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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영원한 빅테크는 없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IT 2024.05.19 21:21:17
인공지능(AI)의 태초에 IBM이 있었다. 1997년 인간 체스 챔피언을 처음으로 꺾은 ‘딥 블루’,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74연승을 거둔 ‘왓슨’은 AI가 인간을 압도할 것이라는 공상과학 속 ‘상상’을 현실로 보여줬다. 왓슨이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듯했다. 기업들은 왓슨을 모셔오기 바빴다. 국내에서도 왓슨 도입 소식이 잇따랐다. 가천대 길병원, 부산대병원, SK그룹, 롯데그룹, 현대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찰나의 영광이었다. 오늘날 왓슨은 실패작으로 낙인찍힌 채 잊혀지는 중이다. IBM은 챗GPT가 등장하기도 전인 2022년 1월 왓슨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IBM은 이후 ‘왓슨X’라는 이름의 AI 플랫폼을 내놓았으나 타사 AI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그쳤다. 초거대 AI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다. 최초로 D램을 개발하고 개인용컴퓨터(PC)와 AI 시대를 열었던 IBM은 빅테크로도 언급되지 못하는 처지다.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은 첫 테크기업은 휴렛팩커드(HP)였다. 1939년 HP가 설립된 팰로앨토의 허름한 차고는 ‘실리콘밸리 탄생지’라는 이름의 미 연방 사적(史蹟)으로 지정됐다. HP 출신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창업하고 애플Ⅰ·Ⅱ를 홀로 설계해 ‘PC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대표적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HP도 이제는 잊혀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그 자체이던 HP를 빅테크로 언급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제록스는 한때 세계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던 회사다. 오늘날 검색을 ‘구글링’이라 부르듯 복사를 ‘제록싱’이라 칭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는 전설적인 공간이다.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이더넷, 마우스, 워드프로세서의 필수 기술인 위즈위그(WYSIWYG),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이 모두 PARC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최근 제록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감원뿐이다. 제록스는 이제 빅테크는커녕 테크기업으로도 불리지 않는다. 집적회로(IC) 발명자 로버트 노이스와 ‘무어의 법칙’ 창시자 고든 무어가 창립한 인텔은 한때 반도체 그 자체였다. ‘실리콘밸리의 시장(Mayor)’이라는 노이스의 별명이 그 시절 인텔의 위세를 상징한다. 인텔은 여전히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최강자지만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전 최고경영자(CEO) 시절의 ‘적폐’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복귀 부담에 침체기를 지나는 중이다. 이달 17일 기준 인텔의 시총은 1356억 달러. 시총 2조 2700억 달러인 엔비디아는 물론 경쟁사 AMD(2658억 달러)에도 밀린다. 이제 반도체 대표주로 인텔을 꼽는 이는 없다. 애플은 마케팅 혁명을 불러일으킨 회사다. 빅브러더를 부숴버리는 매킨토시 ‘1984’ 광고는 고전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애플이 최근 광고로 망신살을 샀다. 유압프레스로 ‘문화’의 상징들을 파괴하는 아이패드 광고가 거센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과거 애플이었다면 ‘쿨하다’는 반응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충성 소비자층인 창작자들의 대대적인 공세였다. 오랜 혁신 부재에 테크계 그 어떤 기업보다도 굳건하던 애플 ‘팬심’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비전프로는 출시 넉 달이 채 되지 않아 실패 선고를 받았다. AI 도입이 늦어지며 아이폰 점유율 또한 하락세다. 일각에서는 팀 쿡 CEO를 대체할 ‘차기 리더십’까지 거론하는 실정이다. 생성형 AI의 기틀인 ‘트랜스포머’ 구조는 구글이 발명했다. ‘AI 원조’를 자부하던 구글의 입지도 오픈AI와 챗GPT의 등장에 흔들리는 중이다. 구글 I/O 2024에서는 과거와 다른 조급함이 감지됐다. 오픈AI가 언급될 때 구글 임직원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I/O 전날을 겨냥한 오픈AI의 GPT-4o 발표에 “미시적 순간”이라고 일축했으나 약진하는 경쟁사를 애써 무시하려는 듯한 인상을 숨기지 못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메모리 1위 자리에 안주해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삼성전자가 떠오른다. 천년 왕조가 없듯 영원한 빅테크도 없다. 혁신이 멈출 때 어제의 영광은 내일의 몰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세계 최강 해군을 보유한 美 조선업의 민낯[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정치·사회 2024.05.12 18:09:04
8일(현지 시간) 미 의회에서는 ‘국가 해양 전략을 위한 의회 지침서(미국의 해양 능력 복원)’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나왔다. 마코 루비오(공화 상원), 마이크 월츠(공화 하원), 마크 켈리(민주 상원), 존 가라멘디(민주 하원) 등 양당의 주요 상·하원 의원들이 발표에 참여했다. 핵심 내용은 ‘미국의 조선·해양업을 부활시키기 위한 긴급한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비오 의원은 “미중 경쟁이 21세기를 정의할 것이고 양국 갈등이 가장 치열한 곳은 해상”이라며 범국가적 대응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미 해양 능력 복원을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 필요성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미 의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미 조선업의 참혹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1975년 한 해 70척의 상업용 선박을 생산하며 세계 1위를 차지했던 미국의 조선업은 50여 년이 흐른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1%의 점유율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중국 조선업은 정부의 대대적인 보조금 등 전략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1위로 올라섰는데 지난해 중국이 생산한 원양용 선박은 무려 1000척 이상으로 고작 10척을 생산한 미국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해양 강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조선업이 몰락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존스법’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1920년 제정된 이 법은 미국 선박만이 미국 항구에서 다른 항구로 물품과 승객을 운송할 수 있게 하며 이들 선박은 미국이 만들고 소유하고 운항하도록 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콜린 그래보는 “존스법은 미 조선업을 국내 시장에 종속시켜 규모 확장, 효율성, 혁신 및 전문화를 저해했고 결국 퇴보시켰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이 건조하는 유조선의 가격은 다른 나라보다 약 4배 이상 비싸 존스법의 보호가 아니라면 조선업의 명맥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 해군은 이를 국가 안보적 위기로 본다. 카를로스 델 토로 미 해군 장관은 지난해 하버드 케네디스쿨 강연에서 “조선업과 해운업이 강하지 않은 나라가 위대한 해군을 가졌던 전례는 없었다”며 상업용 조선 시장에서 미중 간의 격차가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위대한 해군 전략가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의 저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면서 “중국의 지도부는 머핸의 이론을 읽고 연구했으며 그들의 행동이 그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미 무역대표부가 최근 중국 조선·해양·물류업을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한 것은 중국 조선업에 대한 미국의 공포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조사는 전미철강노조를 비롯해 5개 노조 단체가 중국을 상대로 조사 청원을 하면서 시작됐으나 사실상 중국 조선업을 견제하려는 정부와의 교감 속에 청원이 이뤄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번 조사의 최종 목표가 중국의 조선업 능력 약화, 특히 중국 챔피언인 중국국영조선공사(CSSC)를 겨냥한 것으로 본다. CSSC는 글로벌 조선 시장을 지배하며 인민해방군을 위한 군함을 생산하는 중국 민군융합전략의 핵심 기업이다. 하지만 중국에 대해 무역 압박을 강화한다 해도 수십 년에 걸쳐 무너진 미국의 산업 경쟁력이 복원되지 않는다는 점이 미국의 고민이다. 이미 미국 내 조선소들은 설비 노후화와 높은 인건비에 시름하고 있으며 공급망이 무너져 원자재와 부품 조달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의 자본과 기술을 끌어들여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 군함의 유지·보수(MRO)를 한국과 일본 회사에 맡긴 것이 그 시작이며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결국 군함 제조까지 동맹에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내 안보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미중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위기와 미국 산업의 취약점을 우리의 실익으로 만들 수 있는 고도의 산업 전략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김흥록 특파원의 뉴욕 포커스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려면[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국제일반 2024.04.28 17:46:51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경제의 기적이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1970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6.4% 성장했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차츰 둔화하다가 2040년대는 -0.1%의 마이너스 성장 시대로 접어든다는 전망을 인용하기도 했다. FT는 그 배경으로 △대기업 위주의 경제 △갈수록 커지는 대·중소기업 격차 △대기업 3세들의 현실 안주 △원천 기술 부족 등을 원인으로 진단했다. 한마디로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의 시대는 끝났는데 이를 극복할 주체가 안 보이고 제반 여건도 좋지 않다는 진단이다. FT가 대기업 오너 3세들을 언급한 이유는 대기업이 한국 성장을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대기업에서조차 혁신적인 도전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현상 설명일 것이다. 이 같은 지적이 간과하는 부분은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여전히 활발하고 신규 도전을 주저하는 기업이 대기업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이나 SK·현대차·LG 그룹 등은 미국 현지에 연구개발(R&D)과 투자 조직을 확장하고 현지 인재 확보 네트워크를 늘리고 있다. 혁신과 도전의 상징인 스타트업들도 점점 한국 아닌 미국에서 도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해외 본사를 둔 스타트업은 148개로 2020년보다 20% 늘었다. 퍼스트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한 한국 기업가들의 도전 자체가 사라졌다기보다 한국 내 도전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가의 입장에서 한국과 미국에서 조직을 운영할 때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노동 유연성이다. 사업 방향에 맞춰 조직을 구성했다가 상황에 맞춰 규모나 인적 구성을 조정하고 때로는 조직을 해체하는 일이 미국에서는 가능하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직원들이 사표를 내지 않는다면 계속 채용을 유지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 과정은 사업 환경에 맞춘 변화가 필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한 번 채용하면 조직의 규모나 인적 구성을 바꾸기 어렵다. 실패할 경우에도 여전히 인력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실패 이후에도 인력 비용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최근 이례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로 노동 유연성을 꼽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월가의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인력이나 인수합병 전문가 등을 대거 채용하며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했다. 이후 수요가 감소하자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해고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실업률이 3%대로 역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해고된 개발자나 금융 전문가들이 국방 기업이나 중소기업 등 인력이 필요한 다른 영역으로 흡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당시 15%까지 올랐던 미국의 실업률이 2년 만에 3%대의 완전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위기 당시의 비용 관리를 통해 다시 채용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 성공의 비밀’이라는 칼럼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은 비록 일시적으로 높은 실업률을 초래했지만 이후 강력한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FT가 한국 경제의 동력 상실 원인으로 제시한 여러 항목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내용은 없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등 대부분의 지적은 우리가 적어도 10년 이상 풀기 위해 노력한 문제들이다.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명쾌한 해답이 도출되지 않았다. 이에 FT의 지적을 통해 우리가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은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그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른 해법을 추구했는지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를 벗어나고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것은 좋은 노력이지만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노동 유연성은 그 중 우선순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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