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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칼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현대화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나섰지만

대부분 무기계약직으로 귀결 한계

직무 중심 인사관리 시스템 구축에

정책역량 집중하는 편이 더 효과적





2000년을 전후해 비정규직이 새로운 노동문제로 부각할 때만 해도 외환위기 이후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 곧 정상화되리라 예상했다. 이전에는 길어야 2~3년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1년 단위 기간제로 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반복갱신으로 무기계약 비슷하게 고용이 유지돼왔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 정도로 인식됐다.

2015년 경제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비정규직이 3년 후 정규직이 된 비중을 보면 한국이 유난히 낮다. 독일과 영국·네덜란드는 60~70%에 달하지만 한국은 22%에 불과하다. 징검다리가 아니라 함정이 된 것이다. 2004년 이후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공공 부문에서는 두 차례(2004·2017)에 걸쳐 파격적인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했다. 비정규직 사용을 직접 규제하는 법도 제정됐고 법원은 사내 하청과 불법파견에 대해 엄정하게 판결해왔다. OECD 국가 중에 우리만큼 비정규직 줄이기에 매달린 나라도 없다. 그러나 처우가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만연한 비정규직 고용 관행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근로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고 형식은 정규직이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사내 하청도 많다. 어찌 보면 비정규직을 만들어내는 노동시장 질서는 그대로 둔 채 법과 정부 의지만으로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교훈도 있다. 2004년 이후 공공 부문 정규직화 방침에 따라 비정규직을 없애려고 했지만 대부분 무기계약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공 부문 무기계약직은 이미 21만명에 달하고 이번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15만명가량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가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노동계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무기계약직으로라도 본사 직고용을 원한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예산을 투입하며 드라이브를 걸어도 결국은 무기계약직으로 귀결된 것이라면 이것을 한계라고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해도 이럴진대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을 없앨 다른 묘책이 있을까 싶다.



비정규직 고용이 일시적 일탈이 아니고 상시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된다면 차라리 비정규직 고용을 새로운 유형의 시장으로 정비해 나가는 방법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공공 부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청소나 시설관리 또는 조리 등 몇몇 직군에 비정규직이 집중돼 있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시장은 채용이나 임금, 인사관리 모든 면에서 직무 중심으로 작동되고 있다. 이는 공공 부문의 정규직이 공채와 연공 중심으로 관리되는 것과 본질적 차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직무 중심의 인사관리 시스템을 갖춰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든 사례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교통공사의 자회사인 ㈜메트로환경이나 페덱스코리아 등은 청소나 항공화물 운송이라는 직무 특성에 맞게 직무 중심의 채용과 임금관리를 통해 다른 기업들과 달리 오래전부터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공공 부문 정규직화 과정에서도 수원시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이런 방식의 정규직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30인 이하 기업의 고용형태는 정규·비정규의 구분이 분명치 않고 임금과 인사관리에서도 대기업의 연공체계와 같이 일관된 시스템이 정비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통념을 바꾸는 게 맞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기업 노동시장을 직무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현대화하는 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편이 더 미래지향적이다. 비정규직이 집중돼 있는 직업군에 대한 직무분석과 직무체계 정비,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경력관리 서비스의 개발 그리고 직무등급별 시장임금 정보 인프라의 구축 등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투자야말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앞당기는 방책이 아닐까. 이것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줄이고 공정임금체계를 확립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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