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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24시]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

◆김재천 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바이든 反中연대 목청 높이지만

집안 단속 제대로 못해 말발 안서

국제사회, 韓외교에도 우려 시선

정치적 혼선 없게 교통정리 먼저

“상대방이 가끔 저를 ‘디스’ 해요(I get occasional ‘dig’ from someone on the other side).”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국의 신정부가 출범하면 초대 국무장관은 취임 후 으레 해외 순방길에 오른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래도 블링컨은 각종 화상회의를 통해 ‘미국의 귀환’을 알리느라 여념이 없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위한 민주주의 연대 구축에 공을 기울이고 있고, 블링컨은 그 외교 노력의 일선에 있다. 그런데 블링컨이 회의에서 ‘민주주의’를 언급하면 상대방이 시큰둥하게 나온다고 한다. “너나 잘하세요” 식으로 반응하며 점잖게 면박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연대 구축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제 미국이 깃발을 들고 “따라오라”하면 동맹국이 추종하는 시대는 끝났다. 우선 미국의 경성 권력(hard power)이 예전만 못하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미국은 20여 년 동안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일찍이 퍼리드 저카리아 박사가 예견했듯이 국제사회는 지금 본격적인 ‘미국 이후의 세상(post-American world)’을 목도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세계 최강국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맹국에 약속한 미국의 안보 보장은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 경시 정책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여론 자체가 미국의 희생이 따르는 군사력 사용에 매우 부정적이다. 미국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중국의 추격으로 미국의 경제 지분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는 뉴스도 아니다. 더군다나 냉전 때와 달리 미국 동맹국들의 경제 이익은 중국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미국은 중국 경제와의 탈동조화(decoupling)를 종용하고 있지만 동맹국들의 속내는 복잡하고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미국의 핵심 파트너임을 자임하는 일본조차 미국의 반중(反中) ‘5G 클린네트워크’ 구축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미국이 탈동조화에 성공하려면 중국을 배제한 생산과 수요 공급의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미국에 그런 힘이 있을까.

현재 국제사회의 반중 정서는 역대 최악이다. 코로나19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오만한 ‘전랑(戰浪) 외교’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자행되고 있는 위구르족·티베트족 인권유린과 홍콩 민주주의 탄압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반(反)자유주의 행태를 우려하면서도 미국의 민주주의 연대 제안에 시큰둥한 것은 미국의 연성권력(soft power)이 약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한 리더십은 경성 권력보다 연성 권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미국 역시 그다지 매력적인 국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매력지수는 이라크 전쟁 이후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의 불법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한 후 대폭 하락했고 트럼프 임기 말에 최저점을 찍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 회장이 주장했듯이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foreign policy begins at home).” 하스의 주장에는 여러 함의가 있지만 한마디로 집안 단속을 잘해야 밖에서 ‘말발’이 선다는 얘기다. 반중 정서에만 의존해서는 미국의 민주주의 연대 제안이 호응을 받을 수 없다. 우선 미국부터 민주주의를 더 잘해야 한다.

외교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는 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은 한국 외교에도 적용된다.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한 대한민국은 이제 군사력·경제력 모두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중견 강국이다.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일궈낸 매력적인 국가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부의 인권 인식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집안 정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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