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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그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

3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김종인의 대기업觀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업인을 만나 뭐하겠나.” “경제세력들이 은연중에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운동권 출신 586 정치인의 말로 들리지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최근 발언이다. 기본적으로 자유시장경제론자인 김 위원장은 유독 대기업에는 칼날을 벼른다. 그는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기업 자산을 자신의 쌈짓돈으로 여긴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이라고 불리는 반기업법을 수용하는 배경이다.

일단 이름부터 바꾸자. 공정경제 3법이 아니다. 기업규제 3법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공정경제 속에 대기업은 불공정· 불평등의 핵심세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 11월 ‘공정경제전략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다.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 집단에 편중됐고 중소기업은 성장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정경제와 경제민주화의 과정에서 대기업 특히 재벌은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재벌은 만악(萬惡)인가

기업규제 3법의 근간이 되는 공정경제의 출발점은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 집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렸다. 대기업을 경제·사회적 불평등의 주범으로 본다면 개혁의 대상이지만 미래성장의 동반자로 본다면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 위원장의 기업관은 어떨까. 그는 2017년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재벌개혁을 출자제한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적었다. 기업규제 3법과 같은 맥락이다. 이어 대기업의 낙수효과가 약화됐다고 주장하며 “의회의 본분은 거대 경제세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7년 경제민주화 2020년 경제민주화

87개헌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넣었다는 김 위원장은 1991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재벌 대기업 부동산 매각 조치를 강행했다. 물론 부동산 가격 폭등에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대기업을 규제하며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켰다. 투기에 맛을 들인 대기업에 적합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33년이 지났다. 대기업은 더 이상 한국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익을 내고 사실상 외국인 주주가 최대주주인 기업도 여럿이다. 투기를 하고 싶어도 불법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외국 투기세력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다. 착취는 옛말이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창업하고 대규모 자본 투자로 성장한다. 글로벌 시장이 감시를 한다. 30년 전 대기업관으로 2020년 대기업을 봐서는 안 된다. 스웨덴의 미래학자 매그너스 린드비스트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틀렸다’라는 저서에서 7가지 사각지대를 말한다. 그중 첫 번째가 ‘안다’라는 함정에 빠져 변화를 무시하는 것이다. 기업의 탐욕을 알지만 변화를 모르는 김 위원장도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기업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경제정책

친(親)대기업 정책이 불공정사회를 만들었다고 공정경제에서는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만큼 대기업 규제가 많은 대신 중소기업 지원이 많은 나라는 드물다.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 격차 확대와 양극화는 내부 구조 모순 탓이라기보다 치열한 기업 간 경쟁에서 성공과 실패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제조 대기업이 고용 창출이 없다는 주장도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맥킨지가 성장주도 국가 제조업의 10년 후 성장성과 고용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와 싱가포르만이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고용 문제 해결을 제조업에 기대는 시점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난 셈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자율주행·5세대(5G)·인공지능(AI)·드론 미래산업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기업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진 복지국가로 꼽히는 독일도 기업 경쟁력 강화를 여전히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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