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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아름다움의 진화] 탐미, 진화를 이끌다

■리처드 프롬 지음, 동아시아 펴냄

150년전 다윈 '성선택' 이론 소환

저자, 30년 넘게 새의 생태 관찰

수컷, 구애쇼 위해 장식물 키우고

암컷은 성적 자율성 확보하려 진화

동물 진화 '젠더 투쟁史'로 결론





“아름다움이 진리이고, 진리가 아름다움이다. 당신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이기도 하고.”

이는 영국 시인 존 키츠가 1819년에 쓴 시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송가’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키츠는 그리스제 고병(古甁)을 보면서 인간은 변하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다고 노래했다. 이 구절은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1809~1882)의 ‘성 선택’(Sexual Selection)을 떠오르게 한다. 사실 인류 역사에서 통상 ‘미(美)’는 ‘지(知)’보다 약간 서열상 뒤처지는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런 선입관은 가장부장 제도가 만들어 놓은 허구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감추는 행위일 수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조류 학자인 러처드 프럼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가 쓴 ‘아름다움의 진화’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야말로 진화를 이끌어온 원동력 중 하나이자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2017년 뉴욕타임스(NYT)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 중 유일한 과학책이다.

다윈은 150년 전 “수컷이 화려하게 몸을 치장하는 이유는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라며 생존이 아닌 번식을 위한 투쟁인 ‘성 선택’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주류 생물학계는 ‘적자생존’에 따른 자연선택 이론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저자는 “자연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아름다움은 ‘자연선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며 아름다움은 ‘성 선택’의 결과라는 다윈의 이론을 다시 소환한다. 즉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강한 놈이 살아남는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적 진화’만이 아닌 ‘성 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 과정에서도 수없이 많은 진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30년 이상 현장에서 새의 생태를 관찰하며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새들은 특정 깃털, 색깔, 노래, 과시적 행동에 대한 선호도를 바탕으로 짝짓기를 한다. 그 결과 성적인 장식물이 진화하게 된다. 욕구 자체와 그 욕구의 대상이 함께 진화해온 결과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수천 종의 새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성적 아름다움의 다양성이 폭발적인 증가했다는 것이다. 가령 수컷 공작은 몸보다 2~3배 부풀린 현란한 꽁지를 자랑한다. 청란 수컷은 깃털이 1m나 뻗어 있어 부리 끝에서 꽁지 끝까지 길이가 180㎝에 달하는데 암컷의 간택을 받기 위해 지상 최고의 구애 쇼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컷은 땅을 깨끗하게 치워서 무대를 만든 뒤 암컷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밤에는 세레나데를 부른다.

동물의 진화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라는 저자의 결론도 페미니즘 관점에서 눈길을 끈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대로 전쟁을 벌이며 진화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프럼 교수에 따르면 동물의 신체에는 수컷과 암컷의 지난한 싸움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종의 오리 수컷은 성기가 무려 42㎝에 달한다. 반면 이 오리 암컷의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해서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이는 강제 교미를 하려는 수컷을 막아내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또 암컷 침팬지는 강압적인 수컷을 피해 자신이 선택한 수컷과 밀월 여행을 떠난다. 구애를 위해 무대를 만드는 바우어새의 경우는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수컷의 무대에 암컷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강압적인 짝짓기를 피하기 위함이다.

책은 동물의 ‘성선택’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섹슈얼리티로 확장해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드라마와 영화의 트렌드로 부상했던 브로맨스는 사실 로맨스보다 먼저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협동적인 구애 행동이 수컷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 브로맨스인데, 수컷들이 이 브로맨스적 구애조직에 가담하는 이유가 신선하다. 바로 암컷들이 군집화된 수컷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여성의 오르가슴이 독자적으로 진화했다는 설을 비롯해 ‘섹스 파업이 가져다준 평화’라는 장에서는 복잡한 성 갈등 등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2만5,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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