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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 "4차혁명 선도 위해 제조업 혁신 중요…정부, 기업 발목 잡지 않아야"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즘 정상적 기업 활동도 '적폐'로 몰아 기업가정신 훼손

제조업 비중 높은 한국, 4차산업혁명 구호 속 IT지원 치우쳐

강점 가진 제조업 성장 방안 민관이 머리 맞대고 찾아내야

정부, 중장기 R&D에 집중토록 현장 목소리 듣고 개선을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은 29일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개인 오피스텔에서 인터뷰를 갖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의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4차 산업혁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가속화하면서 글로벌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약 30%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생산 차질, 이동 제한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세계 각국 공장의 가동중단·폐쇄 등으로 생산량이 급감했고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은 어떻게 미증유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서울경제는 29일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을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개인 오피스텔에서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업 혁신 방향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지난 2018년 7월 포스코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는 최근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철의 문명사적 궤적’이라는 책을 펴내며 2년간의 긴 침묵을 깼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의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며 “산업 전반에서 혁신이 골고루 일어나야 하는데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 혁신이 멈추거나 뒤처지는 일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들이 열심히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응원했는데, 요즘에는 정상적 경영활동조차 ‘적폐’로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만연하면서 기업인들의 기가 많이 꺾였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년 동안 안부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대외활동을 거의 안 하신 것 같다.

△33년의 포스코맨 생활을 마치고 회장직에서 내려온 게 2018년 7월26일이다. 꼭 2년이 지난 셈이다. 2년간 상임고문으로 지내는 동안 회사에서 여러 지원을 받았다. 회사와 후배들, 더 나아가 우리나라 철강 산업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었다. 50년 가까이 쌓아온 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책으로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의 기원부터 문명과 전쟁, 미래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범위가 넓다.

△전공을 살려 기술 위주로 쓰려고 했다. 그런데 공부할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욕심도 생겼다. 처음에는 6개월이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1년 넘게 걸렸다. 가장 자신이 없었던 분야가 물리학과 인문학이었다. 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또 인류 문명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보려면 지구물리학과 인문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들을 만나 자문을 얻고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궁금증을 풀어갔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은 29일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개인 오피스텔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의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4차 산업혁명 시대인 만큼 제조업 혁신이 중요한데.

△한국 경제는 제조업의 비중이 크고 국가 경제에 대한 제조업의 기여도도 높다. 실제로 우리나라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8%로 유사한 구조를 가진 독일(21.6%), 일본(20.8%)보다도 높고 미국(11.6%), 영국(9.6%)과는 격차가 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정부가 소프트웨어 등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산업을 적극 키우고 있지만 이미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이 선도하고 있는 분야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IT 산업에만 쏠릴 게 아니라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제조업을 더욱 잘 키울 수 있도록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제품 가격은 낮추고 품질을 높여야 한다. 싸고 질 좋은 제품이 잘 팔린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이를 위해 포스코가 선택한 전략이 지능화다.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균일하게 품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는 2016년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나섰는데, 현재 생산현장 전 분야에서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스마트 안전모를 비롯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활용하는 용광로조업제어, 후판형상제어 등 적용 범위가 계속 늘고 있다.

-스마트팩토리 구축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라고 하는 20~30대 직원들의 도전정신과 문제해결능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구세대 입장에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의식이 강하고 조직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능력과 도전정신이 빛을 발했다. 40대 이상 직원은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반면 20~30대 직원들은 재미있는 도전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해외 자료를 검색하고 다양한 수단을 적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했다. 동기부여만 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세대다. 제조업 혁신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축이 바로 이러한 인적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2차전지 사업을 성공시킨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는데.

△인류가 존재하는 한 철의 쓰임새가 사라지지 않겠지만 철만으로는 포스코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당장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는 게 최고경영자(CEO)의 중요한 책무였다. 10년 후를 생각할 때 현재의 산업군에서 10배 이상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전기자동차라고 봤고, 그중에서도 배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배터리 전체에서 소재가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절반에 육박한다. 시장이 커질수록 성장한다는 얘기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은 29일 서울 삼성동에 자리한 개인 오피스텔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의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리튬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남미를 숱하게 오갔다고 들었다.

△양극재는 2차전지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인데, 핵심 소재가 리튬이다. 사실 포스코가 2차전지를 신사업으로 추진한 것은 10년 전이다. 2011년께 포스코 산하 연구기관인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으로 재직 중일 때 해당 기술개발을 맡았다. 리튬화합물은 염수나 리튬광석을 처리해 추출하는데, 제조원가에서 유리한 원료가 바로 염수다. 대부분의 염수 자원은 남미의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 접경 지역에 분포돼 있다. 처음에는 세계 최대의 염수 매장량을 가진 볼리비아와 협력하려 했는데 볼리비아 정부의 무리한 요구조건 제시로 공동 개발을 그만두게 됐다. 이후 칠레와의 협력을 시도했는데 이미 리튬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칠레는 포스코와의 협력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은 아르헨티나와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2016년 2월부터 현지에서 리튬 시험 생산에 돌입했다.

-아르헨티나와의 리튬 협력이 가능했던 배경은.

△아르헨티나는 칠레보다 강수량이 많아 리튬 추출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우리가 독자 개발한 추출기술을 접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RIST 원장 재직 당시 개발을 완료한 기술이다. 2차전지 소재 사업을 회사의 핵심 신사업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은 10여년 동안 3대 회장에 걸쳐 일관된 목표 아래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제조업이 위기를 맞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지금 우리 제조업이 맞닥뜨린 위기는 코로나19와 정부 정책이 절반씩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영향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포스코도 올 2·4분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별도 기준 분기 영업적자를 냈을 정도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 정책의 영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과거에는 기업이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지지하고 국민들도 응원을 보냈는데 지금은 기업인을 적폐로 몰아붙이면서 기업가정신이 크게 후퇴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인가.

△단적으로 대기업과 벤처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다. 벤처는 열심히 챙기고 북돋는데 대기업은 온갖 규제를 들이대고 옭아맨다. 한국 경제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눈박이 정책으로는 안 된다. 벤처기업이 성과를 내려면 적어도 5년, 길게는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그런데 지금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제조업 대기업은 어떤가. 정부가 국민 세금을 쏟아붓지 않아도 놓아두면 알아서 열심히 회사를 키우고, 신사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온갖 규제로 발목을 잡으니 이 나라에서 사업하는 게 힘들다는 호소가 쏟아지는 게 아닌가. 벤처는 벤처 나름대로 육성하고 키워야 한다. 다만 대기업에도 그만큼의 애정을 갖고 응원했으면 한다.

-제조업 혁신을 위해서는 장기적 연구개발(R&D)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텐데.

△포스코의 경우 철강·비철강 전문교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총 40여명의 교수들을 선발해 매년 1인당 1억5,000만원선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연구주제는 자유이지만 포스코에 도움이 되는 기초소재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한번 선발되면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는다. 이처럼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를 열심히 연구해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역설적으로 정부의 R&D 지원이 이런 연구를 방해한다. 정부가 주제를 정하면 교수들이 이에 맞춰 연구계획을 작성해 프로젝트를 따는 방식이므로 기초과학 분야에서 성과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의 지출내역을 올리는 회계 시스템이 복잡한데다 필수항목도 수시로 바뀌니 교수들이 회계 처리하느라 연구하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교수들이 중장기 R&D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현장의 애로를 듣고 개선해야 한다.

/정민정논설위원 jminj@sedaily.com



1950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 때 고열로 사경을 헤매자 조모가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했고 ‘철우(鐵宇)’라는 이름을 새로 받았다는 얘기가 유명하다. 성장한 후에는 아호로 삼았다.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캐나다 윈저대 금속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포스코 연구원으로 입사해 기술개발의 외길을 걸었으며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원장을 지냈다. 2011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됐고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2016년 국내 과학기술 분야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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