했다.

아웅산 수치(가운데) 미얀마 국가 고문이 미얀마 내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집단학살 사건과 관련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 참석차 네덜란드 헤이그로 가기 위해 8일(현지시간) 수도 네피도의 네피도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향하고 있다. /네피도=AP연합뉴스


이에 따라 ICJ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심리를 열었다. 수치 고문은 변호인단을 이끌고 법정에 출석해 미얀마군은 2017년 로힝야 반군의 공격에 대응한 것이라며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6분가량 이어진 최후 진술에서 “허약한 신뢰의 기반을 막 세우기 시작한 공동체 사이에 의혹을 만들고 의심을 심거나 분노를 조성하는 조치는 화해의 기반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치 고문은 당시 충돌 과정에서 국제인도법 위반이 있었다 하더라도 집단학살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9월 12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 있는 난민촌에서 로힝야족 난민들이 음식을 받기 위해 손을 뻗고 있다. /콕스 바자르=블룸버그


감비아가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제소한 사건은 2년 전 미얀마 군경이 자국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수천 명 살해하고 이로 인해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이 피난을 가게 된 사태를 가리킨다. 미얀마군은 2017년 라카인주에서 종교적 탄압에 반발한 로힝야족 일부가 경찰 초소를 공격한 이후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집단 성폭행, 학살, 방화가 곳곳에서 일어나 로힝야족 마을은 초토화됐으며 그 여파로 로힝야족 70만 명 이상이 방글라데시로 건너가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다.

군부의 강경 대처로 수천 명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지만 수치 고문은 미얀마군의 집단학살을 부인하며 침묵을 유지해왔다. 로힝야족에 대한 강경 조처를 반대하지 않는 미얀마 다수민족인 불교도들의 지지와 미얀마 정부의 권력을 의식한 결과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수치 고문이 ICJ 재판에서 미얀마를 변호함에 따라 도덕적 신뢰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내년에 있을 총선을 위해 지지세를 늘리려고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이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열린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학살 혐의 마지막날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헤이그=로이터연합뉴스


수치 고문을 향해 비판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미얀마를 ICJ에 제소한 감비아 측은 그를 향해 “당신의 침묵이 발언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며 “당신은 한 차례도 강간(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범죄 혐의 가운데 하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의 동아시아 지역 담당자 니콜라스 베클린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수치 고문은 로힝야족에 대해 미얀마가 자행한 범죄의 심각성을 축소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는 범죄 혐의를 언급하지도 않았고, 폭력의 규모를 인정하지도 않았다”며 “이 같은 부인은 의도적이고, 기만적이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아일랜드 일간 아이리시타임스는 사설에서 “수치의 자세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며,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수치 고문은 국제앰네스티로부터 2009년 수여 받은 최고 권위의 인권상 ‘양심대사상’을 지난해 박탈당했다. 당시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을 통해 “오늘날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인권 보호를 상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양심대사상 철회 이유를 밝혔다. 한국의 5.18 기념재단도 지난해 12월 그에게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박탈했다.

지난 2015년 11월 9일(현지시간)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승리한 후 양곤에서 그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한 여성이 들어보이고 있다. /양곤=블룸버그


이처럼 수치 고문을 향해 국제사회가 비판의 강도를 높인 데는 한때 미얀마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그에 대한 실망감이 깔려 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였던 아웅산의 딸인 아웅산 수치 고문은 군부 독재에 반대하는 ‘8888항쟁’에 참여해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부상했다.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수치 고문은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2015년 총선을 통해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그런 그가 자국군의 집단학살을 옹호하고 두둔하는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수치 고문이 ICJ 재판에 출석해 미얀마군의 집단학살 혐의를 부인했던 10일은 28년 전 그의 장남이 노벨 평화상을 대리 수상한 날이기도 하다.

ICJ 재판 시작 전날인 9일 인도 아동인권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를 포함한 노벨평화상 수상자 8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수치 고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수치 고문이 자국군의 집단 학살 등 혐의를 규탄하는 대신, 잔혹 행위가 일어난 사실 자체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ICJ에서 미얀마를 유죄로 판결해도 수치 고문을 재판에 세우거나 당시 군부 인사들을 강제로 체포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로힝야족 사태를 막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취하지 않고 이에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은 수치 고문을 늘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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