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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돈받고 불량품 만드나"…'휴대폰 화형식'으로 더 강해진 삼성전자

1988년 국내 최초 자체 개발 휴대폰

양적 성장만 추구하다 불량률 치솟아

1995년 3월 9일 구미사업장에서

휴대폰 15만대 쌓아놓고 화형식 거행

삼성 그룹 전반에 위기의식 불어넣어

1995년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삼성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애니콜 등 휴대폰을 비롯해 무선전화기, 팩시밀리 등 불량제품 15만대를 전량 폐기 처분하는 모습./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005930)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당시 국내외 시장은 모토로라가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25일 별세한 고(故)이건희 회장은 당시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며 신수종사업으로 휴대전화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한 삼성전자는 1994년 10월 ‘애니콜’ 브랜드를 만들어 첫 제품을 내놨고 수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30%를 장악했다.

하지만 삼성은 모토로라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점유율을 가져오기 위해 질의 개념이 아닌 양의 개념으로 휴대폰을 만들었다. 무리한 제품출시로 양적 성장만 추구한 결과 그해 삼성전자 휴대폰의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다. 높은 불량률을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은 크게 화를 냈다. 이 회장은 불과 1년 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독일까지 가서 ‘질의 경영’을 부르짖었는데 아직도 삼성은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신경영 선언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질보다 매출과 성장위주의 양적 팽창 분위기였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회장은 불량품을 무조건 새 제품으로 바꿔주라고 지시했다. 무려 15만 대에 달하는 불량품이 수거됐다. 회사의 손해가 컸다. 1995년 3월 9일 이 회장은 수거된 15만 대의 휴대폰을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으라고 지시했다. 2,000여 명의 임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머를 든 10여 명이 전화기를 내리쳤다. 조각난 휴대폰에 불까지 붙였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500억 원어치의 휴대폰들이 녹아 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제조를 담당한 여직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제품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오랫동안 회자됐던 ‘휴대폰 화형식’이다.

당시 이를 지켜본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 자식 같은 무선전화기가 타는 것 같았다. 그 화형식이 계기였다. 우리 가슴 속에 불량에 대한 안이한 마음을 털끝만큼도 안 남기고 다 태워버렸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지금의 삼성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 해 삼성전자 애니콜은 국내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하며 모토로라와 노키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2011년 삼성전자는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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