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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 칼럼] ‘긱 이코노미’ 시대의 고용정책

논설실장
정규직화·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고용안정성 초점 맞춘 노동정책
일자리 절벽 등 부작용만 초래
디지털시대엔 유연한 시스템 필요

[오철수 칼럼] ‘긱 이코노미’ 시대의 고용정책
오철수 논설실장

중국 고전 ‘한비자’에는 “처다사지시(處多事之時) 용과사지기(用寡事之器) 비지자비야(非智者備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일이 많고 번잡한 시대에 일이 적었던 시절의 방법을 쓰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의 자세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 정부 정책과 연관지어 보면 그 시대 상황에 맞는 수단을 써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비자가 현실적인 방법을 강조한 것은 자칫 이상이나 이념에 이끌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편다면 그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노동정책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 초래한 혼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소득주도 성장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소비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선순환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노동정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다. 하나같이 노동시장 안정성에만 초점을 둔 정책들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앞으로 5년간 추진할 10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으나 1년이 넘도록 고용 안정성에만 신경을 쓸 뿐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 노동개혁은 아예 금기어처럼 돼버렸다. 이것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고용절벽이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고용 안정성마저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취업자 증가 폭이 20만~30만명에 달했지만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된 올 들어서는 10만명 아래로 떨어지더니 급기야 지난 8월에는 3,000명 수준으로 추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2010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실업자 수도 8개월 연속으로 100만명을 웃돌면서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다.

미국과 일본·독일 등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나라들은 경기가 살아나면서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고용시장이 활황을 보이고 있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만 고용절벽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이는 정책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미국·일본 등은 법인세 인하와 규제 개혁에 나선 결과 여유가 생긴 기업들이 앞다퉈 채용을 늘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정규직화도 모자라 법인세 인상에 지배구조 개편 압력까지 겹치니 어느 기업이 선뜻 채용을 늘리려 하겠는가.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라고 권고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이다.

지금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시대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바일이나 온라인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를 즉시 제공하는 주문형 경제가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고용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재즈가 처음 탄생할 때 연주자들이 거리에서 그때그때의 공연 수요에 따라 즉석에서 팀을 만들어 공연했던 것처럼 디지털 경제에서 근로자들은 한 기업에 얽매이지 않고 단기 계약을 맺고 자유롭게 일한다. 대표적인 것이 우버다. 우버는 택시기사들을 고용하지 않고 플랫폼만 제공한다. 이를 통해 독립 계약자들이 고객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 같은 경직된 고용관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이상 지속돼 온 일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은 이 같은 고용방식의 변화를 재촉한다. 근로자도 고용인도 고정된 형태의 일자리보다는 유연한 고용을 추구하는 형태를 선호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일이 있을 때 외부 인력을 배치했다가 프로젝트가 끝나면 고용관계를 종료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고용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정규직화와 같이 과거 개발연대에나 쓰던 노동정책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경쟁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게다가 지금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 노동 경직성이 높아지면 기업들은 해외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내 고용의 감소를 가져온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정부 정책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수단이 정교해야 한다. 자칫 이념에 매달리느라 잘못된 수단을 쓰면 당초 의도했던 목표는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정부는 지금의 노동정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연 적합한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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