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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또다시 실패의 길 걷는 북핵협상

남북·북미 비핵화 개념부터 다르고

전체 로드맵도 없이 깜깜이 협상

선거 앞둔 한미 손쉬운 합의 저울질

이래서는 26년전 실패 되풀이할 뿐

오철수 논설실장




북한 핵시설에 대한 사찰문제로 시끄럽던 1991년 12월31일 남북한은 중요한 합의문을 도출해냈다.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성명’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저장·사용 금지와 비핵화 검증을 위한 상호사찰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듬해 3월19일 판문점에서는 이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JNCC)가 열렸다. 그러나 JNCC는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사찰 범위와 방식을 둘러싸고 이견이 노출된 것이다. 한국은 상호주의에 입각해 동수개념의 사찰을 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한은 남한 내 모든 미군 시설에 대한 사찰을 요구하면서 북한 내 핵시설은 영변에 국한하겠다고 고집했다. 이후 몇 차례 이어진 회담에서도 논의는 겉돌았다. 비핵화 검증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할 상호사찰이 회담의 목표가 돼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결국 북한은 1993년 3월12일 팀스피리트 훈련을 트집 잡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1차 북핵 위기를 낳았다. 북핵 문제를 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핵 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연말 시한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과 북한 간에는 대결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7일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폐쇄를 약속했던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위성발사장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관련 시험을 강행하자 미국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북한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며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북핵 협상은 왜 계속 실패하는 것일까. 그건 비핵화와 관련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비핵화의 개념부터 차이가 있다. 남북과 북미는 그동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실천을 약속했지만 그게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를 북한에 있는 과거·현재·미래의 핵무기와 시설을 없애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미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핵 부재를 선언한 후 냉전시대 한국에 있던 미군 전술핵무기는 모두 해외로 옮겨졌고 이제 한반도에서 핵은 북한에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미군에까지 확대 적용하면서 괌에 있는 미군의 전술핵도 없애야 한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한마디로 동상이몽이다.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와 로드맵이 없는 것도 협상을 어렵게 한다. 핵 협상이 성공하려면 비핵화의 최종상태에 대한 합의와 그 이행을 위한 로드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다음에 세부 실행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한데 지금 논의과정에서는 최종상태는 물론이고 전체 로드맵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그저 이행 방안 등을 놓고 힘겨루기만 하고 있다. 큰 줄기가 잡히지도 않았는데 지엽말단에 매달리고 있으니 협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중국 전국시대에 쓰인 ‘열자(列子)’에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라는 말이 나온다.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었다는 말로, 자잘한 것에 매달리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핵 협상은 잔가지에 집착하면서 큰 줄기를 놓치고 있다. 비핵화 수단이 돼야 할 핵 사찰이 핵 협상의 목표가 돼버린 26년 전의 상황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래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어차피 북한 비핵화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곳곳에 숨겨진 핵무기와 시설을 확인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검증하고 최종 폐기하기까지 최소 수년, 길게는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조급증은 금물이다. 어렵더라도 긴 호흡을 갖고 제대로 된 길로 가야 한다. 한국과 미국이 내년 선거에 연연해 지엽적인 것에서 손쉬운 합의를 모색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큰 그림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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