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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엄마를 응원해] 호기롭게 나선 '육아의 맛'…반나절만에 정신은 안드로메다行

■ '아들'로만 27년 살아온 男기자의 육아체험기

호기심 많고 에너지 넘치는 다섯살 아이

손 잡고 걷기부터 대화까지 곳곳 난관

틈만 나면 여기 저기 뛰어다녀 '식은땀'

정부 아이돌보미도 아동학대하는 시대

엄마만의 책임 아닌 함께하는 육아 필요





기자는 집에서 ‘장손’으로 불렸다. 할아버지는 “너는 청송심씨(靑松沈氏) 인수부윤공파(仁壽府尹公派) 26세손”이라며 “장손이니 집안일보다는 가업을 꾸리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하셨다. 미혼이기도 하지만 그런 집안 분위기 덕분(?)에 스물일곱 해를 살아오며 아이를 돌본 경험이 전혀 없다. 성년이 되고 나서 아이들과 스킨십을 했던 일도 손에 꼽는다.

그런 기자가 대한민국의 엄마들을 응원하는 기사를 쓰게 됐다. 집에서 ‘아들’로 자란 기자와 아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들과의 간극은 무엇일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어린 아들 둘을 키우는 회사 여선배에게 육아체험을 해보고 싶다고 아이디어를 냈다. 육아를 ‘생활’이 아닌 ‘직장 업무’로 경험한다는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한 번 해봐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회사 선배에게 다섯 살(만 3세) 아들을 하루 동안 돌보겠다고 했더니 선배는 “육아 구원투수가 오는 거냐”며 반겼다.

심우일 서울경제 기자가 서울 동작구의 선배 집에서 희수를 데리고 나와 강남의 수족관으로 출발하고 있다. /이수민기자


◇호기롭게 나섰지만 현실은=지난 주말. 선배가 알려준 주소로 가자 한 꼬마가 맨발로 뛰어 나왔다. 내게 ‘육아의 맛’을 느끼게 해줄 희수(가명)다. 마침 그날은 선배의 남편이 업무로 집을 비운 날이었다. 희수의 동생은 세 살. 새벽부터 깬 두 아이에 ‘혼이 나가 있던’ 선배는 나를 몹시 반기더니 희수와 수족관 구경을 가보라고 귀띔을 했다. 그렇다. 나 혼자, 희수를, 서울 동작구의 선배 집에서 강남구의 수족관으로 데려가야 하는 것이다. 냉큼 스마트폰으로 얼마나 걸리는지 봤다. 걸어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니 1시간은 걸릴 거리.

선배는 작은 가방에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멸균우유와 간단한 과자, 그리고 바지와 속옷. 선배는 “얘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면 꼭 빨리 데려가라”고 했다. “얘가 화장실 가는 중간에 바지에 오줌을 싸서 내내 아랫도리 없이 집에 온 적도 있어.” 덜컥 겁부터 났지만 희수한테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꼭 형한테 얘기해”라고 말했다. 희수는 밝게 웃으며 “응응”했지만 못 미더웠다. 난 현관문을 나선 후 줄곧 희수 손을 꼭 잡았다. “얘가 진짜 활발한 친구야”라는 선배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손을 놓으면 희수가 요리조리 뛰어다닐 것만 같았다.

막상 손을 잡아보니 희수는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기자는 팔이 짧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손을 잡고 걸으면 희수 팔이 마치 벌서는 것처럼 하늘로 솟아 올라간다. ‘팔이 아플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목마를 태우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타협책을 찾았다. 희수를 인도에 걷게 하고, 나는 인도 옆 차도로 비스듬히 걷는 것이었다. 희수 팔의 각도가 그나마 내려왔다.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하느냐도 은근히 고민이었다. 다행히도 희수가 고민의 대부분을 풀어줬다. 가령 놀이터를 보면 “나 저 미끄럼틀 많이 타”라고 먼저 말을 던지는 식이었다. ‘그냥 얘가 하는 말에 성실하게 답하면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편해졌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난관이 찾아왔다. 다섯 살이면 교통카드를 사야 하나? 무작정 교통카드 자판기로 향했다. 어린이용 표를 뽑으려고 했다. 희수의 손을 잠깐 놓쳤다. 희수가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희수를 다시 데려오는 동안 교통카드 결제창이 초기화됐다. 안 되겠다 싶어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료야”라는 답변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교통카드를 찍었다. 지하철에 타자 희수는 깜깜한 창밖이 신기하다는 듯 연신 유리창을 들여다봤다. 희수는 계속 “우리 얼마나 더 가야 돼”라고 물었다. 그렇다. ‘얘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었다.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향하고=지하철에서 내려 아이 걸음으로 십여분을 걷자 수족관이 보였다. 어려움은 여기서부터였다. 티켓을 사야 하는데 희수가 계속 기자 주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특히 돈을 내는 과정에서 지갑에 손을 댈 때마다 희수는 ‘탈출’할 타이밍을 칼같이 잡았다. 두세 번은 희수를 붙잡으러 가려고 매표소를 벗어나야 했다. 아이를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처음 수족관에 들어설 때는 코스를 다 돌고 스탬프를 모아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희수의 에너지에, 희수의 호기심에 나는 스탬프고 뭐고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희수는 발걸음이 빨랐다. 물고기를 찬찬히 보여주고 싶었지만 희수는 거침없이 길을 나아갔다. 이윽고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다. 길목에 있는 ‘목장 아이스크림’ 광고 간판을 희수가 발견했다. 희수는 “아이스크림 어딨어”라고 물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고 광고판만 있을 뿐이었다. 희수에게 “아이스크림 가게는 없어”라고 말했다. 억지로 발길을 재촉했지만 희수는 계속 간판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이렇게 세 번을 간판이 있는 곳과 상어 수족관이 있는 곳을 왔다 갔다 했다.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안쪽에 들어가면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라고 꼬드겼다. 선의의 거짓말인지 여부는 애매하지만 아이와 함께할 때는 적당히 전략적 유도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 이후 마주한 솜사탕 가게에서, 기념품 가게에서 기자는 몇 번이고 다섯 살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협상하고 유도해야만 했다. 자꾸 안아달라는 희수의 투정에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는 듯 통하지 않는 이 시기의 아이는 복잡한 수학 함수와도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반나절 넘게 이어진 육아 체험이 끝났다. 나는 선배를 다시 보자마자 “존경한다”는 말이 나왔다. 선배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들이 짓는 것과 비슷한 같은 표정을 하며 “다음에는 아이 둘을 한꺼번에 돌봐보라”고 농을 쳤다. 두 사내아이를 혼자 보는 것이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남편이든, 나든 혼자서 아이 둘을 보는 시간이 가장 두렵고, 그래서 잠깐이라도 구원투수 격으로 누군가 와 주면 너무 감사하다”는 것이 선배의 답변이었다. 워킹맘인 선배는 평일에는 베이비시터를 부른다. 양가 부모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탓이라고 했다. 어린이집과 베이비시터, 선배가 매일 의탁하는 구원투수들. 믿고 맡길 수 있는 구원투수를 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복 받았다고 선배는 말했다.

◇함께 하는 육아가 필요해=어린아이를 안심하고 맡기라며 홍보했던 정부의 아이돌보미 서비스조차 자격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공분을 샀던 일이 뇌리를 스쳤다. 이유식을 바로 받아먹지 않는다고 아이의 뺨을 때리던 장면, 부모가 아닌 기자 역시 소름이 끼쳤다. 폐쇄회로(CC)TV가 있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함부로 대하는 세상에서 과연 누구에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그렇다고 조부모 육아에만 기댈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에는 마을 어른들이 농사 일을 하러 나간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봐주고 그랬다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엄마들이 육아고립을 호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육아 체험에 앞서 결혼을 앞둔 선배에게 “이번 주말 육아 경험하러 간다”라고 말했더니 “미리 준비하는 1등 신랑감”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만약 기자가 여성이었다면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생각해본다. 맞벌이가 일반화된 지 한참 됐지만 육아를 여성의 임무로 바라보는 인식은 여전하다. 육아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남성들이 육아를 ‘우리의 일’로 받아들인다면 ‘독박 육아’에 괴로워하는 엄마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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