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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이거 실화냐" 당신이 되묻는 이유

■진실의 색(히토 슈타이얼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

다큐멘터리가 100% 삶 자체를 반영하진 못해도

진실과 허구 사이 불확실성이 다큐의 영향력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CNN의 한 특파원은 전쟁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이제까지 보신 적 없는 영상”이라며 흥분했지만 정작 화면에 비친 것은 희뿌연 녹회색 뿐이었다. 어른거리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의 말처럼 ‘생생하기’ 보다는 추상 화면에 가까웠다.

영상작가 겸 저술가인 ‘진실의 색’의 저자 히토 슈타이얼은 ‘다큐멘터리즘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의 첫 질문을 이 장면으로 시작한다. 종종 우리는 진실일수록 선명하고 분명할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을 화두로 그 불확실성에 대한 회의와 오히려 그것이 갖는 가치를 더듬어 간다. 다큐멘터리의 현실 묘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한다고 믿지만, 또다른 일부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묘사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권력 의지라고도 한다.

저자는 CNN이 보여준 흐릿한 영상 등을 “거칠고, 점점 더 추상적인 ‘다큐멘터리적인’ 영상들”이라며 “리얼리티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을수록 영상들은 그만큼 더 흐릿해지고 더 흔들리는 이 현상을 ‘현대 다큐멘터리즘의 불확실성 원리’라고 불러보자”고 제안한다. 비유하자면 멀리서 또렷하게 보이던 것이 근접 촬영하거나 현미경을 들이댈수록 흐릿해지고, 볼 수 있는 범위 또한 의도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척자로 불리는 러시아 감독 지가 베르토프는 “삶이여, 있는 그대로 영원하라”를 외치며 다큐멘터리가 실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처럼 자부했지만 그것은 작가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라는 이 짧은 문구는 삶이 전혀 다른-가짜인, 겉모습뿐인, 날조된-것일 수도 있으리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며 “삶은 그렇게 ‘있는 그대로’ 그림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삶이 이미지가 되는 순간, 그것은 삶 자체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타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숱한 화가들이 현실의 재현을 위해 화폭 위에서 발버둥 쳤음에도 그림이 ‘사과’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렇다면 진실의 고발자를 자처하던 다큐멘터리는 힘을 잃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다큐멘터리는 진실과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불확실성’ 때문에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절대 진실도, 완전 허위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책은 그 진리를 다큐멘터리에 초점 맞춰 이성적으로 설파한다.

저자는 영국의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 Review)가 매년 선정하는 ‘미술계 영향력 있는 파워 100’에서 2017년 1위에 올랐다. 영상과 설치작품을 통해 미술계와 경제구조 등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가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미디어 아트를 가르치며,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제9회 베를린 비엔날레, 제12회 카셀 도쿠멘타 등 전 세계 주요 미술제에 빠지지 않고 초청됐다. 한국과도 인연이 많다. 지난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해 선보인 ‘태양의 공장’은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였고, 그해 양현재단의 양현미술상 수상작가로 뽑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의뢰로 한국적 맥락을 담은 신작도 준비 중이다.

한국어 번역은 미술가인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맡았다. 책의 표지는 체코 태생의 작가로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도 열렸던 하룬 파로키와 루마니아 출신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인 안드레이 우지커가 함께 만든 ‘혁명의 비디오그램’(1992년) 중 한 장면을 따 왔다. 1만7,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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