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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좀스럽고 민망한’ 당신들의 세상

민주화에 값진 토양이 된 86세대

30여년 지난 지금 그들만의 성 구축

정의 유예한 채 잇속 채우는 속물돼

미래세대 유산 '진보' 가치마저 유린





이 땅의 봄은 민주화 항쟁의 산증인이다. 1960년 4·19혁명을 시작으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10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줄기를 바꾼 투쟁마다 찬란한 봄 햇살이 함께했다.

올해로 34돌을 맞이하는 6·10민주항쟁은 86세대를 역사의 전면에 올려놓았다. 강철이 용광로에서 단련되듯 군사정권의 폭압에 맞서 강력한 전투력을 내재화했고, 어느 세대보다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1970년대 세대가 경찰 곤봉을 온몸으로 견뎌냈다면 86세대는 화염병과 쇠 파이프를 움켜쥐고 백골단에 맞서 싸웠다. 바야흐로 ‘민주 투사’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86세대는 정치·경제·사회 등 전 영역에서 독점 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다른 세대, 다른 진영에는 허락되지도, 용납되지도 않는 그들만의 성(城)이다.

“5·18 정신은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 한 마디에 쏟아진 날 선 비난은 그들의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18 민주주의 정신을 제대로 아느냐”고 쏘아붙였고,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윤 전 총장이 5·18을 언급하니, 젊은 시절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고 비아냥거렸다. 설훈 민주당 의원 등 73명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인사와 그 가족들에게 교육·취업·대출 등 각종 특혜를 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는 소동을 벌였다. “운동권 경력으로 금배지를 단 의원들이 특혜까지 세습하겠다는 거냐”는 여론에 물러서긴 했지만 86세대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 양산 사저 부지를 둘러싼 야당의 문제 제기에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돌이켜보면 ‘좀스럽고 민망한’ 대통령의 한탄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이 땅에서 벌어진 좀스럽고 민망한 일은 한둘이 아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특혜 의혹, 윤미향·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등 하나같이 민망한 일투성이였다. 임대차법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과 부동산 정책 설계에 관여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내로남불 전셋값 인상’ 역시 좀스럽기 그지없었다. 86세대 진보 진영 간판급 스타들이 이 좀스럽고 민망한 막장 드라마의 주연인 셈이다. 최근 민주당이 진행한 이미지 심층 조사에서 ‘거짓말·성추문·내로남불·무능’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86세대를 바라보는 후배들의 눈빛이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86세대의 희생이 이 땅의 민주화에 값진 토양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의를 유예한 채 잇속을 채우는 속물로 전락한 순간 투사의 명예로운 역사는 막을 내렸다. ‘벼락출세한 86세대가 벼락속물로 전락한(박명림 연세대 교수)’ 현대사의 비극이다.

민주화의 선봉에 섰던 민주당은 탐욕에 눈먼 기득권 정당으로 추락했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의 가치는 86세대 좌파 패거리에 의해 오염됐다. 진보는 위선과 동의어가 됐고 경멸 어린 시선과 냉소 섞인 비난이 내리꽂혔다. “그들이 내건 진보는 권력을 잡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려고 하는 정치적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통탄(강원택 서울대 교수)이 나올 법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이어야 할 진보의 가치가 진보 진영을 자처했던 86세대에 의해 유린됐다는 사실이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 시대야말로 정의가 지연되고 진보가 오염된, 좀스럽고 민망한 장면이 무한 재생되고 있다. 좀스럽고 민망한 ‘당신들의 세상’을 그만 멈추라는 젊은이들의 절규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온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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