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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美 급성장 이끈 대서양 정기항로

1838년 그레이트웨스턴호 출항





1838년 4월8일, 영국 남서부 브리스틀항. 1,340톤짜리 목조 외륜 기범선 그레이트웨스턴(Great Western·사진)호가 뱃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갔다. 목적지인 뉴욕에 도착하는 데 15일이 걸렸다. 가장 빠른 범선의 기록 23일을 가뿐하게 깼다. 뉴욕에서 모항으로 회항할 때는 하루를 더 당겼다. 조류와 바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범선으로는 평균 43일이 걸리는 항해구간을 3분의1도 안되는 14일 만에 주파한 것이다. 그레이트웨스턴호를 필두로 영국 증기선 4척이 잇따라 뉴욕에 입항하며 대서양 횡단 시대가 활짝 열렸다.

시도는 이전에도 없지 않았다. 미국 상선 사반나호가 1819년 대서양을 건넌 적이 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범선보다 느렸다. 승객들의 불만도 컸다. 외륜을 돌리는 증기 보일러와 실린더가 대형인데다 연료인 석탄 소모도 많았다. 선박 용적의 절반가량을 석탄과 증기기관이 차지했으니 선주나 화주도 반길 리 없었다. 승객들도 소음과 석탄 그을림 때문에 증기선 타기를 꺼렸다. 당연히 채산성도 떨어졌다. 증기선의 불씨를 계속 살린 것은 각국 정부. 미래 기술의 가능성을 믿고 성능 개량과 실험 운항을 위해 거액의 보조금을 댔다.



그레이트웨스턴호 역시 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시험 운항에서 발생한 화재로 예매표가 대거 반환되는 통에 불과 7명(정원 128명)의 승객이 탔으나 선주는 정부의 지원 덕분에 초기 적자를 딛고 일어섰다. 그레이트웨스턴호가 속도의 이점과 여객선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2년 만에 각국은 대서양 정기여객선 운항 경쟁을 펼쳤다. 배의 규모도 커졌다. 그레이트웨스턴호를 설계한 19세기의 천재 엔지니어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프랑스계 영국인)은 1845년 3,675톤짜리 그레이트브리튼호, 1858년 2만2,000톤급 그레이트이스턴호를 속속 선보였다.

배가 커질수록 신대륙을 향하는 구대륙의 이민도 늘어났다. 1830년대 3.9%였던 미국행 이민의 연평균 증가율이 1840년대에는 8.4%로 뛰어올랐다. 1826년까지 천만 단위를 넘지 못하던 미국의 인구는 이민 물결에 힘입어 1915년 1억명 선을 넘어섰다. 공짜나 다름없이 공급된 토지와 대규모 이민의 노동력이 맞물린 결과는 고성장.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커 나갔다. 첨단 기술 개발과 혁신, 사람은 경제 성장의 필수조건이건만 한국의 상황은 어둡다. 사망이 출생을 웃도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이미 나타났다. 갈수록 약해지는 한국호의 동력을 되살릴 방책은 정녕 없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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