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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의 세상보기] 대출 묶어 부동산 못 잡는다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대출 중단에 금리인상까지 거론

경제 핏줄 금융흐름 부작용 우려

'日장기불황 사태' 교훈으로 삼길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수석




부동산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스무 번 넘게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으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전셋값도 덩달아 올랐다. 결국에는 대통령과 총리와 장관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 사과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 기능도 덩달아 무너졌다.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고,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 투자를 투기 원인으로 꼽아 전세대출도 조이고, 나중에는 신용대출까지 억제하는 바람에 돈의 흐름이 번번이 막혔다.

정부가 이달에 또 하나의 초강수 대책을 단행했다. 금융 당국의 압력으로 농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전세대출, 아파트 집단대출을 중단했고 우리은행이 전세대출을, SC제일은행도 일부 부동산담보대출을 금지했다. 은행이 영업 활동의 중심인 대출을 중단한 것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다.

정부는 부동산 때문이 아니라 늘어나는 가계 대출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입김에 따른 조치라는 관측이 많다. 가계 대출 증가 억제가 주목적이면 연말에 총량 한도를 초과한 은행만 감독 규정에 따라 제재하면 된다. 그러나 모든 은행을 불러 기합을 넣었다. 주택 관련 대출이 집중적인 표적이 돼 중단됐다. 7월 주택 가격 상승률이 13년 이래 최고 수준으로 나온 결과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대출을 묶는다고 정부 뜻대로 부동산 가격이 잡힐 리는 없다. 대출이 집값을 끌어올린 게 아니라 집에 대한 수요가 있어 대출이 발생한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대출 액수가 늘어났다. 소득 주도 성장이 말과 마차를 거꾸로 세운 것처럼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도 인과관계가 뒤바뀐 인식의 산물이다.



설령 대출 규제가 주택 거래를 줄여 지표상 상승률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더라도 오래갈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했지만 1년 뒤 집값은 더 올랐다.

난데없는 대출 중단 조치로 가을 이사 철에 맞춰 집을 장만하거나 전세를 옮길 계획이었던 사람들이 낭패를 겪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난달 실수요자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높여 대출 지원을 늘렸다고 생색낸 직후 대출 자체를 중단한 어이없는 처사를 이해하지 못한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지난달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통화 당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주택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 세계적인 통화팽창 정책으로 유동성이 늘어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다. 물가·고용 등 종합적인 거시경제를 보고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할 사항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금리가 1% 오르면 주택 가격은 0.7% 내려간다고 한다. 근본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대로 실제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금융은 어디까지나 보완 수단으로 사용해야 맞다. 그래야만 국가 경제의 핏줄인 금융의 흐름에 차질을 빚지 않는다.

정은보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하면서 자산 가격 거품 등이 한꺼번에 꺼지는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등 은행 대출 규제도 그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위험 예방 조치가 자칫 거품 붕괴를 촉발하는 ‘방아쇠’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금리 인상과 강력한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를 시행했던 1990년에 시작됐던 전례를 참고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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