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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촛불’의 잔인한 4월

공정 외쳤던 진보 위선에 민심 분노

네거티브도 정권 심판론 막지 못해

참패당한 與도 기사회생한 野도

뼈 깎는 심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정민정 논설위원




백약이 무효였다. 부동산 공시가격 인상률 조정 카드에다 50년 모기지 국가보증제를 내놓고 그것도 모자라 반성문까지 썼지만 약발을 발휘하지 못했다. ‘생태탕’과 ‘페라가모’를 링 위에 올려놓고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어도 차갑게 식은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임 시장들의 성범죄로 치르는 선거인 만큼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 ‘원칙 있는 패배’라 자위라도 했겠지만, 당헌까지 고쳐 후보를 냈으니 ‘원칙도 없고, 양심마저 저버린 패배’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T 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대선을 1년도 채 남기지 않고 대참패를 맛본 더불어민주당의 4월은 잔인하다 못해 참혹했다. 선거 기간 “야당이 잘못하면 촛불을 들겠다. 지금은 (민주당) 당신들이 최악”이라고 했던 청년의 울분처럼, 실상 우리 국민에게도 ‘최악’을 떨어뜨리기 위해 ‘차악’을 선택한 선거였다는 점에서 잔인한 4월이다.

되돌아보면 민심 이반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 공정과 정의를 외쳤던 청년들의 손에 다시 촛불을 들게 했던 2019년 가을 ‘조국 사태’가 시발점이다.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에도 금배지를 단 윤미향 의원, 페미니스트를 자처했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사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 의혹 등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터졌고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는 회복 불능 상태다.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로 치르는 선거인 만큼 속죄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인간의 마땅한 도리지만, 여당 인사들은 앞다퉈 ‘박원순 예찬론’을 쏟아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청춘을 바쳤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임대차법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부 부동산 정책 설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로남불 임대료 인상’으로 현 정권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세월호 변호사’와 ‘재벌 개혁의 아이콘’이 보여준 위선은 어쩌면 이것이 공정과 정의를 외쳐왔던 현 정권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진실을 마주하게 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외쳤지만 정작 자신들은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아 제 자식들의 손에 쥐어주고, 인맥과 권력을 총동원해 불공정을 일삼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구축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국의 리버럴 정권이 내면의 권위주의를 드러내고 있다(이코노미스트)”는 쓴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원죄가 쌓이고 쌓여 40%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레임덕은 본격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이 전해오고 있지만 작금의 세태엔 통하지 않는 공식이다. 탄핵의 원죄를 짊어진 보수 진영이 짧지 않은 암흑기를 거치며 분열과 부패의 낡은 옷을 벗으려 몸부림치는 사이 진보 진영은 자신들의 왕국은 영원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 그들 주변에선 부패와 위선으로 얼룩진 악취가 진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년 3월 20대 대통령을 뽑는 역사적인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합법적 과정에 의해 패배한 정당이 다시 집권당으로 등극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을이 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번 보선에서 충격적인 참패를 맛본 여당에도, 정권 심판론 덕에 기사회생한 야당에도 선거는 합법적 과정에 의해 집권당으로 등극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여야 모두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유다.

촛불 정신을 사유화했던 권력의 탐욕을 심판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세워야 하는, 이 시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두 눈 부릅뜨고 남은 11개월을 지켜봐야 한다. 촛불 시민이 갈망했던 진정한 촛불 정부는 아직 출범하지 않았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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