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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올림픽이 소환한 공정

임석훈 논설위원

계급장 떼고 기량으로만 대표 선발

한국 양궁 올림픽 9연패 달성 비결

청년표심 의식한 선심 정책이 아닌

공정 사회 구현이 MZ세대의 바람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의 9연패 달성 등으로 선전한 한국 양궁에 국내외 관심이 뜨거웠다. 지난달 25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을 ‘매혹적이고 무자비한 양궁의 나라’로 표현하며 한국 양궁에 이런 찬사를 보냈다.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경쟁 중 어떤 팀보다 자주 미소를 지어 적과 관객을 헷갈리게 한 뒤 웃고, 파괴하고, 웃고, 파괴한다”면서 “마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만난 듯한 여유로움을 보였다”고 평했다.

세계가 한국 양궁에 주목하는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수십 년 동안 선두를 놓치지 않는 비결이다. 국제양궁협회는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양궁 규칙을 계속 바꾸며 흔들었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공정’과 ‘원칙’이 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한 대표 선발, 변하지 않는 대표 관리 원칙이다.

세계 무대보다 치열한 국내 선발전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여도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국제 무대 경험이 부족해 세계 랭킹이 100위 권 밖인 선수라도 좋은 성적을 내면 태극 마크를 달 수 있다. 5년 전 리우 올림픽에서 개인·단체전을 석권했던 기보배·장혜진·최미선 선수 누구도 도쿄에 합류하지 못했다. 전관예우나 계급장을 떼고 오로지 기량으로 국가대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한양궁협회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1차 선발전 때 기존 국가대표 선수도 모두 참가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끼리 1·2차 선발전을 거친 뒤 국가대표 선수들과 3차 선발전과 평가전을 치러 최종 대표를 뽑았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혜택을 없앤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 신설된 혼성 단체전 출전 선수를 두고도 공정과 원칙을 고수했다. 지난 4월 치른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남녀 1위를 한 김우진·강채영 선수를 내보내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끝까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선수를 뽑는다는 원칙에 따라 7월 선발전을 다시 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김제덕·안산 선수를 낙점했다. 두 선수는 결국 금메달을 땄다.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결승전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 기량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런데도 공정한 선발 과정을 통해 대표를 뽑기 때문에 강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MZ세대가 양궁 대표팀에 열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달 말 한 대학 커뮤니티에 ‘흥미로운 남자 양궁의 나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40대와 10대가 한 팀, 나이 따윈 상관없다. 잘 쏘면 그만”이라는 내용이었다. 남자 대표팀이 맏형인 40대 오진혁부터 10대인 막내 김제덕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된 걸 평가한 것이다. 이 글에 “공정 그 자체” 등의 동감 댓글이 쏟아졌다.

2030 직장인이 많이 이용하는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에서도 “무조건 점수제인 양궁은 공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게 스포츠” “다른 거 고려하지 않고 실력 하나로 어린 선수들을 대표로 내보낸 협회도 대단하다”는 등의 글이 이어졌다.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강한 2030세대가 자신들이 바라는 바를 양궁 대표팀에 투영해 표출하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외쳤지만 가장 기본적인 공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처럼 들린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조국 사태’와 관련해 “청년들의 상처 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말뿐이다. 최근 여당에서 다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두둔하는 발언이 나오고, 정부는 돈으로 청년의 환심을 사는 데 열심이다. 지난달 발표한 ‘휴먼 뉴딜’에는 저소득 근로 청년이 월 10만 원씩 저축하면 3년간 최대 1,080만 원을 얹어주고 이자를 더 주는 예금과 적금, 학자금 상환 대출 프로그램 등 여러 선심성 정책이 담겨 있다. 그 사이 조국·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서 청년들을 분노케 한 ‘결과의 공정’ ‘선택적 공정’에 대한 반성은 쏙 들어갔다. MZ세대가 양궁 대표팀에 큰 박수를 보낸 이유는 분명하다. 표를 의식한 선심이 아니라 경쟁의 과정이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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