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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무기력에 허우적댔던 20대…제 딸이 삶의 의지 북돋았죠" [대한민국 엄마를 응원해]

■한부모가정 수기공모 입선 - 박혜미씨

험난한 진학·취직에 삐딱한 시선

아이 생기고 따뜻한 세상 보게 돼

편견없는 낯선 소통에 가끔 울컥

'육아 에세이' 작가 되는 것이 꿈

박혜미씨의 딸이 새롭게 이사온 집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박혜미씨




“20대 때 무기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저를 딸아이가 세상으로 이끌어줬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일이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립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열심히 돈을 벌어 아이와 여행도 가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본지와 한샘이 공동 주관한 ‘제1회 한부모가정 수기공모전’에서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로 입선한 박혜미(32)씨는 24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딸이 생긴 후 삶의 의욕이 점점 커지고 있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신기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20대 시절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 박씨는 “진짜 되는 대로 살았던 것 같다”며 “20대 중반 큰 실패를 겪고 오랫동안 취직을 하지 못해 집에만 틀어박힌 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취직을 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회사도 없었다. 그는 “어릴 때는 부모님이 공부에 대한 기대심리가 컸다”며 “그러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자 한동안 부모님 앞에서 숟가락을 드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로 가족 내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전했다.

악순환은 반복됐다. 이미 친구들은 사회에서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었고 뒤처진 자신의 모습에 사회와는 더 단절돼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며 “아르바이트 중 돈벌이가 그나마 되는 물류센터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딸아이의 생부를 만나 임신을 하게 됐다. 임신 중에 잦은 다툼으로 생부와 헤어졌다. 순식간에 사회에서 말하는 미혼모가 된 것이다. 박씨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생부와 많이 부딪쳤다”며 “생부와 헤어지면서 주위에서는 아이 양육을 포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씨의 모성애는 누구보다 강했다. 그는 “아이를 입체 초음파로 만나던 날 누가 봐도 나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의 엄마가 꼭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혜미씨와 달이 서로 손을 잡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박혜미씨


무기력하고 좌절 속에서 보낸 20대를 지나 30대가 되고 아이를 낳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부정적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딘가 깊은 곳에서 강인한 힘이 나오고 있었다. 박씨는 “아이가 돌이 채 되지 않아 지금은 일을 쉬고 있지만 예전처럼 ‘나를 써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난 평생 가난하게 살겠지’와 같은 생각은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아이만 조금 크면 당장 돈을 벌고 이 가정을 이끌어나가겠다는 의지가 샘솟은 것이다.

새로운 경험도 늘어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어느 젊은이들처럼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거리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와 엄마를 바라본다. 어떤 사람은 웃으며 또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면서 박씨는 예전과 달리 처음 보는 사람과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예전에는 어색한 상황이었겠지만 이제는 이러한 낯선 소통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처럼 낯선 소통이 반갑기도 하다. 김씨는 “아직 부모님은 제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시고 주변 사람들은 내 미래를 걱정한다”며 “처음 본 사람들은 편견 없이 순수하게 격려해주는데 이는 아이를 낳고 처음 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가끔 김씨는 울컥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한 따뜻함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최근 고향에서 먼 바닷가로 아이와 이사를 갔다. 그는 “올 여름 LH전세임대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동네 밖에서 사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아이와 살 집을 찾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 부동산을 방문하고 전세임대주택을 선택해 고향과 정반대인 바닷가 마을로 새 둥지를 틀었다.

박혜미씨와 딸이 새로 이사 온 아파트 외부 모습. /사진제공=박혜미씨


어쩌면 뻔한 것들도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 이사 온 바닷가는 예전 같으면 단순한 해수욕장이었다면 이제는 아이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박씨는 “아이가 일어나면 둘이서 함께 바다를 구경하고 뛰노는 상상을 한다”며 “이사 온 집에서는 하루 동안 뭘 할지, 집 앞 공원에서 어떤 놀이를 할지 상상한다”고 설명했다.

홀로 아이를 키워도 매일매일 행복한 일이 더 많다. 그래도 일을 안 하니 생활비가 부족해 힘든 점도 있다. 박씨는 부족하지만 주위에서 많은 지원을 해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한부모수장과 아동양육수당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며 “아이가 처음에 인큐베이터에 있어 치료비가 부족했는데 한 미혼모단체에서 도와줘 아이를 잘 치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기관이나 주위 여러분들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많은 고비를 이겨내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많은 분들이 도와줘 여기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행복한 순간도 많아졌다. 그는 “아이가 막 4개월이 됐을 때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아침에 아이랑 꾸벅꾸벅 조는데 누워 있던 아이가 손으로 내 이마를 치고 코와 입을 만지고 있었다”며 “아이가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듯이 손으로 더듬는데 아직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부터 에세이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며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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