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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CEO 연임이 죄야? 테스 형! 금융이 왜이래"

홍준석 금융부장

정치권 CEO 3연임 금지법 추진은

글로벌 흐름 역행하는 초법적 발상

리더들 10년 넘어야 최대역량 발휘

판 깔아주진 못할망정 흔들때 아냐





지난 추석의 화제는 단연 ‘가황’ 나훈아였다. 15년 만의 무대 복귀가 반가웠고 그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압도적 카리스마에 2시간 반 내내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7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미가 철철 넘쳤고 독보적인 노래 실력도 변함없었다. 역시 관록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금융권에서는 이 말을 쓸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최근 정치권에서 실력과 상관없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임기를 제한하려는 황당한 법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농담 같지만 실제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이달 내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금융지주 회장의 임기가 보통 3년이니까 딱 한 번의 연임만 허용하고 3연임은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CEO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도 무조건 옷을 벗어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에, 노래 잘하고 계속 잘 부를 수 있는데도 나훈아에게 “이제 가황 몇 년 했으니 노래 그만하라”고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공기관도 아니고 단 1주의 정부 지분도 없는 민간기업에 과잉 입법을 강제해 사실상 인사 개입하는 것은 반시장적일뿐더러 경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조치라고 금융권은 항변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 집권 시 금융사가 사유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은데 주요 금융사 대부분은 이사회, 모범규준 등 제도적 장치가 어느 곳보다 잘 운영되고 있어서 법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며 “CEO 평판이나 성과가 나쁘면 이사회나 주주 반대로 연임이 어렵다”고 전했다.

이런 초법적인 발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CEO들의 평균 임기는 10.2년으로 2009년의 7.2년보다 3년이나 길어졌다. 특히 CEO들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 시기가 임기 11년에서 15년 사이였다고 분석했다. 리더들이 이 기간에 업무 지식이 최고에 이르고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금융권의 전설인 제이미 다이먼(64) JP모건체이스 회장은 2005년부터 15년째 재임하면서 회사를 눈부시게 키웠다. 금융위기 당시 다른 은행들과의 인수합병(M&A)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2006년 144억달러였던 순이익을 지난해 364억달러로 역대 최대로 늘렸다. 2018년에는 임기가 5년 더 연장됐다. 지난해 1월 물러난 로이드 블랭크파인(65) 전 골드만삭스 회장은 12년간 재임했다. 골드만삭스의 핵심인 트레이딩사업부를 총괄하며 자산 1조달러인 글로벌 최고의 투자은행(IB)으로 일궜다. 골드만삭스 주가는 그의 재임 기간 70%가량 올랐다.

뚜렷한 오너가 없고 공공성이 크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인 한국 금융이 ‘동네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물론 예전의 ‘침 바르면 임자’라는 무개념은 없어졌지만 이번 ‘CEO 규제법’ 등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지금도 금융사 돈은 눈먼 돈이고 CEO들을 손쉽게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주요 금융사들이 뉴딜 펀드 등 관제 정책에 총동원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대출 부실 우려에도 이자조차 유예해줘야 하고, 예금보험료·감독분담금 등 준조세를 4조원이나 뜯기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다. 심지어 법정금리를 연 24%에서 연 10%로 내리자는 ‘이자제한법’과 서민에게 저리로 대출을 보장해주자는 ‘기본대출권’ 등 정부 당국자도 화들짝 놀랄 정도로 시장원칙에 반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글로벌 금융은 말로만 떠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종사자와 경영진 모두 뼈를 깎는 혁신의 모습을 보이고, 당국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과감한 규제 혁파에 나서고, 정치권은 무럭무럭 자라나게 좋은 법안들로 토대를 깔아줘야 한다. 갈 길이 먼데 나무를 흔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안의 화제인 나훈아 신곡 ‘테스형!’에는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테스형에게 묻고 싶다. “테스형! 우리 금융은 왜 이래, 언제까지 이래야 해.” jsh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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