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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작품이 세상으로…" 이건희 컬렉션, 근현대미술사 채운다

국립현대미술관,'이건희 컬렉션' 세부 공개

100년만에 공개되는 이상범 '무릉도원' 등

희귀 한국근대미술 작품 눈길 끌어

청전 이상범이 1922년에 그린 158.6x390㎝ 크기의 대작 ‘무릉도원도’. 그간 소문으로만 존재가 알려졌던 작품이 100년 만에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됐다. /사진 제공=국립현대미술관




조선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인 안중식과 조석진을 스승으로 왕실이 후원한 서화미술원에서 그림을 배운 청전 이상범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창덕궁 경훈각의 궁중 벽화를 의뢰받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된 ‘삼선관파도’다. 이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청전에게 후원자 이상필이 작품을 의뢰해 같은 화풍의 청록산수화를 1922년 완성했으니 폭 390㎝의 대작 ‘무릉도원도’다. 존재만 전할 뿐 공개적으로 전시된 적 없는 이 작품이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수집 미술품 중 하나로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제작된 지 약 100년 만에 작품을 확인한 미술관 측의 관계자는 “최고급 재료를 써서 최상의 작가 기량을 발휘해 제작된 작품으로 왕실 그림에 맞먹는 격조와 과감하고 아름다운 색채가 감탄을 자아낸다”고 전했다.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여인들과 항아리'에 대해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경매에 나오면 시작가 300억~400억원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고 감탄했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작품을 포함해 이 회장 유족들이 기증한 미술품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공식 명명된 기증품들은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 외국 근대 작가 8명의 작품 119점 등 총 1,488점이다. 기존 소장품이 8,782점이던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증을 통해 단숨에 소장품 1만 점 시대를 맞게 됐다. 이번 기증으로 미술관 수장고 포화도가 95%까지 늘어나 새 수장 공간 확보가 해결할 과제로 등장했을 정도다.

‘이건희 컬렉션’은 1930년 이전 출생한 근대 작가의 작품이 약 860점으로 약 58%를 차지했다. 기존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1950년대 이전에 제작된 작품은 960여 점에 불과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기증품의 면면이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다양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미술관 소장품 목록에서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고 있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더욱 풍요롭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백남순이 1937년에 그린 166x367cm 크기의 '낙원'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과 함께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공부한 1세대 화가이며 이중섭의 그림 선생이기도 한 백남순(1904~1994)의 작품 ‘낙원’도 귀한 기증품이다. 한국의 무릉도원 전통과 서양의 고전적 화법이 묘하게 결합된 그림인데, 그의 작품이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다 사라진 탓에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1930년대 백남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근대문화재로 지정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작가별 구성으로는 유영국이 187점으로 가장 많았다. 판화 연작이 167점이라 수량이 많은 편이고, 회화는 작가의 개성이 분명하고 시장에서의 가격대도 가장 높은 1960년대 작품들이 포함됐다.

고 이건희 회장이 수집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중섭의 1950년대 작품 '황소'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그다음으로는 이중섭 작품이 104점으로 많았다. 기증작 ‘황소’는 이중섭이 1954년 통영 시절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인데 시인 김광균이 소장하다 이 회장 손에 들어간 대표작이다. 또 다른 기증작인 이중섭의 ‘흰 소’는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5점의 흰 소 중 하나인 희귀작이다. 1972년의 전시, 1975년 출판물에 등장한 것을 끝으로 행방이 묘연했다가 이번 기증을 통해 새롭게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중섭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소’ 그림이 한 점도 없었으나 이번 계기로 2점을 확보하게 됐다. 미술관 측은 내년 3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의 일환으로 이중섭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중섭이 말년에 그린 1953~54년작 '흰소'는 1975년 전시 이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번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왔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절정기 대표작인 전면 점화가 한 점도 없어 아쉬웠던 것도 ‘이건희 컬렉션’으로 극복하게 됐다. 1973년에 그린 푸른색 전면점화 ‘산울림 19-II-73#307’은 시가 50억~100억 원 수준의 작품이다. 윤 관장은 특히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이자 281×568㎝의 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를 극찬하며 “대표작 중 가장 큰 동시에 여인과 백자 항아리, 사슴, 매화 등 ‘서양화 붓을 든 문인화가’ 김환기가 즐겨 그리던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경매에 내놓는다면 시작가 300억~400억 원은 거뜬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환기의 1973년작 '산울림 19-II-73#307'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이 외에도 나혜석 작품의 진위를 판단할 때 기준작으로 손꼽히는 ‘화녕전작약’, 한동안 금강산에 은둔하며 수려한 경관을 그렸던 소정 변관식의 ‘금강산 구룡폭’, 운보 김기창의 ‘군마도’, 장욱진의 초기작을 대표하는 ‘공기놀이’ 등이 미술관 품에 안겼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은 오는 7월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에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이 첫선을 보인다. 이어 8월 서울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 점이 전시되고, 12월에는 2부로 해외 거장전이 마련돼 모네·르누아르·피카소 등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관 측은 올해 11월 박수근 회고전과 내년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LACMA)에서 열리는 한국 근대미술전에도 기증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다.

나혜석 작품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때 기준작으로 꼽히는 1930년대 작품 '화녕전작약'이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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