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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나의 작가 수업, 1년간 도서관에서 살기

작가

쓰기 위함이 아닌 책 읽기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세상과의 소통법

깊이 있고 신뢰 받는 글 쓰려면

인터넷 대신 도서관과 친해져야

정여울 작가




“그냥 도서관에서 살아.” 국문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눈부신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한 저에게, 선배는 딱 그 말만 해주었어요. 그 말이 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죠. 잔말 말고, 투덜거리지 말고, 그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란 이야기였어요. 무슨 책이 중요한지 아직 알 리가 없으니, 그냥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었지요. 1년 정도 그렇게 살았어요.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도서관 대출 도서 제한을 항상 꽉 채워 책을 빌려도, 여전히 목 말랐어요. 열심히 책을 읽었지만, 여전히 암중모색이었지요. 하지만 그 효과가 1년 만에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참 지난 뒤에 제가 첫 책을 쓸 때쯤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어요. 취재는 단지 자료 조사가 아닙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마침내 생생히 깨달을 때까지 우리의 두뇌가 하는 모든 일이지요.

저는 인터뷰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활자 매체가 가장 좋습니다. 밀도가 가장 높게 느껴져요. 여행을 일주일 동안 해도 한 줄의 영감도 얻어내지 못할 때도 있지만, 책을 읽으면 단 몇 페이지만 읽어도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제 책 중에서는 ‘공부할 권리’가 대표적으로 ‘공부’를 취재 방법으로 한 책이에요. 끝없이 읽으면, 끝없이 쓸 거리가 생각나지요. 단지 쓰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야말로 그 자체로 가장 아름다운, 세상과의 소통 방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의 자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취재 과정입니다. 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기간행물들이 있잖아요. 잡지도 있고, 신문도 있고, 각종 문서들이 있습니다. 도서관 안에서 우리는 사서의 눈으로 책을 볼 수도 있고, 문헌학자의 눈으로 책을 볼 수도 있습니다. 사서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하는 거예요. 이 책은 어떤 사람에게 필요하겠구나,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감식안이 생길 때까지, 수많은 장서들을 소중히 아끼며 읽어 내려가는 것이지요. 문헌학자의 시선으로 자료를 본다는 것은 ‘무엇이 중한지’를 감별해내는 시선이에요. 남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아주 후미진 문서들 속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문장이 숨어있을 수 있거든요. 머리에 불이 붙어서 미친 듯이 괴로워하며 연못을 찾는 심정으로 그렇게 자료를 찾아야 해요. 그것이 문헌학자의 태도지요.



도서관에서 저는 아주 친절한 사서이자 아주 날카로운 감식안을 가진 문헌학자가 되어 자료를 찾아 헤매는 탐험가가 되고 있었어요. 그 과정이 아무런 조건 없이 즐거웠지요. 좋은 책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뻤고, 책이 생각만큼 좋지 않아도 반드시 얻는 것이 있었어요. 요즘 도서 리뷰들을 보면 사람들이 칭찬에 굉장히 인색함을 알 수 있어요. 저는 분명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향해, 어떤 분들은 ‘어색한 번역 때문에 원작의 감동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을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는 무언가를 비판하기 전에 무언가를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비난하고 공격하기 전에, 우선 그 책을 번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곱씹어보고 해석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도서관에서 제가 배운 것은 모든 책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었어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라도 뭔가 배울 것이 있어요. 위대한 책들은 단 한 페이지도 버릴 것이 없었지요. 지식을 소중히 여기는 법, 한 문장 한 문장 빠짐없이 되새겨 읽는 법,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지은이가 기울인 노고를 상상하기. 그것을 배운 것만으로도 도서관에서의 1년은 멋진 체험이었지요. 더욱 깊이 있고 신뢰가 가는 글을 쓰고 싶다면, 인터넷에 의지하지 말고 반드시 도서관이나 서점과 친해지는 ‘아날로그 문헌학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전히 최고의 자료는 인터넷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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