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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의 세상보기] 거위 털을 안 아프게 뽑을 순 없다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與의 잇단 고소득자·기업 증세안

민심 이반·경기회복 걸림돌될 것

세금 거두기 앞서 씀씀이 따지길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전 청와대 정책수석




최근 한 여당 의원이 국회에서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정부가 화끈하게 지원하고 화끈하게 조세로 회복하는 게 정직하며…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여당 의원들의 속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문제는 세금 좋아하는 국민이 없어 증세는 민심 이반을 초래한다는 우려다. 일찍이 프랑스 루이 14세 때의 재상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아프지 않게 거위 털을 뽑듯이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했다.

여권에서 나오는 각양각색의 증세 방안도 국민의 저항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기본소득을 내세우며 대권 여론조사에서 선두 주자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목적세 신설을 제안했다. 소득에 따라 일정 비율을 징수해 모은 돈을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고소득자는 낸 돈보다 적게 받고 저소득자는 더 많이 받는다. 사회 전체로 보면 고소득 부자의 숫자가 적으므로 이 제도로 이익을 보게 될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 시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현재 소득세를 내지 않는 사람이 열 명 중 네 명이다. 나머지 여섯의 대부분은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근로소득자로 현재 세금에도 불만이 큰 사람들이다. 세금을 내지 않는 네 명을 위해 목적세를 추가로 걷겠다고 하면 폭동이 날 수도 있다.

여당 중진 의원은 고소득자의 소득세와 100대 기업의 법인세를 인상하자고 했다. 언뜻 다수 국민에게는 아픔이 없는 방안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소득세 최고 세율은 2017년 42%, 2020년에는 다시 45%로 올랐다. 법인세율도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한 바 있다. 세율을 또 올린다고 기대한 만큼 세수가 늘어날 여력이 없다.



부가가치세를 올리자는 안도 나왔다. 상품과 서비스에 부과하는 부가세는 대표적인 역진세로 저소득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다. 일본의 경험에 비춰봐도 부가세 같은 소비세 인상은 경기회복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겉으로는 증세에 소극적이지만 아동 수당을 18세까지 확대하자고 제안한 것을 보면 추가 재원 마련을 생각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조세감면제도 정비 등으로 충당할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간단하지 않다. 2013년 정부가 세율 인상 없이 공제 금액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방법으로 세수 증대 방안을 만들어 발표했지만 납세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계획을 대폭 수정해 세수 증대 효과는 없다시피 했고 당시 30% 초반까지 내려갔던 면세 대상자만 48%로 늘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아프지 않게 거위 털을 뽑는 방법은 없다. 우리 국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와중에 부동산 세금 폭탄의 아픔도 겪었다. 세금 거두기를 생각하기에 앞서 씀씀이를 따져보는 게 맞다. 여야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선 가덕도신공항 건설에는 최대 28조 원이 든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경제성이 없다고 결론 낸 사업인데 선거를 맞아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해가며 다시 추진하려 한다. 국가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에 대해 법에 정해진 예타를 제대로 시행해 세금 낭비를 막는 일이 선심성 복지 사업보다 중요하다.

미국 대선에서 법인세율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당장 이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 코로나19로 충격에 빠진 경제를 살리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방역과 경제 회복 과제에 더해 4월 보궐선거 및 내년 3월 대선까지 치러야 하는 한국이 증세를 감행할 때인지 의문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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