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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2년 뒤 핵폐기물 둘 곳 없어…"원전 3기 셧다운 되면 정부가 책임 질 건가"

■방폐장 '폭탄돌리기' 월성 원전을 가다

폐연료봉 연 5,000다발씩 쏟아져…포화율 94%

원안위, 43개월 심사하고도 석연찮은 증설 '보류'

지역의견수렴도 파행…무대책에 해법 찾기 난망

주민반발에 9차례 실패한 고준위 방폐장 축소판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이 포화를 앞둬 원전 3기가 셧다운 위기에 몰렸다. 예상 포화 시점이 오는 2021년 11월이어서 최소 19개월이 소요되는 맥스터 증설공사 기간을 고려하면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제공=월성원자력본부






출입 절차부터 까다로웠다. 보안각서에 서명한 게 방문 3일 전이었다. 지난 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북문. 신원확인 후 기자는 휴대폰 카메라 렌즈를 검은 테이프로 봉인했다. 국가보안시설이라 일체의 사진촬영이 금지된단다. 입구를 통과하자 원자로 6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70만㎾급 중수로 4기(월성1~4호기)와 100만㎾급 경수로 2기(신월성 1·2호기)다. 바닷가 반대편 구릉을 깎아 만든 야적장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빼곡히 차 있었다. 발전소 핵심구역이자 방사선관리구역인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다. 보안 체크는 또 이어졌다. 이번에는 휴대품이 탈탈 털렸다. 안전모를 쓰고 삐삐처럼 생긴 휴대용 방사능측정기(ADR) 2개를 방호복에 달고서야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다.

월성의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 수조에서 6년간 보관하다 이곳으로 옮겨진다. 육상의 건식 임시저장시설을 운영하는 곳은 국내에서 월성이 유일하다. 워낙 많은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월성 1~4호기는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는 중수로다. 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경수로가 15~18개월마다 교체하는 데 비해 중수로는 거의 매일 갈아 끼운다. 무게 24㎏, 길이 50㎝의 원통형 핵연료 다발이 하루에 16~24개씩, 연간 5,000다발쯤 쏟아진다.

월성원전에 장착하는 중수로용 핵연료 모형. 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쓰는 경수로와 달리 중수로는 천연 우라늄을 사용한다.


중수로의 산실 월성원전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6,000억원을 들여 보수·정비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용후핵연료 포화가 임박해 나머지 중수로 3기가 모두 가동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41년 원전 역사에서 초유의 상황이다. 월성본부는 1992년부터 건식 임시저장시설을 운영해왔다. 시설은 두 가지다. 원통형 사일로를 ‘캐니스터’, 박스형 저장시설을 ‘맥스터’로 일컫는다. 맥스터의 집적도가 3배 이상 높다. 월성본부는 네 차례에 걸쳐 건설한 캐니스터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맥스터 7기를 2010년부터 운영해왔다. 빌딩 2층 높이의 맥스터 옥상에 올라가면 핵물질을 감독하는 국제에너지기구(IAEA)의 봉인장치가 설치돼 있다. IAEA 감시 카메라도 있다.

문제는 맥스터 6기는 이미 사용후핵연료가 가득 들어찼고 남은 1기조차 절반쯤 차버렸다는 점이다. 월성의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은 오는 2021년 11월. 문동석 사용후핵연료 팀장은 “중수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인접한 신월성 경수로 수조에 보관할 수 없고 밖으로 옮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호환성이 없거니와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면 지역주민의 극렬한 반대에 부닥치기 때문이다.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설을 확충하거나 원전을 멈추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증설공사에는 최소 19개월이 걸린다. 셧다운(가동 중단)을 막을 골든타임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구폐쇄된 고리 1호기 수조의 사용후핵연료. 중수로인 월성원전은 습식 저장시설에서 6년간 냉각한 뒤 육상의 건식 저장시설에 임시보관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원전 감독기관의 증설 인허가와 주민 공론화 작업은 하세월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3년7개월 동안의 심사 끝에 지난달 22일 증설 여부를 안건으로 상정했지만 ‘보류’ 결정을 내렸다. 자료 부족 등이 이유라지만 석연찮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시간 끌기 내지 눈치 보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존 맥스터 신설 때 1년7개월이 소요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같은 장소에서 처음 짓는 것도 아닌데 4년 가까이 심사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월성원전과 가까운 동경주 주민들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원전 1기가 멈추면 연간 150억원의 각종 지역 지원금이 끊긴다. 지원금은 발전량에 비례한다. 월성본부 초입의 감포읍 주민자치위원회 최학렬 위원장은 “원안위가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결론을 내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든다”며 “월성 2~4호기가 가동 중단되면 정부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주 시내에서 월성본부로 들어가는 31번 국도변에는 원안위의 늑장심사를 성토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지역 여론 수렴은 더 큰 난제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확정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정책 로드맵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이를 담당할 재검토위원회가 올 5월 발족돼 원전 5개 지역별로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갔다. 가장 다급한 경주시는 지난달 21일 재검토위와 협약을 맺고 맥스터 증설 여부를 결정할 하위 실행기구를 발족시켰다. 하지만 출범 첫날부터 파행을 겪으면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출범식은 지역주민과 탈핵 시민단체가 충돌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실무를 맡은 이규익 경주시 원자력정책과장은 “내년 2월까지 찬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환경단체는 경주실행기구는 물론 재검토위의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월성 해법은 현재로서는 안갯속이다. 여론 수렴 과정은 정부-재검토위-경주실행위로 이어지는 하청·재하청 구조여서 컨트롤타워도 없고 월전 3기 셧다운 충격을 흡수할 ‘플랜 B’도 없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관여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대책 없이 시간만 끌다가는 전기요금 인상 압박만 가중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2004년 부안 주민들이 부안읍사무소 앞에서 고준위 방폐장 백지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부안 사태’로 고준위와 중저준위 방폐장을 분리 건설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폭풍 전야의 월성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난맥의 축소판이다. 정부는 1983년부터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시도했으나 주민 반대로 아홉 차례나 실패했다. 안면도(1990년)와 굴업도(1994년), 부안 사태(2004년)로 홍역을 치른 결과 역대 정권마다 내 임기만 넘기면 그만이라는 ‘님토(Not In My Term of Office·NIMTO) 현상’을 낳았다. 이른바 방폐장 폭탄 돌리기다. 하지만 더 이상 외면하거나 사업 추진 결정을 미루기 어려워졌다. 월성 해법을 찾더라도 한빛(6기)과 한울(6기)·고리(4기) 원전은 2029년부터 1년 시차를 두고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른다. 결국 월성처럼 발전소 내 임시저장시설을 마련하거나 원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2016년 로드맵에는 2028년까지 부지를 확보해 2035년 중간저장시설, 2053년 영구처분시설을 각각 가동한다는 일정이 담겼다. 이대로 추진된다 해도 사용후핵연료가 꽉 들어차는 16기 원전 가운데 한빛 4~6호기와 한울 3~6호기 등 7기는 설계수명을 다 채우기 전에 셧다운 위기에 처한다.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16년 로드맵이 미비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됐다”며 “그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각계의 주장은 나올 만큼 나왔으니 이제는 실행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 내에서 정책을 확정하고 정권의 부침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공론화 절차와 추진 일정, 비용 부담 원칙 등을 담은 법제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주=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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