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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편가르기 부동산 정책

김흥록 건설부동산부 차장





전세는 나쁜 제도이고, 월세는 착한 제도일까. 1주택자는 좋은 사람이고, 다주택자는 나쁜 사람들일까. 나름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경제정책에서 사람이나 제도 자체에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모순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나쁜 제도·사람으로 규정하면 없애야 할 대상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현 정부에서 말하는 적폐 세력이 되는 셈이다.

이를테면 ‘전세는 나쁜 제도’라고 규정하면 전세는 없애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런데 전세가 없어진다면 집 살 돈이 없는 전세 거주자들은 월세로 가야 하니 오히려 서민 주거 안정을 해치게 된다. 그것을 부인하고 “월세도 괜찮다”고 국민들을 계몽하려는 순간 서민들의 상실감과 반발은 필연적이다.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을 만드는 순간 다주택자들은 사라져야 하는 대상이 된다. 모두 1주택만을 갖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 그러면 그 과정에서 전셋집이나 월셋집이 줄어들게 된다. 셋집 10개 중 8개는 다주택자들이 본인 사는 집 한 채 빼고, 다른 보유 주택을 월세나 전세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셋집이 줄어들면 전세 가격이 오른다. 오른 전세 가격은 매매 가격을 밀어 올린다. 결국 전세 가격이 오르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도 멀어진다.



재건축도 마찬가지다. 재건축은 투기의 온상, 집값 자극의 주범이라는 시각에서 ‘나쁜 것’이라고 규정하면 재건축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된다. 그런데 재개발과 함께 전체 아파트 공급의 70~80%를 담당하는 재건축을 옥죄면 새 아파트 공급은 그만큼 줄어든다. 재건축으로 나올 새 아파트가 줄어드니 수요자들은 그 대체 상품으로 기존 아파트 중 5년 이하 새 아파트를 찾는다. 이에 신축 아파트 가격이 이상 상승하고, 이는 다시 구축 아파트 가격을 끌어올린다. 앞으로 지어질 재건축 아파트의 기대 가격도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 집값을 자극하는 나쁜 재건축을 막았더니 집값이 오히려 자극을 받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 같은 현상은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습들이다. 전세나 다주택자, 재개발·재건축 같은 사람과 제도 자체에 선악의 딱지를 붙인 결과다. 통상 경제에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판단은 담합이나 다운 계약서, 사기 분양, 부정 청약 같은 ‘행위’에 국한돼야 하는데 이번 정부는 ‘존재’ 자체를 나쁘거나 그르다고 규정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가 펼친 부동산 정책이 사실은 부동산 정치에 가까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책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만 정치는 우리 편, 너희 편이 갈려져 있다. 그동안 다주택자, 재건축·재개발 조합원, 갭 투자자, 고가 주택 보유자는 세금과 대출로 억눌러야 하는 ‘너희 편’에 속해 있었다. 그런 편 가르기 부동산 정책의 결과 우리 편이 더 행복해진 것도 아니다. 마침 새해를 맞아 새로운 주택정책 책임자가 임명됐다. 오는 4월에는 새로운 서울시장이 선출된다. 올해에는 새로운 정책을 기대한다./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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