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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현금 없는 사회’

CBDC, 법화 지위 갖고 가상자산과 다르다 판단 나와

코로나19로 비대면 결제 급증하고 비트코인도 부각

스웨덴에선 교회 헌금도 현금 아닌 스마트폰 앱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소외 문제 해결이 급선무





한국은행이 연구하고 있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나왔습니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말합니다. 한은은 지난해부터 CBDC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검토하는 동시에 예상되는 법적 이슈를 외부용역을 통해 살펴보고 있는데 법률적 검토에 대한 보고서가 공개된 것입니다.

보고서는 CBDC가 기존 통화 법제상 ‘법화(法貨)’의 지위를 갖고 CBDC 발행도 한은의 목적·업무 범위에 포함된다고 봤습니다. 법화는 강제통용력이 인정되는 돈을 말하는데 화폐 교환성을 법적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모든 거래에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면서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발행주체가 명확하지 않고 기존 법정통화와 1대 1로 교환 할 수 없는 가상화폐와 CBDC는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한은은 CBDC 발행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가상 환경에서 CBDC 각종 상황을 실험하면서 연구를 진행한다는 방침입니다. 지난달 이주열 한은 총재도 “가까운 시일 내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워낙 지급 결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그에 따라 CBDC 발행 필요성이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은행 앞 /연합뉴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급결제 환경을 빠르게 바꾸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서도 CBDC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면 한은도 CBDC 발행 결정을 미룰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중국 인민은행은 기본 설계 작업을 마친 뒤 선전에 이어 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면서 CBDC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글로벌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최근 1조7,000억원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매수하면서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비트코인 등 민간에서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자유롭게 유통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능력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만큼 세계 각국의 CBDC 연구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현금 없는 사회’가 예상보다 빠르게 도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유럽 국가들은 현금 없는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대부분 상점에서 지불 수단을 카드로 한정하고 현금 결제를 거절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교회도 헌금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결제를 하고, 노숙인들도 단말기를 통해 스마트폰 앱 결제로 구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물론이고 현금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조차 정부가 나서서 비현금결제를 늘리고 있습니다.

설 연휴를 일주일 앞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현금운송 관계자들이 시중은행에 공급될 설 자금 방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사진공동취재단




우리나라 역시 현금을 사용할 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는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각종 패스트푸드점은 무인단말기(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동전 없는 사회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부 편의점과 함께 현금 결제 후 남은 거스름돈을 계좌로 바로 입금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이미 2018년 기준으로 ‘가계 지출 중 상품 및 서비스 구입’에 대한 현금결제 비중은 19.8%까지 떨어진 상황입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하면 다양한 장점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옵니다. 먼저 지폐와 동전을 발행·유통·관리·회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자금세탁이나 탈세 등 범죄 방지 효과도 기대됩니다. 현금은 익명성 때문에 유통 과정을 추적하기 어려운 반면 CBDC는 소유자와 거래 내역이 기록에 남게 되기 때문에 범죄 이용이 어려워집니다. 현금의 투명성이 강화될 경우 세수 확보가 가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시간 경제동향이나 소비 패턴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통화정책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반면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은행 계좌가 없거나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지 않는 소외계층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큽니다. 특히 현금을 주된 지급수단으로 활용하는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벽지 거주자 등 취약계층의 금융소외와 함께 소비활동 제약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스웨덴에서도 현금 사용 감소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카드나 간편결제수단이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환경에 취약한 이용자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은이 공개한 외부용역 보고서에도 해당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금 제도가 폐지되더라도 소매점에서 생필품을 구매하거나 병원 등 긴급한 상황에서는 현금 사용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2018년 발생했던 KT 아현지사 화재로 통신이 마비되면서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전자 시스템이 마비될 경우 사회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한 실물기반의 토큰형(오프라인) CBDC 방식을 제한된 범위 안에서 허용할 필요성도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은이 CBDC를 언제부터 발행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나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의 부상 등이 현금 없는 사회를 앞당길 것은 분명합니다. 현금시대의 종말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각종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 마련과 함께 새로운 화폐 체제에 대한 준비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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