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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乳가격 개편해 ‘국산 치즈’ 제조?…되레 수입만 늘릴 판

■농식품부 추진에 논란 확산

치즈 수입액 4년새 47% 급증 속

낙농가에 가공유 의무생산 할당

수입보다 2배 비싸 경쟁력 없고

쿼터탓 수익 큰 음용유는 줄여야

“유업체에 수입 확대 빌미 제공”


정부가 치즈·버터의 원료가 되는 가공유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원유(原乳) 가격 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오히려 유제품 수입만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낙농가가 가공유를 생산해도 유업체에서 수입산보다 비싼 국산 가공유를 구매해줄 리 만무한 데다가 비용 부담 탓에 낙농가가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7일 관세청에 따르면 치즈 수입액은 지난 2016년 4억 2,901만 달러에서 지난해 6억 2,901만 달러로 4년 새 약 4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버터 수입액은 3,928만 달러에서 8,892만 달러로 약 2.2배 늘었다. 유제품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국산 원유 자급률은 48.1%에 그쳤다. 지난 20년간 29.2%포인트가 줄었다.





원유 가격 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정부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가공유 자급 기반 조성이다. 치즈·버터 등 유제품 소비량은 늘고 있지만 원료가 되는 가공유 생산이 전무하다시피 한 만큼 기존 원유 쿼터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낙농가가 가공유를 일정량 의무 생산하게 하게 해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낙농가는 원유 쿼터 204만 9,000톤을 보유해 이 범위 내에서는 수요에 관계없이 ℓ당 1,100원에 원유를 판매할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를 음용유 186만 8,000톤, 가공유 30만 7,000톤으로 나눠 음용유 가격을 현행 1,100원으로 유지하되 가공유 가격을 ℓ당 900원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가공유의 가격이 ℓ당 200원 낮아지지만 전체 쿼터가 총 217만 5,000톤으로 늘어나 농가 소득은 오히려 1.1% 증가한다는 것이 농식품부의 추산이다.



하지만 유업체에 국산 가공유 구매를 강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농식품부의 추산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음용유의 경우 수입 과정에서 신선도를 보존하기 어려워 유업체도 어느 정도 국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가공유는 제약이 없다. 게다가 수입 가공유는 ℓ당 400원 수준으로 국내산은 경쟁이 불가능하다. 농식품부는 유업체가 국산 가공유를 구매할 때 ℓ당 100~200원을 보조한다는 보완책을 내놓았지만 ℓ당 700~800원인 수입 가공유에 비해 최대 2배 가까이 비싸다.

결국 원유 가격 체계 개편 이후 유업체가 국산 가공유를 구매하지 않으면 낙농가 입장에서는 원유 쿼터만 약 20만 톤 깎이는 셈이다. 실제 임근생 매일유업 상무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에서 “정부에서 책정한 가공유 가격 800~900원은 비싸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매를 강제할 방안은 언급하지 않은 채 “가공유 수매 보조금을 받으면 유업체 입장에서도 공급선을 다변화할 유인이 충분하다”고만 했다.

사료비 등 생산비 부담과 환경 규제 탓에 농가가 현재 쿼터 이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농업 경영비 중 사료비는 2017년 342만 4,000원에서 지난해 499만 원으로 올라 3년간 45.7%나 올랐다. 올 들어 국제 곡물가와 운임·환율이 모두 상승해 농가의 사료비 부담은 더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개편안과 관련해 “유업체는 음용유 사용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해 쿼터를 추가 삭감하게 될 것”이라며 “유업체가 음용유 사용량을 줄이고 유제품 수입만 확대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가 원유가격연동제 폐지를 골자로 가격 체계 개편을 추진했지만 4개월이 넘도록 한 발도 못 나간 이유가 현실을 무시한 행정에 있었다.

논의 구조 자체도 문제다. 원유 가격 체계 개편을 논의할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열리지 않고 있다. 이사회는 정부·소비자·학계·진흥회 각 1명과 생산자 측 7명, 수요자 측 4명 등 총 15명의 이사로 구성되며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개의할 수 있다. 가격 체계 개편안에 반대하는 생산자 측이 전원 불참하면 개의 정족수를 채울 수 없는 구조다. 농식품부는 “생산자 측이 반대하는 내용은 논의조차 할 수 없어 불합리하다”고 비판했지만 생산자 측의 입장은 다르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이사회 개의 정족수는 3분의 2 이상이지만 의결 정족수는 2분의 1이라 개의 조건이 없다면 정부에 편향된 의사 결정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사혁 서울우유 상무는 “유럽에서 원유 쿼터를 조정하는 데 15~20년이 소요됐다”며 “제도를 급격하게 도입하면 낙농가 등 피해가 발생하는 주체가 생기므로 충분한 시뮬레이션 및 사전 검토가 필요하고 당사자 간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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