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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소방수' 3인의 경고..."방심하면 다시 온다"

■책꽂이-위기의 징조들

(벤 버냉키·티머시 가이트너·헨리 폴슨 지음

마경환 옮김, 이레미디어 펴냄)

미 통화정책 이끈 버냉키·폴슨·가이트너

과거 복기하며 새 위기 가능성 경고

코로나 '유동성 파티'로 불안 잠재

금융규제 시스템 지속 점검·개선해

공격적 위기대응 정책 마련 주문

벤 버냉키(왼쪽부터)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이 지난 2018년 12월 워싱턴에서 브루킹스연구소 컨 주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미국 양대 모기지 기업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쓰러졌다.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국유화라는 극약 처방이 내려졌다. 하지만 그새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미국 금융 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충격을 받은 전 세계 증시가 아수라장이 됐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월가에서 잘 나가던 메릴린치증권이 순식간에 몰락해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흡수됐다. 대마불사의 상징, 보험사 AIG도 휘청거렸다. 리먼 브러더스보다 더 큰 충격파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위기감에 무려 850억 달러 규모의 정부 구제금융이 단행됐다. 다급한 조치에 AIG는 살아났지만 미국 연방정부 보증 은행 중 가장 큰 와코비아와 워싱턴뮤추얼이 속 쓸 틈 없이 파산했다. 돈줄이 막히고 끊어지면서 벼랑 끝에 선 금융사와 기업, 개인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일이 단지 몇 주 사이에 일어났다. 불과 수 주일 사이에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야 할 일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세계 금융가는 물론 각국 정부 당국자에게 단 하루도 숨 고를 틈을 주지 않았던 혼란과 공포의 나날, 바로 2008년 가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다.

사진 왼쪽부터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부 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부 장관,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AP연합뉴스


21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그 공포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쳐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시 모든 순간을 정확하게 복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세 사람이 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서 미국의 통화 정책을 이끌었던 벤 버냉키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인 헨리 폴슨,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인 티머시 가이트너다.

금융 위기의 최전선에서 소방수 역할을 했던 세 사람이 “금융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온 세상에 경고하기 위해 ‘위기의 징조들’이란 책을 함께 펴냈다. 책은 금융위기 직전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던, 아니 안정적인 듯 보였던 금융 시장을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2005년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은행 도산이 없었던 해였다. 집값이 꾸준히 올라가면서 시장과 사람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에 빠져들었다.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이 빈번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가구당 주택담보대출액이 63%나 급증했지만, 금융사들은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즉 서브 프라임 모기지 취급을 늘렸고 이를 다시 복잡하게 구성한 파생상품을 팔았다. 과도한 집값 상승과 대출 집행 등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금융 시스템은 안일했다. 결국 주택 버블이 터지자 금융 시스템은 통제 불능에 빠졌다.



당시 위기 대응 총괄책임자였던 세 사람은 금융 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정부 개입을 택했다. 물론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정부 개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데서 과거 실패했던 국유화의 망령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시대가 요청한다면 때때로 과감하게 방향을 틀 용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당시 연준은 과감한 통화정책을 펼쳤고, 행정부와 의회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증유의 재정 부양책을 전개했다. 또 일자리를 떠받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한 정부 구제 금융과 주택 소유자에 대한 지원책 등을 서둘러 마련했다. 비판이 있을지언정 “동원 가능한 모든 금융 정책과 경제 정책 도구를 사용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렇게 최전선에서 금융 위기와 싸운 저자들이 이제 금융회사들의 긴장감을 다시 한번 요구하고 있다. 당시 위기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는 다른 금융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재했다. 경기 호황이 영원히 지속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무분별한 투자의 책임은 CEO에게 있으며, 유동성 확보가 최고의 투자 전략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세는 지금도 모든 금융회사에 유효하다고 이들은 강조한다.



위기 당시 서둘러 마련했던 금융 규제 시스템에 대한 지속적 점검과 개선도 강조한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감독기구들의 역할이 구체화했고, 시장 개입의 근거가 마련됐지만 바이러스처럼 금융 위기도 시장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변하고 강해진다는 점에서다. 위기 초기에 공격적인 대응을 위한 기본 정책이 미리 마련돼 있지 않으면 금융위기 확산을 막을 골든 타임을 놓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현재도 금융 시장은 불안하다.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로 풀려난 막대한 유동성에 더해, 지금도 세계 각국이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계속 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정책이긴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유동성 파티는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계속 우상향하는 집값도 불안 요소다. 설마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할 리 없다고 믿고 싶겠지만, 누가 앞날을 장담할 수 있을까. 페스트와 같은 팬데믹 공포가 코로나 19라는 이름으로 다시 온 세상을 덮치리라 예견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금융 위기도 그렇다. 방심하고 있을 때 다른 얼굴을 하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이 버냉키와 가이트너, 폴슨의 경고다. 1만7,800원.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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