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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혈구지도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내 마음을 자로 삼아 상대를 대하라'

수해현장 인증샷 논란 빚은 정치인들

홍수조절 기능 향상·침수 재발 방지

이재민 지원 등 실질 대책 강구해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올여름은 폭염이 나타나리라는 기상청의 예상과 달리 역사상 유례없는 최장의 장마가 진행되고 있다. 장마가 지속해 일상에 불편을 주는 정도라면 참을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제방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침수되고 가옥이 파괴되고 길이 끊어지는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장마만이 최장이 아니라 피해도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피해와 우려도 적지 않은데 장마까지 겹쳐지자 피해 지역의 주민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홍수 피해가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자 정치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수해 현장을 찾았다. 그들은 수해 현장을 찾아 주민을 위로하고 지원을 약속하며 수해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국회의원이 복구작업 하는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복구작업을 한 사람 치고 옷이 너무 깨끗하다든가 작업보다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인증샷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연말연시에 보육시설을 찾아 사진을 찍고 선거철에 시장에 가서 서민 코스프레를 한다는 등 이미 여러 차례 지적이 나왔다.

사실 정치인의 수해 복구작업이 작업 자체로 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행원이 많거나 보여주기식 작업을 하면 이득보다 피해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구작업이 피해 주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피해 실태를 확인하는 점에서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면 됐지 그 반대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렇게 작업을 하고 난 뒤 피해를 방지하고 지원하는 대책에 얼마나 골몰해 실효 있는 법안을 제정하느냐이다. 복구작업의 참여가 공감과 체험 그리고 확인으로만 끝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생색내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 보면 “오른쪽 사람에게 싫었던 방식으로 왼쪽 사람과 사귀지 말고 왼쪽 사람에게 싫었던 방식으로 오른쪽 사람과 사귀지 말라. 이것이 바로 혈구지도이다(소오어상·所惡於上, 무이교어좌·毋以交於左. 소오어좌·所惡於左, 무이교어우·毋以交於右. 차지위혈구지도·此之謂혈矩之道.)”라고 한다. 혈구지도는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우할지에 대한 문제를 푸는 실마리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혈구지도는 아주 유효하고 타당한 기준이 된다. 이는 내가 주위 사람과 어울리며 겪었던 일 중 불쾌하거나 좋지 않았다고 하면 그걸 기준으로 해 나도 주위 사람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 행위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혈구지도는 나만의 기준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나와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행위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수해 현장을 찾은 뒤에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인이 재해를 입어 피해를 봤을 때 누군가 현장을 찾아 위로하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후 나중에 잊어버린다면 당연히 그 사람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도 수해 현장을 찾아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놓고 의정활동에서 아무런 입법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피해를 본 주민들로부터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피해를 봤을 때 말만으로 약속하지 않고 실제로 이행해야 하듯이 이재민의 처절한 고통을 봤다면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기상 예측의 적중률을 높이는 문제, 댐의 홍수 조절 기능을 극대화하는 문제, 침수 지역의 지도를 작성해 재발을 방지하는 문제, 산사태 방지를 위한 사방댐을 건설하는 문제, 이재민이 조속히 자활하도록 지원하는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수해 복구현장을 다녀온 뒤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느라 힘들고 지쳤던 몸을 추스르고 나서 손을 툴툴 털고 웃으면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 장마와 홍수로 인해 산적한 문제를 푸는 연구를 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재민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부여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혈구지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만의 고통에 아우성치고 주위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특권의 소유자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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