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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대규모 열병식으로 약점 감추려는 中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국가자본주의로 역동적 변화 속
개인숭배 등 마오쩌둥주의 회귀
대중 반발없이 통제 유지 안간힘

  • 2019-10-07 17:23:44
  • 사외칼럼
[해외칼럼] 대규모 열병식으로 약점 감추려는 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던 대규모 열병식을 지켜봤다. 소원을 푼 셈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장엄한 군사 퍼레이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퍼레이드 장소 역시 워싱턴이 아닌 베이징이었다.

알다시피 트럼프는 2018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만방에 과시할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할 것을 국방부에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무력시위에 9,200만달러가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자 트럼프는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소박한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없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그는 수백대의 탱크와 꽃차, 전투기와 미국 미사일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핵미사일까지 총동원해가며 요란스러운 무력시위를 펼쳤다. 사열식 도중 시 주석이 ‘동지들’을 외치자 장병들은 우렁찬 함성으로 ‘지도자 동지’를 연호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트럼프는 몹시 부러웠을 것이다. 열병식이 끝나기 무섭게 트럼프는 시 주석에게 축하의 뜻을 전하는 트윗을 날리는 등 평소와 달리 우호적 제스처를 취했다. 시 주석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집권 이후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정치적 통제와 억압을 강화했으며 마오이즘(Maoism)의 부활을 포용했다.

이 같은 과거로의 회귀를 무엇으로 설명할까. 최근 중국 시민을 대상으로 77차례의 심층 인터뷰를 실시한 피츠버그대와 미시건대의 정치학자들은 일부 중국인들이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결론지었다. ‘동시대 중국의 ‘붉은 추억’ 이해하기(understanding ‘Red Memory’ in Contemporary China)’라는 보고서의 공동저자들은 이를 중국 사회의 모든 부문에 소용돌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낸 현기증 나는 성장과 세계화 이전의 보다 더 단순하고 풋풋한 시절에 대한 ‘반사적 향수’로 묘사한다. 달리 말해 일부 중국인들은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이념과 노래·독트린에 대한 되살아난 관심을 서구인들은 의아하게 여긴다. 결과적으로 마오쩌둥이야말로 대약진 정책에서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 최대의 위기상황으로 중국을 밀어 넣은 장본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요즘 같은 부단한 변화의 시기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지극히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하다.

10년 전 충칭시 당 서기였던 보시라이는 혁명가와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대규모 집회를 조직했다. 후일 보시라이는 각종 비리혐의로 기소돼 투옥됐지만 시 주석은 그의 접근법을 그대로 모방했다.

최근 ‘중국의 홍위병: 극단주의의 귀환과 마오쩌둥의 재탄생(The Return of Radicalism and the Rebirth of Mao Zedong)’을 새로 펴낸 국제문제전략연구소(CSIS)의 주드 블란체트는 “지난 수십년에 걸쳐 우리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발생한 심각한 분열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불만을 가진 당 내부 인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소련의 붕괴를 지켜본 공산당은 자신의 왼쪽 옆구리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듯한 허전한 느낌을 갖고 있으며, 현재 국가의 진행방향에 대해 베이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국의 사회주의 열망과 권위주의적인 국가 자본주의 사이의 거리를 지적하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사실 시 주석도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무너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이 과거의 지도자들과 이념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활한 마오쩌둥주의의 핵심적인 측면은 개인숭배로의 회귀였다. 집권 초반 시 주석은 ‘어버이(Papa Xi)’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이후 그는 종신통치를 위해 주석의 임기제한을 철폐했고 자신의 철학을 마오쩌둥 사상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집단지도체제라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폐기했다.

이 모두는 덩샤오핑이 지녔던 비전의 완전한 뒤집기다.

중국 경제의 현대화로 이어진 1980년대의 개혁을 주도했던 덩샤오핑은 이탈리아 언론의 전설로 꼽히는 오리아나 팔라치와 했던 두어 차례의 인터뷰에서 놀랄 만큼 솔직한 견해를 털어놓은 바 있다.

팔라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마오를 찬양하면서도 대약진 정책과 문화혁명 등을 그가 저지른 최대의 실책이라고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앞으로 같은 실수가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느냐는 팔라치의 끈질긴 질문에 덩샤오핑은 마오의 개인숭배와 후계자 직접 지명, 종신임기가 실책의 근본 원인이었다며 새로운 중국에서는 그들 중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덩샤오핑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했다.

미국인들은 중국을 거대한 단일체 국가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공산당의 일당독재와 장엄한 군사 퍼레이드는 이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사실 중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는 방대하고 복잡한 사회다. 시 주석은 대중의 반발을 불러오지 않은 채 이들을 하나로 묶는 한편 역동적인 사회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시 주석이 퍼레이드를 통해 요란스럽게 과시한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홍콩 소요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투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국 지도자들을 통렬히 비난하고, 대통령들의 비리를 조사하며 군사 퍼레이드를 조롱하고, 그들의 과거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정도로 자신만만한 사회는 엉망진창이고 혼란스러우며 분열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들이야말로 놀라운 회복력과 안정성을 지닌 건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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