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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유럽의 배터리 돌진…근심 깊어지는 'K 배터리'[양철민의 인더스트리]

유럽 노스볼트.. 폭스바겐 등에 업고 대규모 계약 수주

중국 CATL은 테슬라 덕에 브랜드가치 및 기술력 높여

테슬라는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하며 판 뒤집기 꾀해

BEP 못넘은 LG화학·삼성SDI·SK이노 배터리 사업에 악재

규모의 경제와 기술 향상 통해 이들 추격 뿌리쳐야





유럽과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역량 강화에 나서며 한국의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산업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유럽은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주도가 돼 여타 전기차 부품과 배터리 간 ‘수직계열화’를 꾀하고 있으며,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배터리 기술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파나소닉·LG화학(051910)·CATL 등으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는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배터리 자체 생산을 계획중이라 또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이 같은 구도 탓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 비중이 내연기관차 대비 아직 3% 수준에 불과한데다 ‘전고체 배터리’ 등 기술난도가 높은 제품은 상용화까지 상당 시일이 걸린다. 각 업체의 전략적 행보에 따라 전기차 생태계가 크게 요동칠 수 있는 구조다. 지금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던 LG화학·삼성SDI(006400)·SK이노베이션(096770) 등 이른바 ‘K 배터리 3사’로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 있는 셈이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BMW는 5시리즈 전기차 ‘i5’ 출시 계획을 최근 공개하며 이미 출시한 ‘i3’와 내년 출시 예정인 ‘i4’ 등으로 전기차 시장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BMW는 이와 함께 설립된지 4년밖에 안된 신생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와 20억유로 규모의 배터리 계약 체결 소식을 알리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에 따라 노스볼트는 오는 2024년부터 BMW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돼 삼성SDI, CATL과 함께 BMW의 3대 공급사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배터리 업계 ‘신참’에 불과한 노스볼트의 이 같은 빠른 성장세의 배경에는 이른바 ‘디젤 게이트’ 이후 전기차 시장 개척에 올인하고 있는 독일 폭스바겐이 자리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노스볼트와 함께 유럽 최대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밝히는 등 전기차용 배터리를 자체 조달을 계획 중이다. 폭스바겐은 오는 2025년 판매량 기준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가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폭스바겐이 특정 배터리 업체에 힘을 실어주거나 자체 생산에 나설 경우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럽연합(EU) 또한 34개 파트너사와 손잡고 미래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개발 프로젝트인 ‘빅-맵( BIG-MAP)’을 가동하며 폭스바겐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유럽 내부에서는 ‘왜 전기차 가격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배터리 시장을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게 내줘야 하냐’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세계 최대 화학사인 독일 바스프, 프랑스 석유화학 업체 토탈의 자회사 사프트 등이 배터리 사업 진출을 꾀하며 유럽 배터리 시장이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기술력에서 한수 아래로 평가받는 중국은 보조금을 통한 자국 기업 육성 및 글로벌 전기차 업체와의 제휴를 기반으로 배터리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중국 ‘배터리 굴기’ 선봉에는 현지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닝더신에너지과학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CATL은 이달 테슬라의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 ‘모델3’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공급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 할 기세다.

스마트폰용 배터리 납품업체 ATL이 모태인 CATL은 지난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 24.9%로 1위에 등극하는 등 ‘괄목상대’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다만 중국 시장 밖에서의 점유율은 3% 내외에 불과해 글로벌 경쟁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CATL의 오랜 숙제였다. 반면 CATL은 이달부터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며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게 됐다. 이번에 납품하는 제품은 에너지 밀도를 높여주는 ‘CTP(셀투팩)’ 기술을 적용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다. 해당 제품은 LG화학 등이 생산 중인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대비 출력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해 향후 CATL의 ‘캐시카우’ 역할을 할 전망이다.

CATL은 내년 말부터 차세대 배터리를 연구할 ‘21C 랩’을 가동해 기술력까지 고도화 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현지 2위 배터리 업체인 BYD는 지난 4월 한번 충전시 600km까지 주행 가능한 ‘블레이드 배터리’ 개발 소식을 공개하는 등 차이나 배터리 굴기가 차츰 현실화 되고 있다.





이 같은 유럽과 중국 배터리 업체의 부상은 한국에 악재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최근 수년간 이익 확보보다는 물량 수주에 집중해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향후 ‘배터리 치킨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유럽·중국·미국에 이어 동남아에도 합작사 설립 계획을 꾀하는 등 공격적 투자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별 업체 상황도 녹록지 않다. LG화학은 신공정을 대거 도입한 폴란드 공장의 낮은 수율로 올 1분기까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실제 올 1분기 기준 LG화학 배터리 전체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51.3%에 불과하다. 지난 2017년 가동률이 67%였다는 점에서 2년새 가동률이 급락했다. 다만 2분기부터는 공정 안정화에 성공하며 폴란드 공장 수율이 80% 후반대까지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의 공격적 투자 기조에도 우려가 제기된다. 올 1분기 기준 LG화학의 부채 규모는 19조7,050억원으로 지난 2018년 말 11조6,220억원과 비교해 15개월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다. 시장에서는 수주 잔고가 많은만큼 이 같은 공격적 투자가 가능하다는 ‘긍정적 신호’로 보지만, 전기차 배터리 부문이 손익분기점(BEP)을 아직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업계에서는 올 하반기에는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BEP를 넘어설 것으로 보지만 막대한 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영업이익 또한 그만큼 빨리 끌어올려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의 ‘소송 리스크’로 최소 수천억원에서 최대 수조원의 추가 비용 지출이 예상된다. ‘캐시카우’라 불리던 정유 부문이 올들어 대규모 손실을 내며 투자 여력이 1년새 크게 줄었다. SK이노베이션은 분리막 자체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양극재는 에코프로(086520)비엠으로부터 공급받는 등 ‘배터리3사’ 중 가장 늦게 사업에 뛰어든 만큼 기술 고도화 등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점도 숙제다.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이 올들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향후 자금 조달 환경도 좋지 않다. 이외에도 국내 배터리 업체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에서 지난해 화재사고 등으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투자 여력이 줄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규모의 경제’ 확보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배터리’ 상용화 등으로 한차원 앞서나간다는 방침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자체 생산하며 주요 업체 중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 받는 LG화학은 현재 양극재 주력 제품인 ‘NCM712’를 보다 출력이 높은 ‘NCM811’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가 2027년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전고체 배터리는 일본 도요타가 관련 특허 보유 1위를 기록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자국 정부 보조금 등 ‘묻지마 지원’을 등에 업은 CATL이나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업체의 전폭적 지원이 예상되는 노스볼트는 한국 배터리 3사의 성장 전략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노스볼트는 지난 연말 홈페이지에 한국인과 일본인 인력 30여명이 근무 중이라 밝히는 등 한국 인력 빼가기로 기술을 업그레이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가 자칫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액정표시장치(LCD)’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폭스바겐은 약 11억유로를 들여 중국 현지 3위 배터리 업체인 궈쉬안 지분을 인수하는 등 ‘유럽-중국’ 동맹이 강화되는 모습도 좋지 않은 신호다.

무엇보다 테슬라가 향후 자체 배터리 생산에 나선다는 전망이 제기돼 전기차 배터리 업계 판도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테슬라는 점유율 기준 글로벌 1·2·3위 업체인 LG화학·CATL·파나소닉을 파트너사로 두고 있는데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 및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라는 엄청난 위상을 자랑한다.

테슬라는 오는 9월 15일 ‘배터리 데이’에서 자체 배터리 제조 기술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테슬라가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납품가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지금까지 테슬라 CEO 일론머스크가 허풍에 가까운 선언을 결국 현실화 시킨 역사를 감안해 볼 때 자체 배터리 생산에 실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삼성·SK·LG 간의 ‘K배터리-자동차’ 동맹에 기대를 걸지만 국내 배터리 업체는 보다 많은 동맹군이 필요하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개월간 글로벌 누적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LG화학(1위· 24.2%), 삼성SDI(4위·6.4%), SK이노베이션(7위·4.1%) 순으로 이들 점유율을 단순 합치더라도 35%에 육박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세계 최고 자동차 부품 업체인 독일 보쉬가 2년전 진출 포기를 선언할 정도로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다”며 “다만 전기차 업체가 배터리 업체 대비 아직까지 ‘갑’일 수밖에 없는데다 전고체 배터리 등 화학부문의 기술 진보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 돼 한국 배터리 3사만의 ‘분전’만으로는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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