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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냉장고 속 음식, "믿고 먹을 수 있나요" [지구용]

지자체 지원 0, 주민 자발적 기여로 수원서 39개 운영

"돈보다 더 센 인센티브는 자존감, 명예, 재미, 보람"

수년간 구축된 주민 네트워크가 '인간 CCTV' 역할까지

/사진=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 그래픽=정유민 디자이너




지난 번에 서울 관악구의 공유냉장고(레터 다시보기) 이야기를 전해드렸는데, 그 때 온라인에서 엄청 공유됐지만 이런 반응도 많았어요. "그걸 어떻게 믿고 먹어?" 그래서 공유냉장고 끝판왕인 수원시를 찾아갔어요. 수원 공유냉장고는 39대나 되는데 4년 동안 음식 안전 문제가 1도 없었다는 제보가 접수됐거든요.

돈보다 좋은, 최고의 인센티브


여기서 중요 사실!!!수원시 공유냉장고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게 아녜요.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홈피 클릭)'란 민관협력기구('지속협'은 수원뿐만 아니라 전국 지자체 120곳에 있대요)랑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돼요. 시청이나 동사무소 자금 지원은 0원! 냉장고는 모두 기부 받은 물품!

사람들이 돈도 안 받고 자발적으로 냉장고를 운영한다니까 더더더 신기하죠? 이게 머선 일인지 수원 지속협 박종아 사무국장님(사진 오른쪽부터)이랑 임효정 간사님, 김가영 담당관님께 들어봤어요.



"공유냉장고 운영자님 중에 장용옥 선생님(2호점)이 계세요. 냉장고를 관리하면서 취약계층 분들께 직접 먹거리 배달도 하시고, 이웃 분들도 냉장고에 넣으라며 농산물을 갖다주시고요. 그런 식으로 이웃들과의 인간관계가 엄청 넓어지고 '지역 명망가'가 되셨어요."

박 국장님의 말씀에 힌트가 있어요. 아무런 경제적 인센티브도 없는데 냉장고를 왜 챙기나 싶지만 그렇지가 않대요. 경제적 인센티브는 없는 대신 마음의 인센티브가 어마어마해요. 박 국장님은 "돈보다 더 센 인센티브가 자존감, 명예, 재미, 보람"이래요. 냉장고 운영자님들은 대체로 50~60대 지역 통장, 자영업자들이신데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자 먹거리 공유 체계의 핵심이란 자부심이 엄청나시대요. 냉장고에 익숙해진 이웃 주민들도 도와주시고, 고맙다고 메모를 남겨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유냉장고 이용자가 남긴 메모. /사진=수원지속협


"이런 인센티브가 월급보다 무서운 것 같아요. 엄청나게 행복해 하시거든요. 힘들면 언제든 그만두시라고 하는데 오히려 사색이 되시더라고요.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거니까요. 공유냉장고를 보고 '공유지의 비극(공공 소유의 토지를 이용만 하고 아무도 가꾸지 않는 현상)'을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공유지의 희극이에요. 저희도 냉장고 사업을 보고 감동받아요."

2018년 수원 고색로에 1호점이 설치된 이후로 이제 4년. 냉장고 운영자님들은 자발적으로 '수원공유냉장고 시민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회비를 걷고 3개월마다 운영위원회를 열고 계세요.단톡방에서 수시로 냉장고 운영 현황이나 문제점도 공유하시고요. 얼마 전에는 마이쮸 한 알을 두고 간 어린이 덕분에 모두가 즐거워하셨대요.

수원 공유냉장고는 지점별로 다르지만 매일 20~30명 정도 이용한대요. 음식을 채우면 한두 시간 내로 나눔 완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혹시나 그날 밤까지 남는 음식이 있으면 운영자님이 폐기처분.

냉장고는 전부 지속협에서 기부받았대요. 냉장고가 필요할 때쯤 박 국장님이 어떻게든 기부를 받아오신다고.

강력한 인간 CCTV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은 누군가가 음식물에 독극물이라도 넣으면 어쩌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요. "냉장고가 지역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인간 CCTV'가 생겼다"는 답변.

예를 들어 드물지만 냉장고에 왜 음식이 없냐며 시청에 전화하겠다는 식으로 진상(그러나 시 예산 투입 0이라 타격 제로)을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럼 옆 철물점 사장님이랑 앞 슈퍼 사장님이랑 근처 아트박스 사장님까지 나와서 운영자님 편을 들어주신대요. 몇 년째 냉장고를 지켜봐 온 토박이들이 똘똘 뭉치면 누구라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고요.

1999년 드라마 '허준'. /사진=MBC


이렇게 온 사방에 상주하는 이웃 분들이 있다 보니 수상한 짓을 할 여지가 없어요. 공동체의 힘!!

옆집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차가운 도시인들은 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에요. 조선시대엔 머슴들이 CCTV 역할(위 자료사진)을 했고, 현대에도 전국의 홍반장들이 활약하고 있는 것처럼 말예요.

냉장고의 선한 영향력


수원 공유냉장고의 가장 큰 걱정은 그래서 식중독이 아니라 먹거리 부족이래요. 식당과 공장에 남는 음식이 정말 많은데 어떻게 잘 모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해줄지가 최대 과제. 지금은 냉장고 운영자님들이 인맥을 활용해서 어찌어찌 음식 중간책(?)을 맡고는 있지만 좀더 과학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앱을 개발 중이래요. 남는 음식이 생기면 앱에서 알리고, 그걸 수요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요(※앱 개발 도와줄 IT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대요!).



공유냉장고는 단순히 먹거리를 공유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아요. 가끔 누군가 냉장고의 음식을 싹쓸이해가는데 알고보면 먹지도 않을 음식을 가져다 집에 쌓아두는, 사실은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리는 분인 경우도 있었다고. 취약계층인데 방법을 몰라서 기초생활수급 같은 지자체 지원을 신청 못하고 계신 분들도 있었고요. 그런 경우엔 냉장고 운영자님이 도와줄 기관을 연결시켜주시기도 한대요.

수원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한두 사람의 이타심으로 그치지 않고 그 마음들이 모여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일구고 있단 사실이 영화보다 짜릿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수원 지역 용사님들(냉장고 위치는 여기)께 부러움을 보내며...사람의 힘은 믿는 만큼 커진다는 점, 꼭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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