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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비 해결사 '배드파더스', 정부에 역할 넘기고 퇴장…"짐 내려놔 행복"

양육비 지급 거부 일러스트. /연합뉴스




이혼 후 자녀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 파더스(Bad Fathers)'가 오는 20일 운영을 중단한다. 관련 법이 개정되며 지난 7월부터 정부가 양육비 장기 채무자에 대해 명단 공개·출국 금지·운전면허 정지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본창 대표(58)를 포함한 5명의 배드 파더스 활동가들은 3년 3개월 동안 수십 번의 피소와 살해 협박을 감내하며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공론화했고 약 900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정부 조치가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이들이 “행복한 심정”으로 3년 여의 대장정을 끝낼 수 있는 이유다.

구본창(58) '배드 파더스' 대표. /구 대표 제공


◆필리핀 이민 후 ‘코피노’ 지원…"함께 하자" 한국 활동가들 제안에 배드 파더스 개설

구 대표는 18일 서울경제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양육비 채무자 명단 공개는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정부가 명단 공개를 하게 되면 사이트는 당연히 문을 닫아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입시학원 원장을 하던 그는 2011년 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간 후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에 뛰어들게 됐다. 구 대표는 "필리핀에서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서 태어난 2세) 아이들이 양육비를 못 받아 밥을 굶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며 "배고픔에 대한 문제는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코피노 지원 활동을 하며 WLK(We Love Kopino)라는 시민단체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양육비이행관리원 직원·여성단체 회원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 시민 활동가들에게 제안이 왔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를 기획하고 있으니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구 대표는 "이 활동이 살해 협박 같은 위협을 받는 일이다보니 운영진 중에서 자신을 드러낼 사람이 필요했다"며 "나는 이미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었고, 한국의 양육비 관련 법이 부실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해 7월에 함께 사이트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구 대표는 "일을 하다보니 상근 직원이 필요해 4명 중 2명은 직장도 관두고 배드파더스에 전념했다"며 "후원금이 적게 들어오는 단체라 사비로 월급을 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해외 주요국의 양육비 불이행 제재 조치. /국회 입법조사처의 2018년 보고서 ‘양육비 이행 관리 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과제’


◆"양육비 달라는 아내 때리고, 연봉 10억원인데 안 주는 사람도…불이익 없기 때문"

열악한 환경에서도 배드파더스는 3년 3개월간 약 900건의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했다. 690여 건은 명단 공개를 하겠다는 사전 통보만으로, 220여 건은 사이트에 사진과 신상을 올린 후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했다. 구 대표는 "연봉이 10억원인 유명 로펌 소속 변호사가 월 500만원만 주면 되는 양육비를 4년간 안 준 경우가 있었다"며 "사진을 올리겠다고 하니 바로 2억 4,00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트에 사진이 올라간 후 채무자가 협박을 해 피해자가 도리어 사진을 내려달라고 한 적도 많고, 부인이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하면 폭행하는 남성들도 많다"며 "정말 사정이 어려워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는 극소수"라고 비판했다.



배드파더스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구 대표는 "도둑질을 해도 처벌이 없으면 당연히 도둑이 많아지지 않겠냐"며 "이전까지는 판사가 양육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해도 본인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다.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라는 시각이 한국에 부족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이 양육비 장기 미지급 시 자산압류·은행계좌 징수·최장 2~3년 징역형에 처하는 것과 달리 한국에는 이 같은 제재와 처벌이 없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한국의 양육비 이행률은 지난해 36.1%에 그쳤다.

지난해 5월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양육비해결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명단공개·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 '3종 조치' 시작됐지만…"효과 제한적일 것"

결국 관련법이 개정돼 법적 제재의 기반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이 구 대표의 시각이다. 올해 7월 시행된 양육비이행법에 따르면, 양육비를 90일간 지급하지 않아 법원의 감치 명령을 받은 후에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명단 공개·출국 금지·운전면허 정지 조치가 취해진다. 1년 이하의 징역에도 처해질 수 있다.

구 대표는 "명단 공개 항목에 사진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름, 주소, 직업 정도를 공개하는 것으로 효과가 있겠느냐"며 "출국금지도 미지급 금액이 5,000만원 이상일 때만 할 수 있는데 양육비가 보통 월 30~5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8년에서 10년은 양육비를 안 줘야 출국금지 제재를 받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구 대표는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출국금지 요건 완화의 필요성을 따져보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만 24번 당하고 밤낮 없이 협박 전화…짐 내려놓으니 행복하다"

남아 있는 과제가 산적한데도 배드파더스 활동가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이트 문을 닫을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의 활동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2018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고소당한 횟수는 총 24번. 구 대표는 "경찰서에 워낙 자주 가다보니 경찰관들도 다들 나를 안다"며 "밤낮 할 것 없이 죽여버리겠다는 전화를 받으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도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그의 국민참여재판에서 명단공개 행위의 공익성을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항소해 2심 선고는 오는 29일 내려질 예정이다. 구 대표는 “1심에서 12명의 변호인단이 무료 변론을 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이제 정부가 (양육비 채무자 제재를) 제대로 하기를 바랄 따름”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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