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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1년 후, 또 ‘소방수’를 찾을 건가

김영기 논설위원●

文정부 소주성 후유증…성장동력 약화

빚투열풍에 가계빚 1년새 150조 급증

구조개혁·경제체질 개선도 시기 놓쳐

폭탄 떠안을 차기정부 생각하면 암울





2004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 1년이 안 돼 두 번째 경제 사령탑에 오른 이헌재 전 부총리는 취임식도 생략한 채 온 나라에 퍼진 암 덩어리와 사투를 시작했다. 전임 정부가 성장률을 띄우려 신용카드 발급을 남발한 후유증에 신용불량자가 370만 명까지 치솟은 것이다. 인위적 부양으로 7.2%에 달했던 성장률은 노 정부 임기 첫해 2.8%로 곤두박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전 부총리에게 소방수를 맡아 달라 SOS를 쳤고 1년 넘는 릴레이 대책 끝에 폭탄을 조금씩 제거할 수 있었다. 비틀린 정책은 이렇듯 다음 정부를 통째로 흔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진보 정권의 ‘일자리 대통령론’에 국민들은 ‘실용’이 국정의 화두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교과서에도 없는 ‘소주성(소득 주도 성장)’ 이론조차 양극화 치유를 위한 일시적 방법으로 이해했다. 시간이 흐르면 민간에 성장 바통을 넘기고 전임 정부가 말로만 끝낸 구조 개혁에 나서길 원했다.

모든 예상은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임기 4년을 보낸 뒤 여당 대표가 ‘소주성 반성문’을 읊었지만 정책은 그대로다. 소주성 입안자는 버젓이 국책연구기관장을 맡았다. 여권은 차기 대선에서 올해 3~4%대 성장률을 치적으로 내세우며 재정 중독론은 정치적 공격으로 치부할 것이다. 신용카드를 통한 억지 부양의 위험 경고가 7% 성장에 뭉개진 것처럼 말이다.

1년의 시간이 흘러 차기 정부 초기 우리는 어떤 상황과 마주할까. 물론 취임 첫해 성장률이 반토막 아래로 떨어진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얘기하는 것은 끔찍하고 저주 섞인 전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기운은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진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국민들은 집값 폭등의 정책 실패를 꾸짖었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더 큰 걱정은 나라 전체가 ‘악성 부채의 늪’에 빠진 점이다. 빚에 악성·양성이 따로 있느냐고 하겠지만, 빌린 돈이 생산적 부가가치의 지렛대로 쓰였다면 그나마 후유증이 덜하다. 불행하게도 우리를 휘감은 빚의 종양은 가장 독성이 심한 것이다. 치솟은 집값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이 열패감을 씻으려 암호화폐에 뛰어들고 그 바람에 가계 빚이 1년 새 150조 원 넘게 늘어난 것은 병든 경제의 자화상이다. 암호화폐 투자자 10명 중 6~7명이 2030세대인 사실에 정부는 대책에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 이들의 폭탄 돌리기를 수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1년 후 우리는 절절히 깨달을 것이다.

다음 정부가 받아들여야 할 또 하나의 숙명은 기업의 부실 처리다. 현 정부는 은행의 팔을 꺾어 올 가을까지 유예한 기업의 부채 원리금 상환 시한을 내년으로 넘길 게 자명하다. 선거를 앞두고 대량 실업으로 이어질 옥석 가리기에 나설 정부는 없다. 차기 정부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부실의 고름을 도려내는 데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그래도 과거에는 새로운 기업과 산업이 싹텄기에 부실의 상처를 메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경제의 기둥인 주력 산업마저 여유를 부리기 힘든 처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연이은 ‘삼성 위기론’은 섬뜩하다. 메모리 반도체는 중국과 미국의 추격에 시달리고 비메모리는 대만 TSMC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도 경쟁력을 낙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여권의 강성 지지층은 대기업 지원 얘기만 나오면 특혜라며 눈을 치켜뜬다. 수출 효자인 조선은 어떤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가 줄을 잇지만 알짜 수익은 우리로부터 기술 로열티를 받는 프랑스 회사가 챙긴다. 제조업 강국이라며 과신할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시급한 것이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인데 현 정부는 임기 내내 구조 개혁 없이 시간만 보냈다. 다음 정부는 이 무거운 짐을 떠안아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경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소방수를 찾았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상황들을 보면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1년 후 우리는 또 다른 ‘대책 반장’을 찾아야 할 듯하다. 갖가지 위기의 시나리오가 기우이고 억측으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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