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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편가르지 말자

성행경 사회부 차장





경기 의왕시에서 분당으로 넘어가는 청계산 골짜기에 자그마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하우현성당이다. 성당이 자리 잡은 원터마을은 19세기 초반부터 조선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내던 동네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명 서몰례)는 지난 1865년 한국에 부임, 이듬해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이곳으로 몸을 피했다가 체포돼 서울 새남터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사제관 앞뜰에 세워진 볼리외 신부의 동상 속 앳된 얼굴에서 박해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하우현성당을 찾은 얼마 전에는 마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이었다. 주임신부는 미사에 참석한 교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정하상 성인의 삶을 기억하며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후손들에게 잘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론했다. 신앙심이 깊지 않은 탓에 신부의 강론은 멀고 아득했다. 하나뿐인 목숨까지 잃으면서 지켜야 할 정도의 신앙심은 어떤 것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한 주 동안 남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되돌아봤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한 삶을 살면서 착하고 진실한 척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탓이오’를 세 번 외쳤다.

또다시 거리와 광장으로 시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치인들은 편 가르기를 하고 분열을 조장한다. 내 편이 더 많다면서 상대방을 조롱하고 적의에 찬 언어를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진영마다 개혁과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기실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누군가가 물러난다고 해서 이 싸움이 그냥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서로 싸우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어느 편에 섰다고 해서 상대방을 능멸하지는 말자. 개혁을 원한다고 정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정의를 부르짖는다고 해서 개혁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한번 넘어진 곳에서 자꾸 넘어진다.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고착화하고 기득권의 벽은 여전히 강고하다. 공정과 정의는 언사로만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네 편 내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거꾸러뜨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층 더 진전시켜야 한다.

천주교인들은 미사 도중에 보편지향기도를 한다. 교회와 이웃·지역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면서 늘 빠지지 않는 대상이 위정자다.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이 나라 정치인들이 사사로운 욕심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라고 빈다. 정치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이를 치유하는 것도 결국 정치다. 늘 배반당하면서도 기도를 멈출 수는 없다. 보다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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