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가장 실리콘밸리적인 스타트업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사내칼럼
2024.12.01 18:18:08
최근 실리콘밸리 한인 벤처캐피털(VC) 파트너에게서 흥미로운 투자 사례를 들었다. 투자 대상 회사가 자리한 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닌 호주 시드니, 창업자는 영국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한 한국계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다. 회사를 알고 투자에 이르게 된 과정이 흥미로웠다. VC 측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레드에서 회사를 처음 접했고 투자를 마무리한 지금까지 창업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스토리보드를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한 이 회사의 서비스 대상 지역은 190여 개국으로 사실상 글로벌 전역에 걸친다.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창업하지도, 채용하지도 않았으나 가장 실리콘밸리적인 성장 과정과 서비스로 VC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결국 투자까지 받아낸 경우다. 본격적인 서비스 출시를 앞둔 또 다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근무 인력은 한국인 창업자와 투자자, 20대 초반 백인 여성 디자이너로 단출하다. 뉴욕에 사는 디자이너는 링크드인을 통해 채용했다. 창업자와 디자이너는 아직 만난 적도 없다고 한다. 업무는 원격으로, 회의는 줌으로만 이뤄진다. ‘한국인 아저씨’인 창업자는 회의 때마다 디자이너에게 “감각이 낡았다”며 혼나기 바쁘지만 젊은 뉴요커의 트렌디한 센스에 감탄만 나온다고 한다. 이 회사는 한국부터 서비스를 선보이지만 목표는 글로벌 시장이다. 나이도, 인종도, 물리적 거리의 장벽도 무력화한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지인이 “장강의 앞 물이 된 것 같다”며 들려준 한 스타트업의 얘기도 흥미롭다. 사업상 만난 디자인 에이전시가 동남아 화장품 광고를 수주해 중국 촬영팀과 유럽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결과물을 내놓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회사의 대표는 한국인 20대 여성. 회사는 한국에 있으나 사업 영역은 전 세계를 아우른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도, 테크 기업도 아니지만 글로벌 각지의 창의성을 한데 모아 결과물을 내놓는 사고의 유연성은 어떤 기업보다 실리콘밸리적이다. 과거 실리콘밸리는 샌프란시스코 인근 테크 기업과 VC·대학이 모여 기술 혁신을 이끄는 ‘물리적 공간’을 의미했다. 물론 빅테크에서 일하는 대규모 인력, 전설적인 투자 성공 사례를 써왔던 VC, 스탠퍼드대로 대표되는 고급 인력 교육은 실리콘밸리가 세계 기술 혁신의 메카로 위상을 굳건히 하는 원동력이다. 이제 혁신의 에너지는 스타트업으로 흘러가면서 물리적 공간이 아닌 혁신을 향한 정신과 태도로 정의되고 있다. 기술 발전이 이뤄낸 세계화 덕분에 실리콘밸리는 물리적 한계를 이미 뛰어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 완전 재택근무가 줄어들고 있지만 조직 구성과 업무가 지역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이뤄지는 일은 스타트업은 물론 빅테크에서도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인재를 실리콘밸리나 뉴욕처럼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면서까지 오프라인으로 모셔오기보다는 원격 업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하며 미국으로의 이직·창업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비자 걱정에 고심하는 한인 창업가와 엔지니어들이 많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굳이 현지 진출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사무실과 법인 등기는 미국에 있으나 서비스는 국내용인 ‘무늬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보다는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이 없더라도, 실리콘밸리 인력을 채용하지 않더라도, 테크 기업이 아니더라도 사업의 정신과 방식에 혁신이 녹아 있다면 단연코 ‘실리콘밸리적인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기업은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주머니 속 송곳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와 실리콘밸리가 먼저 찾아간다.
김흥록 특파원의 뉴욕 포커스
트럼프의 비트코인, ‘펌프앤덤프’인가 ‘경제 전환점’인가[김흥록 특파원의 뉴욕포커스]
사내칼럼
2024.11.24 18:00:25
대한민국 정부의 ‘트럼프2.0 대응’ 시나리오에 통상·외교안보 등에 이어 한 가지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비트코인과 국가경제’ 챕터다. 2021년만 하더라도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올 7월 “정부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고 국가 전략 비트코인 보유액의 기반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을 금이나 석유처럼 미국 정부의 준비금(reserve)으로 쌓겠다는 공약을 두고 당시엔 정치적 수사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대선 승리 이후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립서비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정권인수팀은 백악관 가상자산위원회 설립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 위원회의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비트코인 보유액 구축 논의다. 비트코인 비축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소속 신시아 루미스 상원 의원은 트럼프 취임 이후 100일 내에 통과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주정부도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주 펜실베이니아주 의회에는 주정부 예산의 최대 10%를 비트코인 비축에 쓴다는 법안이 발의됐다. 트럼프가 노리는 정책 효과는 국가부채 감축이다. 정부 자산으로 쌓은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현재 35조 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복안이다. 트럼프는 8월 인터뷰에서 “누가 알겠냐마는 아마 우리가 35조달러를 갚게 될 것”이라며 “채권자들에게 비트코인 수표를 끊어주고 35조 달러를 장부에서 지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미스 의원은 5년간 매년 20만 개의 비트코인을 매수해 2045년까지 미국 부채의 절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부채 감축 효과를 놓고 논란은 적지 않다. 미국이 압류분 포함 총 120만 개의 비트코인으로 2045년에 국가 부채의 절반(약 17조 달러)을 감축하려면 비트코인 가격은 20년 뒤 개당 1417만 달러 수준이어야 한다. 이 정도 가격을 전망하는 이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창립자(1300만 달러)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부채 감축 효과를 떠나 국가 재정을 비트코인에 맡긴다는 점에 대한 상하원 의원들의 거부감도 상당하다. 게다가 트럼프가 개인 가상자산 사업을 준비하는 정황이 나오면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비트코인 비축 공약이 역대 최대의 ‘펌프앤덤프(Pump and Dump·가격을 띄운 뒤 일거 매도)’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런 FT도 실현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는다. 트럼프가 개인적 사업 성공과 국가부채 감축이라는 두 토끼를 노리는 것일 수 있다. 부채 감축 효과가 미지수라도 미국이 디지털 금융 산업을 선도하는 효과는 있다는 지적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비트코인 보유액이 현실화할 경우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크다. 미국 정부가 선택한 자산을 자국 보유액에 넣어야 하는지를 두고 각국 정부의 후속 검토가 뒤따를 것이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도 결정의 순간을 맞닥뜨릴 것이다. 국민 여론을 고려해야 하고 글로벌 주요 자산에서 소외되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 미국 국채시장의 변동에도 대비해야 한다. 만약 트럼프의 의도대로 미국 부채가 줄어들 가능성이 보인다면 미국 국채금리는 하락할 것이다. 반대로 여러 나라들이 비트코인 비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한다면 금리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트코인의 신뢰 부족이 미국 재정에 대한 신용 프리미엄을 높여 국채금리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국채금리는 우리 통화정책과 환율, 기업 활동에 직결되는 문제다. 외국인 투자 증감, 기업들의 해외 자금 조달 비용 등 한국 경제의 여건을 바꿀 수 있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트코인으로 정부 부채를 줄일 기미가 보이면 국민연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해 부족분을 해소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예측 사이트 폴리마켓에서는 트럼프의 비트코인 공약이 현실화할 확률을 30~40%대로 보고 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우리 경제에 또 하나의 과제를 던졌다.
김광수의 中心잡기
트럼프2기, 동맹 지키고 실리 챙기는 고차원 외교 펼쳐야[김광수특파원의 中心잡기]
경제·마켓
2024.11.17 18:18:15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인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당시 한중 정상회담은 불발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개별 만남을 가졌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스쳐 지나가며 1분 남짓 만난 것이 전부였다. 당시 양국은 일정 조율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에 집중하던 시기였고 중국과는 협력할 만한 의제를 마련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 역시 한국에 먼저 손을 내밀 만큼 긴급을 요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좋은 판이 깔렸지만 아쉬울 것 없던 한중 양국은 다음을 기약했다. 한중 양국 정상은 15일(현지 시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조우했다. 이번에는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회담이 열린 후 꼭 2년 만이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반도 정세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가속화 등 양국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특히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데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후순위로 밀렸던 정상회담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국제 정세가 급변하면서 만남의 필요성이 커졌다. 트럼프 2.0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중국은 대응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군 확보를 위해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던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유럽과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에도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은 특히 한국을 향해 적극적인 소통 의지를 보이고 있다. 수교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비자 면제를 해준 것이 대표적이다.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가 원칙인데도 중국은 일방적으로 한국에 무비자 혜택을 제공하는 ‘파격적인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일본에 허용했던 무비자 조치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전격 금지됐고 지금까지 풀어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 4개월간 공석이던 주한 중국대사도 중량급 인사로 평가되는 다이빙 주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를 내정했다. 국장급 인사를 선임했지만 유엔에서 활약하던 다이빙 내정인의 이력을 보면 무게감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트럼프 2.0 시대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비해 주변 국가를 압박하던 ‘전랑(늑대전사) 외교’에서 벗어나 한층 유화적인 ‘판다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떠한 정책을 펼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맞춰 한미 동맹을 강화했지만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될 경우 한국은 희생을 강요당할 수 있고 적잖은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시 주석은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협력은 지정학·일방주의·보호주의의 경향 증가와 같은 과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경제적 세계화는 변함없는 추세이며 세계화를 막고 ‘모든 종류의 변명’으로 고립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후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고립주의’를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 2기에서 더욱 노골화할 관세 및 방위비 압박,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의 유화책 속에서 한국은 더욱 중심을 잡고 국익 중심의 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북한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과 협력해야 하지만 혈맹 관계인 북중 관계 역시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이어가면서 중국의 심기도 살피며 실리를 확보하는 고차원적인 외교가 필요하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에 난도 높고 중요한 과제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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