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 제대로 쓰자] 늘린 생계급여 예산 489억 불용...사각지대 못 벗는 저소득 노인
경제 · 금융 정책 2018.09.10 17:36:34지난 5월 경북 구미시의 한 원룸에서 20대 아빠 A씨와 생후 16개월짜리 아기가 쓸쓸히 숨을 거뒀다. “세입자가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는다”는 관리업체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발견됐다. 발견 당시 A씨와 아기는 매우 야위어 있어 A씨는 병환으로 숨지고 아기는 돌봐줄 사람 없이 방치됐다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홀로 사는 68세 B씨의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전부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해 받는 생계급여비다. B씨는 65세 이상이면서 소득 하위 70%에 해당해 기초연금도 20만원 받을 수 있지만 실제 손에 쥐지는 못한다.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인정되는 탓에 생계급여가 그만큼 깎여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초연금이 아무리 올라도 B씨에게는 남의 일이다. 세 모녀가 소득이 없는데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4년.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뜯어고치고 각종 현금복지를 확대하는 등 사회 안전망 확충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여전히 넓다. 10일 관계부처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정부가 순수 복지예산 210억6,000만원 가운데 기초생보·기초연금 등 비기여적 현금급여 복지사업에만 41조원(19.5%)을 투입했지만 노인 빈곤가구의 절반가량이 생계급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복지 확대 기조에 따라 현금복지사업도 급증하는 추세다. 내년부터 추가 인상되는 기초연금(11조4,952억원), 아동수당(1조9,271억원) 등을 감안하면 내년도 현금복지예산은 25조8,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증가율이 18.9%에 달한다. 올해 총지출 증가율(9.7%)은 물론 전체 복지예산 증가율(12.1%)의 1.5배를 뛰어넘는다. 복지 서비스가 성숙함에 따라 현금복지도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문제는 복지사업 구조와 전달체계의 허점이다.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기준중위소득이 30% 이하인 노인가구 중 생계급여를 받는 가구는 47.6%에 불과했다. 의료·기타급여 수급가구도 49.4%였다. 연 10조원가량의 예산이 기초생활보장에 들어가지만 노인 빈곤가구 절반이 가장 기본적인 소득보장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초생보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차갑다. 예정처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1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 따라 생계급여 예산을 추경으로 135억원 증액했지만 실제로는 489억원이 불용됐다. 월별로 지급하는 생계급여와 반기별로 이뤄지는 정기 확인조사 간의 시차 때문이다. 기껏 기준을 완화하고 돈을 편성해도 실제 지원까지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줬다 빼앗는’ 기초연금 문제도 여전하다. 정부는 내년부터 소득 하위 20% 노인에 대해 기초연금을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앞당겨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빈곤노인의 삶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 현재 생계급여를 받는 중위소득 30% 이하 노인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는 있지만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전액 삭감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수급자인 66세 김모씨는 “정부에서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올려준다지만 생계급여를 받을 만큼 정말 어려운 노인들은 오히려 못 받는다”며 “나도 어렵게 살지만 내 기초연금을 떼서라도 그분들에게 주는 게 맞는 정책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술한 지급·환수 관리체계도 고질적인 문제다. 기초생보 급여 부정수급·과오납 금액은 2017년 207억9,400만원으로 2015년(151억2,000만원)에 비해 크게 늘었지만 환수율은 반대로 65.7%에서 39.9%로 떨어졌다. 거듭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의 공적 자료조차 제때 활용이 안 되는 결과다. 전문가들은 현금복지를 늘리는 것도 좋지만 복지 전달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지방자치단체 사회보장사업은 총 13만7,262개에 달한다. 정부가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지만 어떤 사업이 있는지 담당자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세부 사업이 지나치게 많아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모른다”며 “각종 수당을 덕지덕지 만들기만 할 게 아니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3개 부처서 4개 '초등돌봄'...판박이 사업에 혈세 '펑펑'
경제 · 금융 정책 2018.09.10 17:36:22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아이 1인당 1억원을 지급해 저출산을 해소하자고 밝혔다. 지난해 저출산 대책 예산은 24조4,000억원으로 출생아 수 35만7,800명으로 나누면 한 명당 6,800만원꼴이다. 김 원내대표의 주장만 들어보면 큰돈이 들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예산 소요를 따지면 불가능한 것도 아닌 셈이다. 현실성을 떠나 1인당 1억원을 주자는 말까지 나오는 것은 현재 저출산·복지예산을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쓰는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10일 국회예산정책처의 ‘2017 회계연도 결산 총괄분석’을 살핀 결과 대규모의 복지예산을 쏟아 부어도 출산율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별로 쪼개진 사업들이 중복운영되며 효율성을 갉아먹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 후 돌봄 사업은 무려 3개 부처가 4개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규모가 가장 큰 사업은 교육부의 ‘초등돌봄교실’로 초등학교 1~2학년 아동이 대상이다. 방과 후부터 늦게는 오후10시까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인데 지난해 3,152억원이 투입됐다. 보건복지부는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의 초등학생·중학생을 대상으로 오후에 돌봄 서비스를 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체험활동과 학습지원을 제공하는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와 맞벌이로 부모의 양육 공백이 생겼을 때 아이돌보미가 가정을 찾아가는 ‘시간제돌봄’ 두 개의 사업을 맡고 있다. 사업별로 지원 대상 연령과 소득 기준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모두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나 저소득층·한부모 가정의 초등학생을 보호하며 식사 등을 제공한다. 사업들은 큰 차이가 없는데 지난해 이용률 추이는 딴판이었다. 초등돌봄교실과 지역아동센터 이용 아동이 증가하는 데 반해 여가부의 시간제돌봄과 방과 후 아카데미는 각각 3.3%, 4.8% 감소했다. 예정처는 “방과 후 아카데미의 경우 사업 대상을 중학생으로 특화하며 초등생에 대한 적절한 대안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며 “돌봄 서비스 부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수요를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사업이 중복된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정처는 “사업 간 연계를 강화하고 사업 효과를 높이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부처에 지자체까지 나서 복지사업을 벌이면서 부실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본예산 기준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은 모두 13만7,262개로 그중 지자체 스스로 만든 사업이 5만7,042개에 달한다. 정부가 내년부터 지급하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보더라도 서울시와 경기도 성남시 등은 별도의 청년수당을 제공해 중복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비효율을 없애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교통정리에 나서야 하지만 2013년 출범한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난 5년간 회의 개최 건수가 17번에 불과하고 올해에는 2월과 4월 두 차례 열렸는데 그나마 한 번은 서면회의였다. 정부는 오히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나 포용국가전략회의 등 옥상옥 구조의 회의체를 더 만들며 복지사업의 사공 수를 늘리는 모양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처들이 조금씩 나눠 맡다 보니 일관성도 부족하고 국민들도 혼란스럽다”며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의 여러 행정을 통합하는 조직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21조 '현금복지'...배분은 주먹구구
경제 · 금융 정책 2018.09.10 17:34:47문재인 정부 들어 아동수당과 기초연금을 확대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을 늘리면서 정부의 한 해 현금복지사업 규모가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금사업의 급증에도 빈곤가구 사각지대가 여전하고 고소득자까지 정부 지원을 받고 있어 복지전달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이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의 현금급여사업 중 비기여적 급여지출은 지난해 19조3,000억원에서 올해 21조7,000억원(예산기준)으로 12.4% 증가했다. 비기여적 급여는 보험료나 기여금을 내지 않고 오롯이 현금만 지원받는 사업이다. 지난 2013년 11조6,000억원에서 5년 만에 두 배가량 늘었다. 추가 인상되는 기초연금과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을 고려하면 내년에는 25조8,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현금사업은 효과가 떨어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선별적 현물지원액이 1% 증가하면 상대적 빈곤율이 약 0.5%포인트 감소하지만 현금지원은 영향이 없었다. 2015년 말 현재 기준중위소득의 30% 이하인 노인가구 중 생계급여를 받는 가구는 47.6%였다. 매년 10조원 이상을 현금지원해왔지만 노인 빈곤가구의 절반이 사각지대에 있다. 아동수당처럼 고소득층에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바꾸고 재정 누수를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초생활보장급여 부정수급과 과오납에 따른 환수율은 지난해 65.7%에서 올해 39.9%로 떨어졌다. 2014년 37건이던 어린이집 보조금 부정수급 신고 건수는 올 들어 7월까지 98건으로 증가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육급여 덕에 소득 상위 30%가 하위 30%보다 정부 지원액이 많다”며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돌리고 지원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빈난새·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경단녀 지원·워라밸' 말뿐인가
경제 · 금융 정책 2018.09.10 17:27:08지난 7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첫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출산율·출생아 수라는 수치적인 목표를 벗어나 아이와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실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강한 의지와 달리 관련 사업 예산은 쥐꼬리만큼 올랐다. 그마저도 정책 대상자를 확대하거나 기존 사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친 탓에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단녀’ 지원…쥐꼬리 예산으로 정책 재탕=지난달 28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19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 따르면 경단녀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 예산은 올해 533억원에서 오는 2019년 565억원으로 6% 오르는 데 그쳤다. 2019년 여가부 전체 예산이 2018년보다 37.4% 늘어난 1조496억원임을 고려했을 때 턱없이 낮은 증가율이다. 30대 여성을 위한 지원책 마련은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경력단절여성을 연령계층별로 살펴보면 30대가 51.2%로 가장 많았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 역시 30대가 가장 낮은 M자형 곡선을 그린다. 상황이 이런데 저출산 해결에 가장 큰 역할을 할 30대 맞춤형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자 중 30대의 비중은 15.3%에 불과하다. 늘어난 예산은 새일센터를 5개소 확충하고 경단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컨설팅을 강화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보인다.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이 단순 사무직 등 질 낮은 일자리에 치중된다는 비판에도 제도 개선보다는 기존 정책을 재탕하는 셈이다. ◇‘워라밸’ 실현도 물음표=워라밸을 실현해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는 계획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의 설계가 잘못돼 곳곳에서 집행 부진이 발생하고 있는 탓이다. 출산·육아기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가정 양립지원 사업은 지난해 119억3,000만원의 예산 중 12억3,000만원(10.3%)을 쓰지 못했다. 실제 참여 인원이 예상했던 인원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출산전후휴가급여와 육아휴직에서도 각각 404억7,200만원과 1,539억5,500만원이 불용됐고 육아기근로시간단축급여에서도 57억8,200만원의 불용액이 발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참여율 저조는 출산·육아로 발생하는 불이익 탓에 일과 가정 양립이 어려운 경우가 여전히 많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실효성 있는 보완책 마련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재택원격근무 인프라구축지원 사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새로 시작한 이 사업은 시스템 구축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형태와 설비·장비 등의 구입비용을 융자하는 간접 지원 방식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배정된 예산 대부분이 쓰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직접 지원 사업에 계획된 14억원의 예산 중 1,600만원만 집행됐고 융자 사업은 전체 28억원의 계획현액이 모두 불용됐다. 수요예측 등을 포함한 면밀한 사업계획이 선행되지 않은 탓이다. 이영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단계마다 빈틈이 없어야 한다”며 “정책을 계획하는 시점부터 촘촘하게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세종=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영유아예산 3.5배 늘었지만…가정 양육 비중 여전히 '쥐꼬리'
경제 · 금융 정책 2018.09.10 17:27:02지난 6월 서울 소재의 한 어린이집 대표와 원장이 아들과 며느리를 보육교사로 거짓 등록해 5년간 정부 보조금 1억1,000만원을 부당수령한 사실이 적발됐다. 일부 어린이집의 이 같은 불법적인 정부 보조금 따내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37건이었던 신고 건수는 올해 7월 기준으로 98건까지 불어났다. 보조금 부당지급은 곧 혈세(血稅) 낭비를 의미한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린이집 지원에 막대한 복지 예산을 할당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줄줄 새는 예산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보조금을 부당지급받은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이 아동학대 사건에 연루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보조금 부당지급에 따른 어린이집에 대한 불신은 아이 낳기를 꺼리는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저출산을 막기 위한 복지 예산이 곳곳에서 누수 현상을 보이면서 오히려 저출산을 부추기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10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정부의 저출산 예산은 152조8,000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워 시행하고 있는데 1·2차에만 80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들어간 금액만도 71조9,000억원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됐는데도 출산율은 재앙 수준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35만7,800명으로 전년보다 11.9%나 급감했다. 1970년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다. 정부 보조금이 악용돼 세금이 줄줄 새는 것도 문제지만 세금 투하 지점이 잘못 설정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보육 인프라 구축, 보육교사 자격·처우 개선처럼 정말 필요한 곳에는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4개 관련 부처에서 펴고 있는 영유아양육지원정책의 경우 지난해에만 9조5,227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2010년 2조7,200억원에서 3.5배 늘었다. 부모의 양육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도 정부의 보육 지원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전체 예산의 86.2%가 민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같은 보육시설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가정양육 지원 비중은 13.8%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만 0세의 경우 전체의 92.3%가, 만 1세는 66.9%가 가정양육수당을 받을 만큼 영아의 가정양육 비중이 큰데도 정부의 지원은 시설보육에 쏠려 있다. 0~2세 영아에게 10만~20만원을 지원하는 가정양육수당은 내년까지 6년째 동결됐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영아와 해당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지원금보다 38만~68만원 적다. 예정처는 “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 등은 3세를 기준으로 시설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우리나라처럼 부모의 취업·학업, 소득 수준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모든 영유아를 대상으로 보육 및 유아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민간이 95%를 차지하는 어린이집에 매년 3조원 이상의 지원금이 흘러가는 동안 부모의 선호도가 높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내년 686억원으로 0.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영유아 보육료 예산은 올해 3조2,575억원에서 내년 3조4,053억원으로 4.5%(1,478억원) 늘어난다. 김윤수 예정처 경제분석관은 “국공립 어린이집 공급률이 10%포인트 늘면 추가 임신 의사는 1.5% 증가했다”며 민간 보육시설보다는 국공립 어린이집이 아이를 더 낳는 의사결정에 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도 “국가가 국민들이 필요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더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보육교사의 자질·처우 개선도 뒷전이다. 보육의 질을 높이려면 예비교사의 자질을 엄격히 검증하는 것은 물론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교사당 돌보는 아이의 숫자를 줄이고 과도한 행정 부담도 줄여줘야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지난해 어린이집 교원 양성 지원 예산은 27억원에 불과했다. 민간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79조원)보다도 적은 수준이다. 김인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보육교사 양성교육 단계부터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예비교사의 자질을 검증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세종=한재영·빈난새기자 jyhan@@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R&D예산 횡령 125억…절반은 환수도 못했다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7 17:14:39전북의 한 대학교수 A씨는 2012년부터 5년 간 자신이 따낸 국가연구개발(R&D) 사업의 참여연구원 인건비 총 5억5,000여만원을 빼돌렸다. 또 다른 대학교수 B씨도 학생연구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와 허위출장 경비, 연구수당 전액을 현금으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6,600만원을 횡령했다.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16년 정부의 정보보호 핵심 원천기술 개발 관련 과제에 참여한 C업체는 3억7,200만원의 지원 예산을 회사와 대표 개인 계좌로 무단 인출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최근 5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 R&D 사업비 횡령 피해금액이 125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가 횡령을 적발하고도 환수하지 못한 금액이 50%를 넘었다.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20조4,000억원으로 편성하면서 “처음으로 20조원을 넘겼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관리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과기부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소속의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과기부 R&D 사업비 횡령으로 적발된 건수는 총 138건이었다. 금액으로는 124억8,000만원에 이른다. 횡령 사례 중에는 학생인건비를 포함한 참여연구원 인건비 유용이 86건(62억4,0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2014~2015년 각각 16건, 18건이었던 횡령 적발 건수는 2016년 이후 급증해 매년 30건을 넘어서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1~7월 동안에만 벌써 31건이 적발돼 23억1,160만원을 환수키로 했다. 하지만 거둬들인 금액은 11억5,330만원으로 절반(49.9%)에 불과하다. 최근 5년을 통틀어서 봐도 총 환수액은 62억9,000만원으로 전체 환수결정액의 50.4%에 그쳤다. 횡령 외 다른 고의적 부정행위까지 넓히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7년 6월까지 과기부 국가R&D사업에서 기술료 미지급, 연구결과 불량 등 연구부정행위로 제재 조치를 받은 건수는 총 8,623건에 달했다. 885건의 사업비 1,976억원에 대해 환수조치가 내려졌지만 실제 환수된 금액은 966억원에 불과했다. 윤 의원은 “국민의 혈세인 R&D 예산 횡령은 중대 범죄이지만 일부 연구자들이 ‘눈먼 돈’으로 인식해 죄의식 없이 방만하게 집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업무는 그대론데…공공기관 정원만 '1.5만명' 늘었다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6 17:46:38지난 한해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정원은 1만5,000명 증가하며 32만명에 육박했다. 인건비가 늘자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에 3조원의 예산을 더 지원했다. 공공기관의 업무량이 특별히 가중되지 않았는데도 직원 수를 늘리고 더 많은 혈세를 투입한 것이다. 민간에서 줄어든 일자리를 공공 부문에서 억지로 보충하려다 보니 세금을 들여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비효율적인 일자리를 양산하고 민간 고용시장은 오히려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와 국회 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공공기관 정원은 31만9,863명으로 1년 전보다 1만5,103명(5.0%) 증가했다. 2016년 1만6,452명(5.7%)에 이어 2년 연속 5%대 증가율이다. 2014~2015년 증가율(2.8~2.9%)을 고려하면 최근 공공기관 채용이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다. 이는 2016년부터 임금피크제 별도 정원을 두고 신규 채용을 늘렸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전체 업무가 갑자기 늘기 어려운 여건에서 사람만 급격히 불어난 셈이다. 특히 정부는 올해 청년실업난을 해소한다며 공공기관 신규 채용 규모를 지난해(2만2,500여명)보다 5,000명 이상 늘리기로 했다. 예정처의 한 관계자는 “반드시 필요한 직무에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과거 한 사람이 담당하던 일을 줄이거나 필요없는 직무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지난해 공공기관에 지원한 예산은 68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조원 늘었다. 늘어난 예산 가운데 상당 부분은 갑자기 증가한 직원 인건비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기관은 지난해 인건비로만 24조3,304억원을 소요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기는 쉽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산업 경쟁력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세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임진혁기자 세종=빈난새기자 liberal@@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추가고용장려금, 지원미달 인원 1만명 넘는데... 내년 2배 이상 늘려 7,135억 배정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6 17:30:34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제도를 도입했다. 성장 유망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채용하면 1명의 인건비를 약 3년간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는 게 골자였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중소기업이 청년 3명을 고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까닭이다. 정부는 결국 지난 3월 청년고용촉진방안을 발표하며 유해업종을 제외한 모든 5인 이상의 중소·중견기업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고 지원금도 3년간 2,700만원으로 올렸다. 결과는 어떨까. 지난달 말 기준 추가고용장려금 집행률은 24.7% 수준이다. 사실상 대규모 불용이 예상된다. 지원을 독려하기 위해 제도를 대거 개선했음에도 지원인원은 4만9,275명이었다. 8월까지의 목표치인 6만명보다 1만명 이상 부족하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도 청년추가고용장려금에 올해보다 2배 이상 늘린 7,135억원을 배정했다. 이뿐 아니라 취약계층에 직업상담·훈련과 취업알선을 지원해주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업도 실효성 논란이 뒤따른다. 지난해 예산 4,411억원 가운데 3,771억원을 쓰고도 정작 취업자들이 6개월 이상 회사를 다니는 비율은 60%에 머물렀다. 문재인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지난해와 올해에만도 54조원의 막대한 일자리 예산을 퍼붓고 있지만 편성된 예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조원의 일자리 추경, 올해 3조원의 청년일자리 추경까지 했지만 올 들어 7월까지 취업자 증가 수는 85만6,000명으로 지난해 247만4,000명의 3분의1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의 보고라고 내세운 창업이나 사회적 경제 같은 다른 일자리 사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정부가 추경을 통해 창업도약패키지 지원사업과 민관 공동 창업자 발굴육성 사업에 각각 100억원을 증액했지만 실제 집행률은 창업도약패키지가 81.1%, 민관 공동 창업자 발굴육성이 68.5%에 불과했다. 신보 관계자는 “보증 잔액을 따지면 오래된 기업의 비중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신규 보증에서 창업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3년 77.3%에서 지난해 84.3%로 크게 확대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 사업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구체적인 일자리 창출 숫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좀비기업만 양산하고 있다. 2016년 기준 사회적 기업들은 평균 91억4,800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사회적 경제 예산의 대부분을 인건비 지원에 쏟아넣는 실정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사회적 경제 기업의 자생력이 약할 경우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커 ‘기업’으로서의 기능이 축소되는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지원제도를 사회적 경제 기업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판로 지원 정책에도 허점이 많다. 정부 지원사업에 중복 지원하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이를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판로 지원은 1,877건이지만 혜택을 받은 기업은 222개에 그쳤다. 예정처는 “사회적 경제 기업들이 판로 개척 및 수익 발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동일한 기업이 여러 판로 지원 사업에 중복 참여하기보다 다양한 기업의 참여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내일채움공제 대상에 비영리 목적 사회적 기업 직원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정책 간‘엇박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내일채움공제는 3년간 600만원을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이 추가 적립해 만기 시 3,000만원의 목돈을 마련하는 제도다. 하지만 지원 대상에서 ‘비영리 목적의 사업자 및 법인’은 제외된다. 사회적 기업 중 비영리법인은 전체의 26%다. 사회적 기업 관계자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에 취업한 청년들만 목돈 마련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침과 배치된다”며 “사회적 기업의 높은 이직률을 감안한다면 내일채움공제 대상에 비영리단체도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박형윤·정순구기자 manis@@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부정수급 타깃' 고용보조금 6조...職訓 예산은 1.7조로 줄어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6 17:30:0526세 A씨는 지난 2016년 작은 안전교육 업체에 취업했다. 정직원과 똑같이 일했지만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월급도 회사 계좌가 아닌 사장의 개인 계좌에서 받았다. A씨는 곧 사장의 지시에 따라 정부 취업지원 프로그램인 ‘취업성공패키지’에 등록했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취업 상태 확인이 안 돼 등록에 문제가 없었고 A씨에게도 불리할 게 없었다. 직업상담만 받아도 기본 15만원의 참여수당을 받고 마지막에는 월 30만원씩 3개월간 구직촉진수당도 주기 때문이다. A씨가 프로그램을 이수하자 사장은 그제서야 A씨를 정식 채용한 것처럼 서류를 만들었다. 취업성공패키지를 이수한 사람을 3개월(현재는 6개월) 이상 고용한 사업자에게 정부가 근로자 1인당 연간 600만~900만원을 지급하는 고용촉진장려금을 노린 것이다. 이 업체 대표는 이런 식으로 직원 9명을 구직자로 꾸며 8개월 동안 5,595만원을 챙겼다. A씨의 사례는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장려금의 맹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려금 종류가 40개에 육박할 만큼 많아지자 ‘수수료 10~20%를 떼주면 연간 수백만원씩 정부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며 사업주의 고용장려금 부정수급을 돕는 브로커가 활개를 칠 정도다. 장려금 대부분의 재원인 고용보험의 부정수급액은 2013년 160억7,000만원에서 지난해 389억7,700만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정부는 “중소기업의 고용 창출 여건을 확충하겠다”며 일자리 예산을 늘리고 있다. 근로자 개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직업훈련 예산은 줄어든 반면 단순 인건비 보조 성격이 짙은 고용장려금은 1.5배 늘었다. 지난달 28일 정부가 내놓은 ‘2019년도 예산안’을 보면 내년도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2% 늘어난 23조5,000억원이 편성됐다. 2016년 16조5,000억원이던 일자리 예산이 20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자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각종 고용장려금 예산은 5조9,204억원으로 25.2%를 차지한다. 실업소득 지원(8조1,412억원·34.7%)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크다. 올해보다 무려 56.3% 늘었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7,135억원), 신중년 적합직무장려금(274억원), 고용촉진지원금 등 종류만 36개다. 고용부 관계자는 “앞으로 1~2년은 베이비붐 에코 세대가 취업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청년실업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시기로 보고 민간시장의 고용 장려를 강조해 예산을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투입되는 고용보조금이 부작용만 키울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눈먼 돈 빼먹기’식의 부정수급은 물론 실제 기업들이 일자리나 임금을 늘리는 효과조차 불분명하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고용장려금을 못 받은 사람의 취업 기회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고용장려금이 시장이 자율적으로 창출했을 일자리를 구축하거나 보조금을 지원받은 기업과 지원받지 못한 기업의 정상적인 경쟁을 왜곡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도 “일자리안정자금이나 고용장려금처럼 기업에 직접 돈을 주는 정책은 기업이 보조금을 받은 만큼 근로자의 월급을 깎거나 유령직원을 만드는 식의 부작용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예산이 기업의 단순 인건비 보조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일자리와 관련해 돈을 쓴다면 개인을 교육시키는 데 집중해야 하는데 기업에 돈을 주는 방식은 최하책”이라며 “재정으로 만든 일자리는 오래 못 갈뿐더러 소비자가 필요로 하지 않는 쓸데없는 일자리만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용부의 직업훈련 예산은 올해 1조8,093억원에서 내년 1조7,270억원으로 오히려 4.6% 줄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를 늘리려면 산업 경쟁력 강화와 노동시장 개혁 등에 정부재정이 투자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과 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을 활성화하면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는 산업구조가 부실화하면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인데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예산만 투입한다고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며 “미래 산업 활성화, 규제·노동개혁이 되고 나서 정부 돈을 풀어야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도 “중소기업과 제조업의 경쟁력을 혁신하는 데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돈 쏟아붓는데 정책은 엇박자...취준생 2년새 7만명↑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6 17:24:27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월평균 취업준비생(취업을 위한 학원·기관 수강, 그 외 취업 준비의 합계)은 68만4,000명이었다. 2016년 61만4,000명에서 지난해 67만7,000명으로 6만명 이상 급증했던 취업준비생 수가 올해 들어 더 늘었다. 정부가 지난해와 올해 총 54조원의 대규모 일자리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취업준비생은 오히려 더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공공 부문 일자리 확충 정책에 있다. 청년들의 선호도가 높은 공공 부문 일자리가 늘면서 민간 기업으로의 취업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실제 지난해 통계청 조사 결과 13~29세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국가기관(25.4%)’이었다. 대기업(15.1%)이나 창업(11.3%)보다 선호도가 두 배가량 높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중소기업 취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청년내일채움공제 같은 저축상품은 설계 방향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상품은 재직자용 내일채움공제와 더불어 중소·중견기업의 청년 근로자가 일정 기간 돈을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이 지원금을 합해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청년 근로자와 정부 예산의 저축을 유도하는 정책이 소비 촉진을 통한 내수 성장과 상충한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되는 통계를 보면 내수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 있다. 소비자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달 99.2로 전달보다 1.8포인트 떨어지며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가 100 밑으로 내려간 것은 17개월 만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이 내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 확대가 필요한 시점에 근로자와 정부 돈을 묶어 소비를 더 줄이는 셈”이라고 질타했다. 최저임금이 올해 16.4% 인상되며 영세사업주를 위해 직원 1명당 월 13만원을 지원하는 일자리안정자금 역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고용주에게 돈을 직접 전달한다는 점에서 무리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추진한 정책인데 예산 설계가 잘못돼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5일 기준 일자리 안정자금의 예산집행률은 1조1,206억원으로 전체 예산액 대비 38.3%에 불과하다. 올해 지원 가능 인원의 99.6%인 235만명이 신청하고 이 중 72%인 170만명에게 지급됐는데도 집행이 저조한 셈이다. 정부는 신청자가 계속 증가하고 하반기로 갈수록 예산집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예산을 다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정부에서 공공 부문 일자리를 확충하면서 원래 민간기업으로 가야 하는 청년들이 공시족으로 바뀌고 있다”며 “일시적 예산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세종=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실적압박에 공공일자리만 늘려...'수백조 부담' 미래세대 몫으로
경제 · 금융 정책 2018.09.06 17:22:52공공기관 정원이 지난 2016년 이후 빠르게 급증한 것은 정년을 늘리는 대신 일정 나이 이후부터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를 별도 정원으로 두면서 기관들의 신규 채용 여력이 생겼고 2016~2017년 2년간 매년 1만5,000명 이상 늘었다. 많아진 사람만큼 생산성이 늘었는지는 물음표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은 ‘아니요’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270개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 63%에 해당하는 170곳은 임금피크제 대상자에 기존 업무를 그대로 맡긴 것으로 나타났다. 거꾸로 임금피크제 직원에게 적합한 별도 직무를 개발했다고 답한 기관은 65곳(24%)뿐이었다. 공공기관이 담당하는 업무는 지난 2년간 큰 변화가 없었는데 사람만 늘었다는 얘기다. 여기에 올해부터 청년실업의 해결책으로 공공기관 채용을 대폭 확대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일반 기업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비효율을 지탱하는 것은 재정이었다.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지원 예산은 2016년 65조5,000억원에서 2017년 68조5,000억원으로 3조원 늘었고 이 기간 공공기관이 지출한 인건비는 1조2,000억원가량 증가(산업은행 등 은행형 공공기관 제외)했다. 전체 공공기관 중 지난해 기준 62곳이 스스로 돈을 벌어 운영하지 못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수지차 보전 공공기관’임을 고려할 때 혈세로 꾸린 예산이 인건비로 흘러간 셈이다. 자체 수익모델을 통해 스스로 인건비를 벌어 쓰는 공공기관의 방만경영도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공공기관이 이익을 내면 정부가 배당을 받고, 손실이 클 때 역시 정부가 메꿔주는 만큼 따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8.6%인 660조7,000억원으로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2.7%(2016년)보다 낮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공공 부문을 포함한 부채(D3)는 1,036조6,000억원으로 GDP 대비 63.3%까지 대폭 뛰어오른다. 공공기관이 필요 이상으로 지출하는 인건비가 재정건전성을 좀먹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무원 증원 역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확대재정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공무원 17만4,000명을 늘리기로 하고 지난해 1만2,000명, 올해 2만7,000명의 공무원을 충원한 데 이어 내년에는 3만6,000명을 더 뽑기로 했다.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고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미래 세대가 떠안을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장기 소요재원에 대한 전망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예정처가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000명을 증원하면 누적 인건비가 327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을 뿐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개혁 없이 공무원만 늘린다면 다음 정부와 후세에 큰 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임시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것도 도마 위에 오른다. 정부는 내년에 올해보다 5,700억원 늘어난 3조7,666억원을 투입해 노인과 경력단절 여성,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재정 지원 일자리를 확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재정 지원형 일자리에 대해 ‘땜질식 처방’이라고 비판한다. 전직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정부가 재정으로 만드는 일자리는 없어도 될 자리에 사람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현금을 지원하는 복지나 마찬가지인 재정 일자리는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1회성으로 소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재정 일자리가 본래 목적과 다르게 활용되는 점도 문제다. 예정처가 지난해 정부의 직접 일자리 사업을 분석한 결과 직접 일자리 사업 50개 가운데 취약계층 참여 목표 비율이 35% 이하인 사업이 20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연구 운영비 지원’ 및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등 노후복지 지원’ 비율은 10% 수준에 그쳤다. 취업 취약계층의 고용창출과 고용안전을 추구한다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양질의 일자리를 추구한다는 정부가 저임금 일자리만 늘렸다는 지적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증액한 취업성공패키지지원 사업은 ‘취업상담(1단계)→직업능력 증진(2단계)→취업알선(3단계)’에 이르는 단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 취약계층의 취업을 강화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예정처의 분석 결과 1단계 종료 후 2단계에 참여하는 비율은 63.8%, 3단계 참여자 중 2단계 참여자의 비율은 54.9%에 불과했다.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취업자 중 50%가 월 180만원 미만의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급여 수준이 낮은 일자리로의 취업이 많고, 취업자의 고용유지율 역시 미흡한 것으로 평가됐다. 아울러 일자리를 늘린다며 시급하게 추경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수요예측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임진혁기자 세종=박형윤기자 liberal@@sedaily.com -
일자리 예산 실효성 벌써 논란
사회 사회일반 2018.08.30 16:27:59정부가 고용쇼크 극복을 위해 일자리 사업에 올해보다 약 4조원을 더 투입하는 내용의 2019년 일자리 예산안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벌써 제기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이 청년들을 더 뽑을 수 있도록 고용장려금 예산을 2조1,000억여원 늘렸지만 구직자들의 외면 속에 올해 예산도 다 소화하지 못한 상태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내년 일자리 예산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일자리 사업의 효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오는 2019년에도 면밀한 성과 평가를 진행하고 현장 감독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31일 국회에 제출하는 총 471조원 규모의 예산안 가운데 일자리 예산은 5%인 23조4,573억원에 이른다. 최근 5년 새 가장 비중이 크다. 정부는 170개 사업에 이 예산을 투입하며 고용부 소관 사업이 68개로 제일 많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올해(19조2,312억원) 대비 4조2,261억원, 약 22% 증액됐다. 유형별로는 고용장려금 예산이 5조9,204억원으로 올해 3조7,879억원보다 2조1,325억원 늘어나는 등 추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 먼저 중소·중견기업들이 청년 1명을 추가 채용하면 연 900만원씩 3년간 인건비를 지급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7,145억원)을 올해(3,407억원)보다 2배 규모로 확대했다. 정부는 내년 지원 대상을 올해 9만명에서 18만8,000명으로 늘려 잡았다. 이 밖에 청년들의 중소기업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1조374억원)도 2배로 커졌다. 실업급여 등 실직자의 사회안전망을 위한 ‘실업소득’ 사업(6조7,998억원→8조1,412억원)도 예산이 1조원 넘게 늘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에게 구직활동을 하는 6개월간 월 50만원씩 지급하는 2,019억원 규모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도 신설됐다. 하지만 올해 일자리 예산 집행률도 저조한 상태에서 액수만 늘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의 경우 신청자가 적어 이달 말 기준 올해 예산의 22%만 집행했다. 올해 청년내일채움공제 예산도 집행률이 절반도 안 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여건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인건비를 준다고 청년 취업자들이 몰려들겠느냐”며 “예산만 늘릴 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향상할 제도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세종=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타당성 떨어져 줄일 땐 언제고...47% 늘어난 공공도서관 예산
경제 · 금융 정책 2018.08.29 17:48:03공공도서관 건립과 작은도서관 조성 지원 예산은 지난 2017년 740억원이 편성됐지만 올해 712억원으로 4%가량 축소됐다. 다른 사업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린데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시급하게 요구하지 않는 등 전반적인 증액의 타당성이 떨어져서다. 그러나 이달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도서관·체육시설·교육시설·문화시설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지역 밀착형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해주기 바란다”고 말하며 분위기가 180도 돌변했다. 그 결과 정부가 29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는 도서관 관련 예산이 올해보다 47.8% 급증한 1,051억원까지 치솟았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확대재정의 맹점은 구조조정을 해야 할 사업도 묻혀간다는 것”이라며 “전반적인 확장기에는 예산을 심사하는 엄격함이 사라질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분야로 중소기업 등 산업 지원 예산이나 농림 등을 꼽았다. 그는 “재정 긴축기에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관련 예산을 삭감하기가 수월하지만 사업마다 이해관계자들이 엮여 확장기에는 쉽게 줄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기술혁신형 예비 및 초기 창업자 1,500팀에 최대 1억원의 오픈바우처를 지원하고 재도전 성공패키지나 창업도약패키지 등 창업자에 대한 예산 지원을 늘린 점도 정부의 투자 방향과 상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개별 창업자에 대한 현금지원보다는 생태계와 인프라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는 앞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창업 지원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내년 조세지출이 대폭 증가한 것도 돌연 예산이 증가한 사업들과 마찬가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비과세·세액 감면, 세액·소득공제 등으로 줄어드는 국세는 11년 만에 최대폭인 5조6,000억원 늘어난 47조4,000억원으로 전망됐다. 저소득층 소득 지원을 위한 근로장려금(EITC)이 수급자 연령·소득·재산요건 완화로 지급 대상이 2배로 늘고 지급액은 3배 넘게 늘어나면서 지급액이 올해보다 3조5,544억원 증가한 영향이 크지만 애초 올해 일몰 예정이었던 조세특례사업들이 대거 생명을 이어간 영향도 상당하다.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에 따른 감면액은 2조1,716억원에 달하고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 규모도 2조5,760억원으로 추정됐다. 농어업인이나 개인택시 부가가치세 등 올해 일몰 예정인 조세특례제도는 대부분 살아나며 조세지출을 늘렸다. 확대재정 기조 속에서 예산이나 마찬가지인 조세지출도 덩달아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의무지출 비중 51.6%인데...'밑빠진 독' 일회성 일자리에 돈 풀어
경제 · 금융 정책 2018.08.29 17:47:10“재정확대는 필요하지만 쓰는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개인 주머니가 아닌 안전망이나 교육체계에 써야 합니다.”(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기초생활권 보장, 생활환경, 보육과 의료 등 사람의 능력 제고에 투자해야 합니다.”(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정부는 내년 복지 분야에 올해보다 12.1% 늘린 162조2,000억원을 배정하는 등 총지출 규모가 470조5,000억원에 달하는 ‘초슈퍼예산’을 편성했다. 실업난 속에 주력산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양극화는 심화하는 형편에서 복지를 강화하고 재정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일은 진보와 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나 동의한다.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잘 쓰고 있는지다. 안타깝게도 지난해와 올해를 놓고 보면 54조원을 투자한 일자리 창출 사업은 고용 쇼크로 귀결됐고 인프라나 생태계 확충보다는 일자리안정자금이나 창업자금 지원, 공공일자리 등 그저 ‘돈풀기’성 정책만 눈에 띄는 모양새다. 지금 당장은 세수 풍년에 힘입어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지만 효과 없이 지출만 늘리다 보면 재정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가파른 지출 증가, 나라 살림 비상=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올해와 내년 2년간 복지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11.9%로 박근혜 정부(7.38%)나 이명박 정부(7.56%)를 크게 압도한다. 복지 분야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4.5%로 역대 최대치다. 복지예산을 통해 청년 일자리나 저출산, 소득분배 개선 등 구조적 요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렵다는 맹점도 존재한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이미 쓸 곳이 정해져 정부가 쉽게 줄일 수 없다. 주로 복지예산이 포함되는데 의무지출 비중은 내년에 51.4%를 기록한 뒤 오는 2022년에는 51.6%까지 늘어난다. 복지예산이 해마다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재정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올해 -1.6%에서 2022년 -2.9%까지 확대된다. 국가채무 역시 내년 741조원(GDP 대비 39.4%)에서 2022년 897조8,000억원(41.6%)으로 불어난다. 이에 대해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바른미래당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예산심의권을 최대한 활용해 현미경 예산심사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54조원의 일자리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최악의 고용 성적표가 나왔다.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성과가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일자리예산이 다시 반복됐다”며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따질 것”이라 주장했다. ◇‘최고의 복지’ 일자리 창출은 난망=건전성을 우려하는 지적에도 정부는 “재정투자가 시급하고 재정수지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부채비율이 111%(2015년)에 달한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해 보일 수 있다. 문제는 돈이 헤프게 쓰인다는 사실이다. 재정투자가 미래 성장동력의 마중물이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이 과도하게 많은데다 사업들도 촘촘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일자리예산은 22%나 늘렸지만 일시적인 공공일자리 사업이 대거 포함됐고 청년내일채움공제나 일자리안정자금 등 현금을 직접 손에 쥐여주는 예산 일색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산업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산업단지에만 집중투자한다”면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7조원도 자영업자 간 경쟁만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대했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복지예산은 경제와 연관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동력을 살리는 데 써야 한다”며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강조했다. ◇“세금, 고기 잡는 법 가르치는 데 써야”=전문가들은 혈세로 마련한 예산을 제대로 쓰려면 고기를 사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단기효과보다는 꾸준하고 장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재정지출의 중점을 직접지원보다는 간접지원에 둬야 한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김광두 부의장은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직접지원의 실패 사례를 제시했다. 1993년 구조조정이나 경제체질 강화가 요구됐지만 당시 정부는 내수를 북돋운다며 적극적인 ‘돈풀기’에 나섰고 그 결과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였다. 김 부의장은 “문 대통령의 ‘사람 중심 성장경제’는 사람의 능력 제고를 위한 투자로 설계했다”며 현재의 재정투자 기조를 에둘러 비판했다. 사람에게 재정을 투자하더라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확장재정이 중소기업이나 창업 지원에 과도하게 배정되며 시장 왜곡을 낳는다는 얘기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재정이 소비자에게 흘러가야 선택을 통해 우수한 생산자가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쉽고 빠르지만 그렇게 만든 일자리는 지속성이 약하다”며 “개인을 교육하는 데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
[세금, 제대로 쓰자] R&D 지원 10곳 중 1곳은 한계기업..'살수차식 뿌리기' 여전
경제 · 금융 정책 2018.08.29 17:45:14지난 28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9년도 예산안’을 보면 연구개발(R&D) 예산이 20조4,000억원으로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과학계에서는 R&D 예산을 20조원 넘게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이를 반영해 이번에 20조원 이상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R&D 지원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R&D 예산은 꾸준히 늘어왔다. 지난 1990년 9,000억원 수준에서 2001년 5조7,000억원을 기록한 뒤 2008년 11조1,000억원으로 불어났다. 2016년 이후로는 19조원대를 유지해왔다. 실속은 어떨까.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정부의 R&D 지원을 받은 기업 2만2,246건을 분석해보니 이중 한계기업에 돈이 나간 사례가 1,772건이나 됐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으로 이자보상비율이 1이 안 되는 기업을 뜻한다. 영업을 해서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다. 연도별로 보면 2012년에는 분석대상 3,139개 가운데 178개(5.7%)였던 한계기업 지원 건수는 △2013년 245건(7.2%) △2014년 274건(7.9%) △2015년 327건(7.9%) △2016년 352건(8.7%) △2017년 396건(9.8%) 등으로 증가했다. 한계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아도 기업이 계속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할 때가 많고 후속 투자도 어렵다. 업체가 문을 닫으면 정부 지원성과도 고스란히 날아가는 셈이다. 부처별로 보면 보건복지부의 감염병 위기 대응기술 개발은 지난해 한계기업 비중이 무려 50%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 사업도 한계기업 비중이 46.2%였다. 바이오 의료기술 개발도 37.5%다.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기업들이 많지만 향후 사업화와 지속적인 기술개발 가능성을 고려하면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조선해양 산업 핵심기술 개발(27.3%)과 중소중견기업 기술경쟁력 강화(21.4%)도 한계기업이 많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생명 산업 기술개발(25.6%)과 농촌진흥청의 차세대 바이오그린21(23.5%)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R&D 지원을 받고도 투자와 자산을 줄인 기업이 수두룩했다. 2012년 예산을 지원받은 3,320개 기업 중 1년 후 신규 투자가 줄어든 업체는 1,723개로 51.9%였다. 2년 뒤에는 1,830개 55.1%로 늘었고 3년 후에는 1,955곳 59%로 치솟았다. 4년 뒤에는 2,018개 61.1%가 투자를 줄였다. 정부가 R&D 지원을 할 때는 민간의 후속 투자를 기대한 것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자산도 마찬가지다. 2012년에 정부 지원을 받은 3,602개 조사기업 가운데 1년 뒤 자산이 줄어든 곳은 1,519개(42.2%)였다. 4년 뒤에는 1,541개(42.7%)로 상승한다. 예정처는 “기업 지원이 후속 투자와 연계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R&D 예산지원 문제는 나눠먹기 식 예산 배포가 원인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살수차가 물을 뿌리듯 나눠먹기 식으로 기업과 대학에 돈이 지원되는 게 문제”라며 “예산을 계속 늘리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출판된 정부 R&D 연구 논문의 피인용 현황을 알아보니 20.2%가 한번도 인용되지 않았다. 해외 특허도 미미하다. 정부 R&D 지원을 받은 국내 연구자가 2012년부터 2016까지 등록한 해외특허 7만2,104건 가운데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 지역에서 낸 특허는 772건(1.1%)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과학기술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난 2월 나온 ‘2017년 과기혁신역량평가’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7위를 차지했다. 전년보다 두 계단 내려앉았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앞으로는 예산을 더 강화할 부분과 줄일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며 “기업에 직접 돈을 푸는 지원 예산이나 R&D는 대학 중심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이시간 주요 뉴스
영상 뉴스
서경스페셜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