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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된 권력이 만능 아니다…與 ‘선택적 정의’로 헌법가치 아노미 빠져” [청론직설]

[‘헌법주의자’ 이석연 전 법제처장]

文정권, 권한행사때 헌법 들먹이고 기본권제약은 무시

삼권분립 훼손한 金대법원장 사퇴를…국민저항권 대상

헌재의 헌법적 양심을 믿는다, 판사 탄핵 인용 안될 것

과표 올려 종부세 부과는 위헌…조세심판 절차 돌입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15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집권 세력의 ‘선택적 정의’로 헌법 가치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며 “입법 독주를 유권자들이 견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2004년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이석연(67) 전 법제처장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는다. ‘제1호 헌법연구관’ ‘헌법 등대지기’ ‘제1세대 시민운동가’ 등은 자신의 경력에서 연유했다. 이명박(MB) 정부 시절에는 ‘미스터(Mr) 쓴소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MB 정부 초대 법제처장을 맡으면서 ‘쇠고기 고시’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축소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진보 쪽에서는 ‘보수 꼴통’이라고 비판하고 극우 쪽에서는 ‘위장 보수’라며 경계한다. 정작 그는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는 관심 밖이라며 스스로를 ‘헌법적 자유주의자’라고 칭했다. 자신의 판단 준거는 오직 헌법적 가치라는 설명이다. 헌법주의자로 불리는 이 전 법제처장을 15일 만나 21대 국회 들어 자행된 입법 폭주와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소추로 촉발된 삼권분립 훼손 논란 등을 들어봤다.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말이 안 된다.국회는 탄핵 사유에 대한 조사 절차부터 건너뛰었다.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면 탄핵 추진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서둘러 국회가 탄핵을 의결한 것은 절차적 위반이다. 더구나 법원은 1심에서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직권남용이 무죄라면 탄핵 사유가 불분명하다. 공직자 탄핵이 반드시 형사적 책임만을 묻는 것은 아니지만 임 판사 사례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처럼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임 판사를 변호하기 위한 변호인단에 합류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탄핵 인용 결정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국회가 탄핵 소추를 했으니 각하 결정이 이뤄지기보다는 본안 심사에서 기각될 것으로 본다. 헌법재판관의 헌법적 양심을 믿는다.

삼권 분립 훼손 논란을 일으킨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8일 퇴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핵을 추진하는 여당의 눈치를 보느라 임 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해명 과정에서는 거짓말한 것도 드러났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김 대법원장이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명백한 삼권분립 훼손이다. 법원은 정치적으로 독립해 심판해야 하고 대법원장은 그것을 지켜줘야 한다. 이 상태로는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수 없다. 국회가 대법원장을 감싸고 대법원장이 어물쩍거리면 헌법상 국민 저항권 발동 대상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가 국민 저항권 행사였다. 김 대법원장은 박 대통령 탄핵 결정문을 읽어보기 바란다.

-여당은 판사 탄핵을 추진하면서도 김 대법원장을 두둔하고 있는데.

△선택적 정의다. 이른바 진보 진영은 자신들만이 정의를 독점할 수 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졌다.

-지난해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됐는데 과거 위헌 결정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것 아닌가.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을 호도하는 표현이다. 수도 이전, 다시 말해 천도다. 헌법상 천도를 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헌법을 개정해 수도를 새로 명시하는 것이 첫 번째다. 다른 방법은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이다. 수도를 이전하는 문제는 국가 안위에 관한 사안이므로 국민투표에 부칠 사안이다. 이런 헌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위헌이다. 그냥 법률로 정할 수 없다.

-이 전 처장 등이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위헌 심판 청구를 한다는데.

△종부세 위헌 소송 변호인단은 지난 10일 첫 절차로 조세 심판 청구서를 송부했다. 조세 심판 전치 절차 때문에 곧바로 헌법 소원 절차에 들어가지 못한다. 다른 행정소송은 행정심판 단계에서 헌법재판소로 갈 수 있지만 조세 소송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정부가 다주택자의 고가 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를 최대 6%로 올리는 내용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해 7월 서울 잠실의 부동산중개업소에 세무 상담 전단이 붙어 있다./서울경제DB


-종부세가 위헌이라고 보는 이유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 보유세는 과세표준인 공시 가격을 조정해서 올린다. 공시 가격은 국토교통부의 고시로 정하는데 공시 가격 인상은 세율을 올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종부세는 미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다. 미실현이익에 대한 누진적 과세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세율이나 세 부담 상한선도 ‘조정지역’과 그외 지역이 다르다. 조정지역 결정 역시 국토부 장관이 임의로 한다. 세율을 최고 2배로 올린 것은 헌법상 과잉 금지에 위배된다.

-정부와 여당은 보유세 인상을 조세 정의를 내세워 정당화한다.

△조세 정의를 지향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 조세법상 응능(應能) 부담 원칙이 있다. 납세자의 능력과 행위에 비례해 공평하게 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종부세 인상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보복적 과세, 압살적 과세이고 예측 가능성도 떨어진다. 국민의 세금은 징벌적 벌금이 아니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 계층으로서는 세 부담이 과해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소급 입법이어서 위헌 논란이 있는데.

△소급 입법은 공익 목적일 때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개정 임대차법은 부동산 정책 실패의 대가를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다. 공익을 위해서 사익을 부득이 희생할 만한 사례가 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국민과 기업의 행위를 제한하는 입법이 쏟아지고 있다. 임대차 3법이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담은 상법 개정 등이 대표적이다.



△위헌적 입법 폭주가 도를 넘었다. 최근 여당의 행태를 보면 헌법 가치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다. 헌법 제119조를 보면 1항이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고 2항은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다시 말해 자유 속에서 평등을 지향해야 하는데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자유와 평등을 모두 잃게 된다. 경제민주화 조항에 따른 복지와 분배·평등 정책은 상향 조정식이어야 한다. 예컨대 큰 나무를 쳐서 작은 나무에 맞출 게 아니라 큰 나무를 두고 작은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손을 치켜들고 있다./연합뉴스


-여권은 최근 입법들이 ‘선한 정책’ 추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국회가 다수결로 입법화했다고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의견 수렴이 뒷받침돼야 한다. 헌법은 권력이 특정 정파의 독점적 행사를 막기 위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국민 참여의 기회균등을 부여하고 있다. 특정 목표를 위해 수단과 절차적 민주성을 무시하면 헌법 가치가 아노미(공황) 상태에 빠진다.

-헌법 가치의 아노미 상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헌법재판소가 설립되기 전에는 헌법 가치가 형해화(形骸化)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가권력이 헌법을 형식적으로만 지킨다는 의미였다. 예컨대 국가권력이 통치권을 행사할 때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면서 정작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고려하지 않거나 그 권한을 행사할 때 의당 지켜야 할 의무와 절차를 무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를 ‘헌법 가치의 장식 규범화’라고 표현한다. 요즘 정부와 여당의 행태가 딱 그렇다. 그들은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 고유 권한이라고 내세우지만 헌법상 그런 권한은 없다. 국민이 위임한 권한일 뿐이다. ‘선택적 정의’가 헌법 가치를 사실상 사장시키고 있다. 편 가르기를 하고 특정 지지층을 겨냥한 정책을 펴는 게 어디 한두 건인가. 그러라고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게 아니다.

-여권은 ‘선출된 권력’이라며 입법과 정책을 정당화한다.

△선출 권력이라고 결코 만능일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선출된 권력 역시 헌법 가치를 지켜야 한다. 180석을 얻었다고 하지만 득표율로는 제1 야당과 엇비슷하다. 그럴수록 겸허해져야 한다. 법치주의는 쌍방 통행인데 이게 무너지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법을 지킬 것만 강요하고 자신들은 권한만 행사하겠다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다. 국민들이 깊이 유념하고 권력의 독단을 견제해야 한다.

기업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서울경제DB


-2000년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떠나면서 시민 단체의 권력화를 경고했는데.

△지금은 시민 단체가 권력 그 자체가 됐다. 조국·윤미향·박원순 사태 등을 떠올리면 과거 내가 시민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 논란이 있다.

△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사면을 일찌감치 촉구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확정판결이 나지 않아서 안 된다더니 형이 확정되니 국민적 합의를 내세운다. 이런 말은 로스쿨 학생도 할 수 있다. 사면의 취지는 국민 화합에 있다. 그러자면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야 사면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욕을 먹더라도 국민 통합을 위한 배짱이 있어야 한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연말쯤 사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치적 계산일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같다는 얘기가 있는데.

△지지율은 신뢰할 게 못 된다. 박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유시민이 2016년 1월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어도 지지자가 최소한 35%는 나온다”는 모욕적 발언을 했지만 연말 지지율이 한자릿수로 추락했다. ‘국가흥망 필부유책(國家興亡 匹夫有責·나라의 흥망은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다)’이라고 했다. 유권자가 단단히 정신 차려야 한다.

-문 대통령을 대선 후보 시절에 만나 조언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무슨 말을 할 건가.

△독선과 불통으로 일관해온 문 대통령에게 더 기대하거나 할 얘기가 없다. 박수 받고 떠난 대통령이 없는 우리 헌정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54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지 6개월 만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전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3회로 법제처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뎠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헌법재판소 제1호 헌법연구관을 맡았다. 변호사 개업 후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을 지냈다. 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법제처장 등을 역임했고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부터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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