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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北 원전 건설' 문건이 남긴 '다잉 메시지'

'가장 설득력 있다'는 北 신포 건설, '비핵화' 치명적 한계 스스로 인정

대신 신한울 3·4호기 활용이 "곧장 건설 착수, 사업비 절감, 핵 물질 통제 가능" 강조

'탈원전 수정 결단만 내리면 된다' 메시지 던진 듯... 2018년 탈원전과 남북 협력 '대치'했나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작성한 본문 4쪽, 참고자료 2쪽 총 6쪽짜리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이른바 ‘북원추’ 문건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해당 문건이 작성된 경위와 이것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건네진 ‘USB’에 담겼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며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은 “USB에는 원전의 ‘ㅇ’ 자도 들어있지 않다.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둔 야권의 ’북풍(北風) 공작‘”이라며 맞서고 있습니다.

대북 원전 지원 의혹은 어떤 식으로든 실체가 규명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건의 답은 늘 현장에 있듯, ‘북원추' 문건에는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원추’ 문건을 찬찬히 뜯어보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것 이외에 또 다른 메시지가 숨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간’을 남긴 것이지요. 이 숨겨진 메시지는 정부의 북한 원전 건설 추진 여부에 대한 실체 만큼이나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일 공개한 ‘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원문. /연합뉴스


‘북원추’ 문건은 많이 알려진 것처럼 북한에 원전을 지을 때 가능한 3가지 시나리오를 담았습니다. 1안은 과거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주도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이 진행됐던 지역 인근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 원전을 짓는 방법, 2안은 비무장지대(DMZ)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 3안은 백지화한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남한에서 북한으로 전력을 송전하는 방식입니다. 문건은 각 안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한 뒤 1안(금호지구)이 ‘소요 시간과 사업비, 남한 내 에너지 전환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 있다’고 결론 지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비핵화 조치 내용, 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한계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한계’에 대한 부분은 현재 정부와 여권이 ‘북한 원전 건설이 추진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대목입니다. 비핵화를 전제로 ‘상상’해본 산업부 공무원의 아이디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를 뒤집어보면, 문건 작성자 스스로도 ‘1안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지은 것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비핵화는 남한과 북한 뿐 아니라 주변국과 국제 사회가 얽혀 있는, 그래서 매우 복잡 다단하고 지난한 과제입니다. 그런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 시나리오를 가장 설득력 있는 방안이라고 결론 내렸다?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입니다.

2안인 DMZ 원전 건설 방안은 좀 더 문건 작성자의 의도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문건은 DMZ에 원전을 지을 경우 ‘핵의 평화적 이용과 원전 수출 지원이라는 상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적용하려는 기술 실증 경험이 없고 공기 지연, 사업비 등이 커질 수 있다’, ‘지질 조사 결과에 따라 건설이 불가능할 수 있다’ 등 명확한 한계점이 따라 붙습니다. 무엇보다 지뢰가 매설돼 있는 DMZ에 그것도 원전을 짓겠다는 발상을 서기관급(4급) 공무원이 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에너지 전문가들도 DMZ 안은 “그저 그곳 땅이 비었으니 한 번 지어보자 하는, 초보 수준 아이디어”라고 혹평한 바 있습니다.



김종인(가운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대책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국회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그렇다면 남는 것은 3안, 바로 경북 울진에 신한울 3·4호기를 마저 지어 이를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문건은 신한울 3·4호기가 ‘설계가 완료 됐고, 토지도 마련 됐으며, 실시계획도 이미 수립됐다’며 가장 신속하게 추진 가능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북한 원전 건설 사업이 만일 시작했을 때 곧장 돌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공정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됐으니 사업비를 5,000억원 가량 줄일 수 있고, 핵 폐기물 시설을 남한에 짓기 때문에 혹 북한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통제도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원전 자체가 남한에 있으니 ‘북한 비핵화’에 따른 영향이 1안보다는 현저히 낮아질 확률이 큽니다.

3안의 단점은 무엇일까요. 문건은 ‘에너지 전환 정책의 수정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은 문재인 정부 핵심 기조인 ‘탈원전’을 의미합니다. ‘탈원전 기조만 수정한다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신속하게 추진 가능하며, 핵 물질을 남한이 통제할 수 있고, 비핵화라는 변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신한울 3·4호기가 가장 적합하다.’ 문건이 내린 진짜 결론이 이와 같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요? 정부가 결단만 내린다면 남북 평화를 증진하는 동시에 국내 원전 기술을 사장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산업부 설명대로 ‘정부 공식 입장도 아닌 내부 검토 의견’으로 추가 검토 없이 그대로 종결된 이 문건이 남긴 ‘다잉 메시지’가 아닐까요. 기실 ‘북원추’ 문건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경위만큼 ‘왜 문건이 추가로 검토되지 않고 그대로 종결됐느냐’ 하는 점도 따져봐야 할 대목입니다. 탈원전과 남북 평화 가운데 과연 정부가 무게를 실어준 정책은 무엇이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야권의 북한 원전 건설 의혹에 대해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연합뉴스


한 가지 더. 청와대와 여권은 ‘북원추’ 문건이 그저 내부 문건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공무원 한 명이 ‘철 모르고’ 낸 아이디어라는 것이죠. 그러나 ‘북원추’ 문건은 소요 시간, 사업비 같은 사업 추진 과정의 디테일을 나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전에 없는 평화 무드가 조성되던 때에도 ‘북미 간 비핵화 조치가 관건’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지킵니다.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산업부 소속 다른 공무원이 ‘북원추’ 문건을 보고 ‘우리 부 서기관이 만든 보고서 초안이 이 정도 수준’이라고 자랑스러워 할 일이거나, 아니면 이 보고서가 경험 많은 상부와 피드백을 거치며 나름 밀도를 더해 나간 것이거나. 문건 작성 경위가 밝혀져야 할 또 다른 이유입니다.

/세종=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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