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핵심 산업에만 247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데는 위기 속에서 성장과 혁신의 기회를 잡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등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가 적극적인 기업 활동 지원을 약속한 만큼 오히려 지금이 선제적 투자를 통해 확실한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17년 만에 재계 순위 2위에 오른 SK가 이번에 발표한 투자 금액도 삼성(450조 원)에 이어 국내 그룹 중 두 번째로 많다. SK는 특히 국내에만 179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쏟아부으며 개별 기업을 넘어 국내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26일 SK가 발표한 향후 5년 투자 계획을 보면 그룹은 반도체(Chip)와 배터리(Battery), 바이오(Bio) 사업 확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 SK는 이들 세 가지 분야의 영어 앞 글자를 따 ‘BBC’로 약칭하고 이들 분야에 전체 투자액의 90%를 투입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SK는 2026년까지 △반도체와 소재에 142조 2000억 원 △전기차 배터리 등 그린 비즈니스에 67조 4000억 원 △디지털에 24조 9000억 원 △바이오 및 기타에 12조 7000억 원을 투자한다. SK 관계자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반도체라고 보고 반도체와 반도체 소재에 전체 투자 규모의 절반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와 소재 분야의 투자는 주로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집중된다. SK하이닉스가 최근 착공계를 제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해 반도체 팹 증설, 특수가스와 웨이퍼 등 소재·부품·장비 관련 설비 증설 등이 투자 대상이다. SK하이닉스는 또 청주에 추가적인 공장 증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반도체와 소재 분야 투자가 지역 경제 활성화와 2·3차 협력 업체의 투자·고용 창출로 이어져 경제적 파급 효과도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대·중소기업과 지역사회와의 상생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그린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기차 배터리와 분리막 생산 설비를 증설할 계획이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국내외 증설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 공장을 포함해 총 생산 능력을 2025년 220GWh에서 2030년 500GWh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인 분리막을 생산하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도 생산 설비 증설에 박차를 가한다.
최근 SK가 주력하는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생산 설비를 갖추거나 글로벌 기업에 투자해 기술력을 강화한다. 앞서 최 회장은 3월 그룹 에너지 사업의 핵심 거점인 SK이노베이션 울산 공장을 방문해 “에너지와 환경을 통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지도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글로벌 에너지 믹스, 세계적 탈탄소 정책 등 경영 환경 변화 속에서 카본 비즈니스(탄소 기반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며 “더 큰 형태의 비즈니스를 만드는 방향으로 계속 혁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탄소 감축 추세에 대응할 에너지 기술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SK 관계자는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 감축 목표량(210억 톤)의 1%인 2억 톤의 탄소를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제로)를 앞당길 방침”이라고 말했다. SK E&S도 국내 민간 최대 재생에너지 사업자로 현재 2.7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운영·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분야에서 협력에 나섰다.
바이오 분야는 뇌전증 신약과 코로나19 국내 백신 1호 개발 신화를 이어갈 후속 연구개발비와 의약품위탁생산시설(CMO) 증설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 분야는 유무선 통신망과 정보통신 콘텐츠 개발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SK는 그룹의 성장 동력을 찾고 이를 키워나갈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고용 창출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2026년까지 SK가 채용할 인력 규모는 5만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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