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아간 포스코퓨처엠(003670)의 전남 광양 전구체 공장은 전 설비가 ‘풀가동’ 되면서 직원들이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올해 6월 준공해 연간 4만 5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이 공장은 가동되기 시작한 지 3달 밖에 안됐다. 초기인 만큼 일감이 부족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4개조를 이룬 직원들이 총 10개의 라인을 돌려 24시간 전구체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전구체는 양극재로 만들어져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내 배터리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로 납품된다.
전구체는 니켈·코발트·망간 등 원료를 녹여 반응기에서 이온화한 뒤 침전시켜서 나온 분말을 말한다. 여기에 탄산리튬 등 리튬 원료와 섞어 고온에서 장시간 가열하면 양극재가 만들어진다. 사실 포스코퓨처엠의 전구체 생산 경력은 중국 등 다른 경쟁사보다 부족하다. 하지만 포스코퓨처엠이 얼티엄셀즈를 사로 잡은 것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리사이클 원료를 활용한 전구체 제조 공법 덕분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이 공법을 연구하는 국책과제를 2020년부터 수행했고 5년 간의 연구 끝에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포스코퓨처엠은 반응 용액의 농도, 원료·용액의 혼합 속도 등을 최적화해 불순물의 농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구형도(입자의 둥근 정도)와 배향성(입자의 배열 방향) 등의 특성이 우수한 전구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테스트 결과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특성 모두 광물 원료를 사용해 만든 전구체와 동등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리사이클 원료를 활용한 전구체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이다. 전구체는 광물원료가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니켈·코발트·망간으로 대체할 경우 생산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이는 결국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포스코퓨처엠은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20년부터 10년이 지난 2030년부터 리사이클 원료를 활용한 전구체가 시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한 포스코퓨처엠 연구위원은 “포스코그룹은 2차전지 사업 진출을 검토할 때부터 리사이클 사업에 대한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며 “폐배터리 공급망이 더 안정화되고 재활용을 위한 원료 확보가 원활히 진행된다면 리사이클 전구체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망의 탈(脫)중국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2년 산화리튬과 수산화리튬의 중국 의존도는 87.9%였다. 전구체 자체도 올해 3월 기준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비중이 90% 이상이다. 이에 포스코퓨처엠은 전구체 공장을 구축한 데 이어 전구체 소재까지 리사이클을 통해 확보해 중국 의존도를 크게 낮춘 것이 미국 기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울러 포스코퓨처엠은 인근의 포스코HY클린메탈로부터 재활용 원료를 공급받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했다. 포스코HY클린메탈은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블랙 매스’를 구매한 뒤 니켈·코발트·망간·리튬 등 양극재의 핵심 원료들을 뽑아낸다. 현재 연간 1만 2000톤의 블랙 매스를 처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고 이를 통해 니켈 2700톤, 코발트 800톤, 망간 800톤, 탄산리튬 2500톤을 추출한다. 김 연구위원은 “폐배터리 회수 공급망을 갖췄는지가 핵심 전략으로 떠오를 것”이라며 “중국은 이미 블랙 매스의 반출을 막고 전 세계에서 나오는 폐배터리를 쓸어 담으며 무기화를 준비하고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의 공급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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