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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하지 않다"면서…"바쁘다" 간호사에 대리시술·처방시켜

[관점] 의대 정원 확대와 '두 얼굴'의 의사단체

의료법상 불법…간호사 업무범위 확대엔 미온적

의료취약지·전공의 기피과목 건보수가 인센티브

정부, 도입하겠다는 데 “없어서 이 모양” 비판만

장외투쟁만 할게 아니라 협상 테이블로 나와야

향후 10년간 의대 입학정원을 지역의사 3,000명을 포함해 4,000명 늘리고 첩약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정책에 의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은 “실패할 게 뻔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기득권자의 밥그릇 지키기’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많다.

의사들은 “의료격차를 줄이려면 의사 수를 늘릴 게 아니라 불균형이 발생하는 지역과 전공 등에 더 높은 건강보험 의료수가(의료 서비스 가격)를 적용하는 등 실질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거나 “의료취약지 문제의 핵심에는 적은 인구, 고질적인 저수가, 열악한 생활 인프라, 부실한 의료전달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옳은 지적이다. 문제는 의협이 너무 ‘장외투쟁 체질’이라는 데 있다.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화의 장에서 이탈하거나 아예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요구만 되풀이한다. 14일로 예정된 파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미 농어촌 병의원 등이 문을 닫지 않도록 ‘의료취약지 건강보험수가 가산체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있었다면 살릴 수 있는 사망자 비율(치료 가능한 사망률)과 지역 격차 등을 줄이기 위해 공공보건의료의 책임성과 필수의료에 대한 전 국민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세부방안을 다듬고 있다.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올해 상반기 중 발표하려던 단기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느라 미뤄졌는데 연내에는 발표할 것”이라며 “의협의 요구사항 중에는 함께 논의할 만한 좋은 내용이 많아 대화가 필요한데 (의협이 파업국면으로 몰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지역의사 10년 의무복무 위반 시 면허취소”는 위헌 소지

물론 의협과 대한병원의사협의회를 포함한 의사단체의 주장에는 수긍할 부분도 많다.

우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정책의 핵심으로 생각하는 지역의사제의 경우 파생될 역효과나 실효성, 법적 문제 등 여러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한 듯하다. 여당이 의대 정원 확대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지방의대 신설 등 정치인들의 정치적 성과·이익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이미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이 의대 신설을 위해 뛰고 있다.

정부는 면허 취득 이후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지역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기로 했다. 하지만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다. 똑같은 교육·수련 과정을 거쳐 ‘지역의사 면허’가 아닌 ‘의사 면허’를 땄는데도 ‘지역 의무복무’ 10년을 채우지 않았다고 면허정지도 아닌 면허취소까지 내리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

지역의사들이 10년 동안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다 대도시로 떠날 경우 지역의료를 살려보겠다고 만든 제도가 의사들의 대도시 집중현상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문민정부 시절 낙후된 지역의료 인프라 향상과 지역 균형발전 명목으로 이뤄졌던 지방의대 신설정책이 부실 의대를 양산하고 의료인력·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켰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한다.

최대집(오른쪽 다섯번째)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의사협회


◇건보 수가 인센티브는 진료과목 따라 의사들 입장 달라

의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경쟁 심화에 따른 ‘몸값’ 하락이나 의료기관 경영 악화라는 관측도 있다. 의사단체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논리 중 군색한 내용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공병원 강화와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지역 의료환경이 변화하면 이미 지방에 자리 잡은 개업의사들의 입지는 지금보다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지역의사제로 배출된 의사들이 개업해 기존 ‘지방 의사’들과 경쟁하려면 10년가량의 교육·수련기간과 10년의 의무복무기간이 지나야 하는데 ‘기존 의사들의 지방이탈이 우려된다’고 전제하는 것은 지방 의사들을 욕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역의사제 관련 의사들이 10년 의무복무를 마친 뒤 지방에서 개업한다면 박수칠 일이 아닌가.



지역의사 3,000명 양성과 의무복무 10년이 끝나면 지역 필수의료가 공백 사태를 맞을 것이라거나 지역의료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지나치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 추가 보완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출되는 의사 수가 늘면 지방에서 일하든 수도권·대도시에서 일하든 의사들 간의 경쟁이 지금보다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10년간 총 4,000명의 의대 정원을 늘려도 전체 의사의 3%에 그치는 만큼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의사들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수가가 미국 등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의료계는 이에 맞춰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만들어낸다. 필요 이상으로 고가의 검사를 실시하고 비급여 진료가 많은 진료과목으로 전공의들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역 간 의료격차와 전공의들의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 과목 기피 현상을 완화해줄 건강보험수가 현실화나 수가 인센티브 정책은 최근에야 논의되는 단계다. 수십년 동안 만지작거리기만 한 의료전달체계(의원-병원-상급종합병원)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의협 등은 장외투쟁에만 매달리지 말고 협상을 통한 장내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의료 시스템과 수가 체계의 변화 없이 의사 수만 늘리는 정책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비판만 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원하는 변화가 한꺼번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진료과목 간에도 이해관계가 다르고 건강보험수가 인상은 건강보험료와 세금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구 한 건물에 입주한 의원들이 14일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 등의 파업(집단휴진)을 앞두고 휴진·휴가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동네의원을 비롯한 의료기관 20% 정도가 휴진하겠다고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연합뉴스


◇“부족한 의사를 대신해 일 떠맡은 간호사 1만명 달해”

의협 등 의사단체는 간호사의 역할 확대를 법령에 못 박는 데도 미온적이다. 간호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가자격증을 딴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 설정은 법령에 담겨 2월에 시행됐어야 하지만 의사·간호사단체 간 협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의협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수많은 병원 의사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수술·시술·처방 등 의료법상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 중 상당 부분을 불법적으로 ‘진료보조인력(PA) 간호사’ 등에게 떠넘기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대학병원에서 PA로 일하는 간호사의 경우 지난해 조사한 15곳에서 평균 50.8명(총 762명)이었는데 올해 조사한 8곳에서 평균 89.6명(총 717명)으로 늘어났다”며 정부에 전국적인 현황조사와 해결책 마련을 촉구했다.

2016년 말에 처음 시행된 전공의법(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법)이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시간을 주당 평균 80시간 이하로 제한하자 대학병원 등은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간호사·응급구조사·의료기사 등을 PA로 지정해 불법의료를 강요하고 있다. 현재 1만명 안팎의 PA 간호사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24년차 지방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A씨는 “우리 병원의 경우 19개 진료과에서 1~13명씩 총 66명의 PA가 배치돼 있다”며 “수술이 많은데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없고 수술 전후 처치가 많은 외과가 13명으로 가장 많다”고 했다. PA 간호사를 쓰는 진료과는 감염내과·류머티스내과·신장내과·신장내과·소화기내과·혈액종양내과·신경과·안과·성형외과·청소년과·재활의학과·정형외과·외과 등이다.

그는 “PA가 국가면허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의료법에도 없는 직역이어서 최근 ‘임상전담 간호사’로 명칭을 바꿨지만 하는 일은 마찬가지”라며 “의사가 할 의료행위들을 PA가 대신하면서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라고 강조했다. 또 “간호사 임금의 10배 연봉을 줘도 지방에는 오지 않겠다는 의사들에게 도대체 어떤 처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부족으로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이런 일들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것이 우리 의료현실”이라며 “정부·의료계·환자단체·국민·보건의료노동자 등이 참여하는 공개토론 등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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