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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경제보다 우선하는 정치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GPS'호스트

과거 인플레 극복한 세계 모범국

지금은 효과적 통화정책은 뒷전

정치색 짙은 보호무역 등만 몰두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인플레이션이 지난 1980년대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치솟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치열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경제 전문가가 아닌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이번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일부인지 여부를 살펴보려 한다. 간단히 말해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치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터키와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정치가 다시금 경제의 위쪽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플레이션 정복은 엄청난 파장을 부를 우리 시대의 최대 변화 가운데 하나다. 이제까지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는 인플레이션을 물가와 임금 관리로 공존을 모색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물가 상승 추세는 종종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초래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에게만 영향을 주는 실업과 달리 인플레이션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고인플레이션은 종종 정치적 소요로 연결된다. 1920년대의 독일, 1970년대의 이란, 1980년대의 라틴아메리카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은 기억하기조차 힘들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는 인플레이션의 거센 물결에 휩싸였다. 브라질·아르헨티나·페루의 물가 상승률은 1,000 단위를 넘어섰다. 미국은 12%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며 1980년대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의 물가 상승률은 20%를 웃돌았다. 이 같은 고인플레이션은 정부의 방대한 재정 적자, 중앙은행의 느슨한 통화정책과 1970년대의 오일 위기 같은 외부 충격의 합작품이었다.

인플레이션 위기는 정책 혁명을 만들어냈다. 각국 중앙은행은 독립성을 강화하며 물가 잡기에 나섰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재정 균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고 칠레와 멕시코는 그들의 통화를 달러화에 묶어놓았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가 자국 통화 대신 유로화를 택한 결정적 이유는 독일과의 통화정책 통합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같은 시도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자 대다수 국가들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자축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황금의 구속복’이라는 비유를 동원해 승전(勝戰)을 설명했다. 정부가 시장의 타이트한 억제력에 의존하는 정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정책이 축소되는 대신 경제가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난 수 년간 지구촌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당시와 완전히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터키를 보라. 2000년대까지만 해도 터키는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뤄낸 모범적인 개발도상국이었다. 당연히 터키 정책 입안자들은 폭풍 같은 칭찬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터키 대통령은 합리적인 경제정책의 허울마저 벗어던졌다. 그는 정치적 동지를 지원하고 정적을 벌주는 데 초점을 맞췄고 전문가들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한 통화정책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신중한 재정 정책을 유지해온 칠레는 좌익 포퓰리즘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성장을 정책 결정의 북극성으로 삼아 모범적 개발도상국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중국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 시진핑 주석은 테크놀로지 같은 민간 영역의 핵심 성장 분야를 수시로 억누르는 정책을 추구한다.

경제학자 엘리자베스 이코노미가 지적하듯이 두 개의 경제를 분리하기 시작하고 보호주의와 경제 민족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당시 시 주석은 ‘메이드 인 차이나’ 정책을 선언했다. 인도 역시 자체적인 보호주의와 정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중국과 동일한 정책 노선을 채택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방 세계도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성장은 이제 더 이상 경제정책의 지향점이 아니다. 중산층 임금과 불평등이라는 수긍할 만한 우려 탓이다. 세계 도처의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이 시대의 두 가지 거대한 충격에 맞설 극단적 대응 조치로 지난 10년간 경제보다 정치를 우선시하는 정책에 몰두했다. 모건스탠리 총괄사장인 루치르 샤르마의 말대로 1990년대 중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300%를 웃도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오늘날 이 선을 넘어선 국가는 무려 25개국이나 된다.

정치보다 경제를 앞세운 과거의 정책은 분명히 과도한 집착이었다. 경제 우위 정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임금 정체 같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경제보다 정치에 주안점을 두는 현재의 정책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로 인한 대가는 고스란히 보통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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