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의 中心잡기
트럼프2기, 동맹 지키고 실리 챙기는 고차원 외교 펼쳐야[김광수특파원의 中心잡기]
경제·마켓
2024.11.17 18:18:15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한중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개별 만남을 가졌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스쳐 지나가며 1분 남짓 만난 것이 전부였다. 당시 양국은 일정 조율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에 집중하던 시기였고 중국과는 협력할 만한 의제를 마련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역시 한국에 먼저 손을 내밀 만큼 긴급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좋은 판이 깔렸지만 아쉬울 것 없던 한중 양국은 다음을 기약했다. 한중 양국 정상은 15일(현지 시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조우했다. 이번에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이 열린 후 꼭 2년 만이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반도 정세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가속화 등 양국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특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데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후순위로 밀렸던 정상회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만남의 필요성이 커졌다. 트럼프 2.0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중국은 대응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군 확보를 위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에도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은 특히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교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비자 면제를 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가 원칙인데도 중국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무비자 혜택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일본에 허용했던 무비자 조치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격 금지됐고 지금까지 풀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4개월간 공석이던 주한 중국대사도 중량급 인사로 평가되는 다이빙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를 내정했다. 국장급 인사를 선임했지만 유엔에서 활약하던 다이빙 내정인의 이력을 보면 무게감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트럼프 2.0 시대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비해 주변 국가를 압박하던 ‘전랑(늑대전사) 외교’에서 벗어나 한층 유화적인 ‘판다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떠한 정책을 펼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했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될 경우 한국은 희생을 강요당할 수 있고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협력은 지정학·일방주의·보호주의의 경향 증가와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경제적 세계화는 변함없는 추세이며 세계화를 막고 ‘모든 종류의 변명’으로 고립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후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고립주의’를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 2기에서 더욱 노골화할 관세 및 방위비 압박,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의 유화책 속에서 한국은 더욱 중심을 잡고 국익 중심의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북한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과 협력해야 하지만 혈맹 관계인 북중 관계 역시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이어가면서 중국의 심기도 살피며 실리를 확보하는 고차원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에 난도 높고 중요한 과제가 떨어졌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값싼 기업으론 못 버틴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사내칼럼
2024.11.10 17:49:14
연초 실리콘밸리를 찾은 한 국내 대기업 사장급 인사와 미국 대선 향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자리를 함께한 이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이 한국 기업들에 미칠 리스크를 우려했다. 그 역시 변수가 커진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한국 기업들 모두 이미 한 번 겪어봤기에 첫 당선 때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대비가 돼 있어 8년 전과 같은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도 100% 확신하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간절한 희망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을 뿐 아니라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장악했다. 하원이 민주당에 넘어간 데다 레임덕에 시달리던 트럼프 1기 말과 비교하면 사법부 권력까지 장악한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의 리더십은 8년 전보다 더욱 강력할 것이 확실시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지난 4년간 추진한 정책은 내년 1월 모조리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 4년간 민주당 정책 기조를 따라왔던 우리 기업들도 새 판을 짜야 할 처지다. 당장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 한국 주력산업이 문제다. 특히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믿고 미국 내 투자를 늘려온 기업들은 약속됐던 지원금과 세액공제를 받아내는 게 관건이다. 바이든 정권이 지원금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면 트럼프 2기는 관세라는 ‘채찍’을 휘두르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반도체법을 믿고 미국 내 거액을 투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지원금 대신 한국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걱정하게 됐다. 약속은 됐으나 계좌로 들어오지 않은 보조금이 각각 64억 달러(약 8조 9000억 원), 4억 5000만 달러(약 6300억 원)에 이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에 기대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온 우리 자동차 기업도 “멕시코산 차량 200% 관세” 언급이 공포스럽다. 이미 시장은 트럼프 2기를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다. 환율은 치솟았고 지구 반대편 뉴욕 증시가 폭등하는 반면 코스피·코스닥은 하락세다. 대미 수출에 기대는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인텔·마이크론, 테슬라·GM·포드 등 미국 반도체·자동차 주가 폭등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불 보듯 뻔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도 우려를 키운다. 중국·대만 갈등은 한국에 호재가 될 수 없다. 지구적 관점에서 대만과 남한은 지척이고 휴전선과 국내 주요 반도체 생산지는 ‘생활권’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한국 국내총생산(GDP) 23%가 증발할 것이라는 블룸버그 전망이 나온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처럼 반도체법과 IRA를 전면 폐지하기는 힘들다는 낙관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행운에 기대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도 당초 예상보다 보조금을 타내기 어려워지거나 보조금이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우리 기업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공화당의 상·하원 석권은 4년 후 트럼프 당선인 임기가 끝나더라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사라지게 만든다. 한국은 무역 국가다. 결국 모든 전략적 결정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추세를 상수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은 우리의 장점이 될 수 없다. 관세 부담에도 한국 제품을 찾을 만한 강점을 지녀야 한다. 초미세공정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TSMC처럼 대체 불가능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 대체 불가능성만이 지정학적 위기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는 방책이기도 할 것이다.
윤홍우의 워싱턴 24시
'트럼프 시대'가 다시 와도 두렵지 않은 이유[윤홍우의 워싱턴24시]
정치·사회
2024.11.03 18:38:16
“‘팀 엔비디아’ 없이 미국이 미중 인공지능(AI)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최근 미 워싱턴DC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트럼프 시대’가 다시 닥쳤을 때 한국의 생존 전략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팀 엔비디아’는 글로벌 AI 반도체 대전의 승자인 엔비디아와 TSMC·SK하이닉스를 일컫는 말이다. AI가 미중 전쟁의 최전선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더라도 한국 반도체 기업 없이는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전 세계는 ‘트럼프 리스크’에 떨고 있다. 선거 막판까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트럼프의 지지율은 초박빙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트럼프의 ‘숨은 표’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초박빙 판세는 트럼프에게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워싱턴DC의 각국 공관과 뉴욕 월가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비중 있게 보고 후폭풍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당선은 한국 경제에도 메가톤급 충격을 미칠 수 있다. 그의 재임 1기 대표적 경제 성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며 백악관 재입성 시 보편적 기본 관세(10~20%) 부과,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반도체 관세 부과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하나같이 한국 기업들에는 예민하고 대응하기 고통스러운 이슈들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대미 무역 흑자 신기록을 쓰고 있는 한국은 ‘무역 적자’에 몸서리치는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에게 1순위 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8년 전 트럼프를 처음 마주한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체급이 다르다”는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 들려온다. 무엇보다 미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미국의 무역과 공급망에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미국 입장에서 8년 전과 달리 중국의 위협이 굉장히 절박한 상황까지 다다랐다”면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공급망과 제조업 부흥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의 특파원 임기 동안 현장에서 가장 절실히 느낀 점도 우리 기업들의 괄목할 만한 위상 변화였다. ‘제조업 부활’을 내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 반도체를 언급한 것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노골적인 ‘미국산’ 우대 조항을 넣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두 자릿수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화는 미국의 필리조선소 인수를 진행 중인데 중장기적으로 미 해군의 역량 강화에 힘을 보태려 하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핍박을 견뎌내고 미국 시장을 점령한 LG와 삼성의 ‘세탁기 신화’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2017년 LG와 삼성을 견제하려는 미 가전 기업 월풀의 청원을 받아들여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미국 공장 건설을 앞당기고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는 등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해 “세이프가드 조치로 미국 세탁기 산업의 생산량 및 점유율이 높아졌으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기업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한국 기업 두 곳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2기’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리스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이익은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논리로 무장해 민관이 적극 대응하고 미국이 스스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쟁력을 갖춘다면 누가 미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한국이 더욱 필요하고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가 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미 정치권 인사의 발언은 한국의 대미 전략에 있어 곱씹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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