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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바꾼 무대…여전히 빛난 조드윅

조승우 5년만에 뮤지컬 헤드윅 복귀

방역으로 객석공연은 생략됐지만

재치있는 입담·열연으로 진가 발휘

웃음·감동 오가는 카타르시스 선사

복잡미묘 감정에 배우도 관객도 울컥





여느 때와는 분명 달랐다. 열띤 환호와 스탠딩이 기본인 이 작품을 이토록 얌전하게 관람하게 될 줄이야.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기는 배우나 관객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무대와 객석을 오가며 선사하는 즉흥 대사도, 남 눈치 볼 것 없이 내지르던 함성도, ‘지금은 안 된다’는 답답한 현실에 가로막혔다. 그럼에도 분위기를 띄우고, 여전한 짜릿함과 통쾌함을 선사하려는 배우의 노력은 그래서 더욱 빛났다.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헤드윅’은 위기 속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며 이전과는 또 다른 감동을 빚어냈다.

“언니 왔다. 이 시국에 여긴 왜 왔어, 뭐 볼 거 있다고.”

애교 넘치는 꾸지람에 객석에선 함성 대신 박수가 터져 나온다. 5년 만에 돌아온 ‘조드윅’(배우 조승우+헤드윅)은 지난달 30일 개막 공연에서 특유의 여유로운(?) 무대 매너로 웃음과 감동, 눈물을 오가며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했다.



헤드윅은 동독 출신의 드랙퀸(여장 남자)으로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헤드윅이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서트 형식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한국에서는 2005년 첫선을 보였다. 소극장에서 출발한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2016년 중극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번에는 1,200석 규모의 대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실제 수용 인원은 크게 줄었고, 예매 사이트에서는 치열한 티케팅 전쟁이 벌어졌다.

코로나 19로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주요 장면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헤드윅이 오른쪽 객석 통로로 입장하는 장면은 이전과 같았으나 배우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환호를 만끽하며 이따금 짓궂은 장난을 하던 배우는 마스크 위로 손가락을 대는 ‘쉿’ 동작을 취하며 관객 옆을 스쳐 지나갔다. 헤드윅이 ‘슈가 대디’ 노래를 부르며 객석 의자를 밟고 엉덩이를 흔드는 일명 ‘카워시(Car Wash)’ 장면도 생략됐다.



이 ‘큰 빈틈’의 아쉬움을 메워준 것은 배우의 입담과 재기발랄한 애드립이었다. 객석 앞줄에서 망원경으로 공연을 보는 관객을 향해 “왜 여기서 그렇게 보고 그래? 너 매크로 뚫고 여기 앉아 있는 거잖아”라고 쏘아붙이는가 하면 앞줄에 앉은 이들에게 “다 변태들이야. 하루 종일 (마우스 클릭 동작을 흉내 내며) 이 XX하는 사람들”이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코로나와 관련한 현실 개그들도 눈에 띄었다. 맥주를 고르던 헤드윅이 ‘위험한 이름’의 맥주를 보고는 도망쳤다가 망사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양봉 모자를 쓰고 나온다. 헤드윅은 “이거 쓰고 (객석) 내려가려고 잔뜩 샀는데 안된다더라”라고 농을 친다. 헤드윅은 극 중 수시로 “아, 내려가고 싶어”, “코로나 이 XX”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아쉬움을 표한다. 헤드윅이 땀을 닦은 뒤 화장이 묻은 손수건을 관객에게 건네는 장면에선 “이것도 안 된대” 라며 수건을 무대 바닥에 내던져버린다.

흥미로운 패러디도 허를 찌른다. 극 중 봉지 안에 들어있던 구미 베어 젤리가 공중에 흩어지는 장면에서는 오색찬란한 곰 젤리 영상과 함께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울려 퍼진다. ‘곰 내려온다’를 외치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독특한 춤을 따라 추는 조승우의 모습에 웃음 폭탄이 터진다.



뭐니뭐니해도 이 작품의 매력은 이야기와 음악이 선사하는 해방감이다. 헤드윅은 동독과 서독, 남자와 여자, 자유와 속박의 경계에서 버려지고, 차별 당하면서도 자신의 음악으로 ‘남이 보는 인생’이 아닌 ‘내가 사는 인생’을 완성하고자 한다. 퇴폐적인 농담으로 웃음을 유발하다가 순식간에 아픔을 토해내고 침묵으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마법 같은 전환은 시즌이 거듭되고 상황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헤드윅의 핵심이다. 개막 공연에서 조드윅이 물었던 ‘이 시국에 여기 온 이유’의 답도 여기 있지 않을까.

커튼 콜 시간. 조승우는 노래를 부르다 몇 번이나 고개를 돌리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2005년 한국 초연부터 무려 일곱 시즌째 함께 해 온 그에게 관객에 “소리 질러” 대신 “고개만 끄덕이라”는 주문을 하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을 터다. 어색한 상황을 최고의 공연으로 이끈 조승우, 그리고 이규형·고은성·뉴이스트 렌 등 다른 헤드윅들에게 함성의 열기를 더해 박수를 보낸다. 10월 3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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