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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2017 청년을 말한다] '일자리 홍수' 맞은 사토리 세대 "결혼·사회적 성공 다시 꿈꿔요"

<2> 미래를 꿈꾸는 해외 청년들 - 일본

"스펙 없어도 많게는 10곳 넘는 회사에서 합격 연락"

고용시장 호전에 야근 폐지 등 기업문화도 변화조짐

20년 불황 지켜본 청년들 "호황 곧 끝날 것" 불안도

최근 출판사에 합격한 일본 메이지대학교의 한 여학생이 지난달 26일 학교 취업지원센터에서 회사에 다닐 것인지, 취업 활동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변재현기자




일본 취업준비생들이 지난달 27일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기업의 입사 안내를 듣고 있다. /변재현기자


일본의 명문 사립 메이지대 졸업반인 가와카미 사호코(21)씨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올 초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한 그가 지금까지 합격통보를 받은 회사는 총 여섯 곳. 모두 내로라하는 주요 대기업과 상사들이다. 어느 회사로 갈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그는 기자가 메이지대를 방문한 지난달 말 대학 취업지원센터에서 또 다른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고 있다는 그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기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며 1970년대 고도성장기 이래 최고의 ‘일자리 홍수시대’를 맞이하면서 일본 청년들의 모습은 지난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진 1990년대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드리워진 침체의 그늘 아래 사회적 성공이나 결혼에 무관심하고 개인의 독립적인 삶에 집중해온 일본의 20대, 득도한 사람처럼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의미로 일명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일본의 청년들은 다시 안정된 사회적 지위와 결혼 후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성공·결혼 모두 꿈꾸는 일본 청년들=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상반기 채용이 마무리된 시기임에도 메이지대 취업지원센터에는 학생들의 발길이 제법 이어졌다. 이곳을 찾는 학생들의 상담 내용은 주로 합격 통보를 받은 여러 회사들 가운데 어디에 갈지, 또는 다른 회사에 지원을 계속할지다. 요즘 일본에서 대학 3~4학년생이 취업을 위해 투자하는 기간은 3~4개월 정도로 학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20~50곳에 지원하면 적게는 2곳, 많게는 10곳이 넘는 회사에서 합격 연락을 받는다. 일본 기업들은 구직자들에게 별다른 자격증을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의 구직활동이라야 하루 4시간 정도 취업설명회에 참가하는 것이 전부다. ‘스펙’을 쌓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에 고바야시 노부코 메이지대 취업지원부 사무장은 “기업들은 기본적으로 입사 후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이라며 “최근 고용이 호조를 보이면서 (스펙이 없이도) 학생들의 자신감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용 시장에서 소외됐던 청년들이 골라서 일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취업 여건이 급변하자 일에도 연애에도 무관심한 듯 보였던 젊은이들의 생각도 달라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쿄 오다이바 채용박람회장에서 만난 몇몇 젊은이들은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삶 모두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대학원생인 이노우에 치히로(26)씨는 “취업 후 결혼 생각이 있다”며 “경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35살 즈음 결혼하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폭발…청년이 우위에 서자 기업문화도 바뀐다=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 6월 유효구인배율은 1.51. 구직자 100명당 151곳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본 언론들은 현재의 고용 시장을 ‘우리테(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유리한 입장인 상태)’시장이라고 표현한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사토리 세대’ 청년들이 넘쳐나는 일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는 것은 야근 시간과 복리 후생 등 ‘회사가 직원의 편의와 행복을 얼마나 보장해주느냐’다. 구직 활동 중인 이노우에씨도 “만약 취업한 기업이 갑작스럽게 야근을 시킨다면 회사를 그만둘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최근 일본의 대형 광고회사 덴쓰에서 월 105시간이 넘는 잔업에 시달리던 여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를 언급하며 “돈보다는 복지를 선택하고 내 삶을 즐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용 시장에서 우위에 선 일본 청년들의 요구에 ‘살인적인 잔업’으로 유명했던 일본 기업들의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다. 다국적 에너지 기업인 에온 일본 지사의 콘 히로후미 채용 담당자는 “일본 정부가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잔업, 유급휴가, 복리후생, 급여 수준 등을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야근하지 않도록 오후7시 이후 불을 끄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도 장기 근로를 강제하는 기업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따라 ‘일하는 방식 개혁’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케다 고스케 일본 내각부 참사관은 “노사 간 잔업 규정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어 정부가 기준을 정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밖에 내년 4월까지 비정규직의 정규화 대책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호황 이어질까…아직은 불안한 ‘사토리 세대’=다만 오랜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청년들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일본의 청년은 최근의 취업 호조가 조만간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일본 고용 시장 연구기관인 베네세의 사토 유 특임연구원은 “20년간 이어진 불황을 지켜봐온 청년들은 당장이라도 고용 호황이 끝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여유를 갖고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보다는 ‘당장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학 졸업에 맞춰 일자리를 정하는 데 목을 맨다는 것이다.

취업박람회장에서 만난 준야 다케츠(21)씨는 취업 여건은 좋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에게 실업 리스크는 부담”이라면서 “지금 같은 고용 호조가 2020년 도쿄올림픽 전에는 끝날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용 여건이 달라지면 기업 문화의 변화 속도도 늦어질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도쿄=변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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