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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제이알운용 대표 "유학때 접한 부동산금융이 인생 바꿔…내 노후자산 리츠에 투자"[CEO&스토리]

학업열망에 한은 그만두고 와튼스쿨 진학

부동산PF 연구조교로 '부동산쟁이' 첫발

KDI→경제학 교수→부동산운용사 설립

한국리츠협회장 역임하며 대중화 팔걷어

"리츠 확실한 배당…노후대비 안전 투자처"

김관영 제이알투자운용 대표가 서울 중구 을지로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권욱기자




국내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여겨지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지난 1979년 24세 때 한국은행에 입사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갓 졸업한 뒤 유학까지 염두에 둔 대학생에게 한은 조사부 업무는 별천지였다. 시장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였다.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됐지만 학업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 없어 입사 3년 만인 1982년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펜실베이니아대 MBA(와튼스쿨) 재무관리박사 학위를 목표로 유학길에 올랐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공부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대학 선배가 제안한 부동산프로젝트연구실의 연구조교 자리를 받아들인 것이 이후 평생 이어진 ‘부동산쟁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다음달 초 국내 첫 해외 부동산리츠인 ‘제이알글로벌리츠’ 상장을 앞둔 제이알투자운용의 김관영(64·사진) 대표 이야기다.

김 대표가 유학한 시기는 별도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재무관리의 한 부분에 가까웠던 부동산이 미국 부동산 투자가 늘며 독립적인 학문으로 막 발전해나가던 때였다. 김 대표는 “부동산 프로젝트를 해보니 재미도 있고 나와도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도 부동산금융 투자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며 “당시에도 부동산은 투기라는 인식이 강해서였는지 부모님이 돈 들여 미국 보내놓았더니 투기를 배우겠다고 한다며 아쉬워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진로는 김 대표에게 기회의 문이 됐다. 1987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합류했다. 이듬해인 1988년부터 3저(저유가·저금리·저원화가치) 현상에 따른 경기호황으로 국내 전셋값이 폭등하며 보증금이 없어 자살하는 세입자의 사연이 연일 보도될 정도로 주택난이 심해졌고 토지공개념이 정립되며 분당과 일산·평촌 등 1기 신도시에 주택 200만가구 건설 사업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KDI의 특성상 정책적 결정을 이론적 근거로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고 설명했다.

이때 연구한 부동산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고민은 국내 첫 해외 부동산리츠 상장 결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KDI 생활을 정리하고 1994년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한 뒤 금융과 거시경제를 가르쳤다. 하지만 유학과 KDI 연구원 재직 중 접해본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부동산 컨설팅을 꾸준히 하며 기회를 엿보던 중 결국 2003년 부동산투자 업계에 발을 들였다.

김 대표는 “교수 몇몇이 의기투합해 2001년 부동산(Real Estate)의 영어 약자를 따 ‘저스트알’이라는 부동산투자자문사를 차리고 대표를 맡으면서 상업용 부동산투자 업계에 발을 들였다”고 소개했다. 대표이기는 하나 공동운영의 성격이 강해 자산운용 업계를 맛본 정도에 그쳤고 교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자산운용 업계 뛰어든 것은 2008년이었다. 1999년부터 10년간 현대산업개발 대표,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지낸 이방주 제이알투자운용 회장과의 인연이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김 대표는 “이방주 한국주택협회 회장이 당시 자문교수들을 모았는데 제가 그중 하나였다”며 “프랑스 칸에서 열린 미핌(MIPIM·세계 최대 부동산박람회) 같은 부동산 관련 행사를 이 회장과 함께 다니며 앞으로 커갈 부동산자산운용업을 같이 한번 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부동산운용 업계에 몇 안 되는 교수 출신 최고경영자(CEO)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과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부동산금융의 저변을 넓혀왔다. 현재 학계에는 김 대표가 가르친 학생들 중 증권사와 운용사의 부동산금융 관련 임원인 인재들도 많다.

김관영 제이알투자운용 대표가 서울 중구 을지로 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권욱기자


김 대표는 한국 부동산운용의 1세대이면서 특히 한국 리츠 산업의 산 역사이기도 하다. 국내 1호 상장 리츠인 맥쿼리인프라가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상장하는 과정에서 이 SPC의 대표이사를 맡은 이력이 시작이다. 이후 2013년 2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국리츠협회장을 지내며 일부 상장 리츠의 모럴해저드로 위기에 처한 리츠 업계를 추스르고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금융당국을 설득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리츠의 장점을 설명하며 홍보대사임을 자처했다. 임기가 끝난 뒤 현실이 된 코스피 상장 매출액 요건 완화(300억원→70억원)와 사모펀드(기관투자가 40% 이하) 등록제에서 인가제 전환 등 리츠 산업 규제 완화의 터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츠 자산관리회사의 자산운용사 겸영 허가도 그의 공로다. 우량자산을 담은 상장 리츠가 많아져야 우리나라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성장하고 개인의 부동산 투기도 흡수할 수 있으며 개인의 안정적인 은퇴자산 마련이 쉬워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는 김 대표의 지론은 제이알글로벌리츠 청약과정에서 국내 최초로 도입된 소액 우선 배정 공모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는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물량 4,800만주(2,400억원)의 절반인 2,400만주(1,200억원)까지 일반청약자의 청약금액 중 100만원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우선 배정했다.

그래서일까. 김 대표는 향후 공모 리츠 시장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김 대표는 “최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주가 변동성이 작아 ‘재미없는 주식’으로 여겨지는 리츠의 인기가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안정적이고 확실한 배당으로 은퇴를 대비한 노후자산 투자처로서 리츠를 첫손에 꼽을 만하다”며 “미국과 호주·일본·싱가포르 등과 같은 ‘공모 리츠 전성시대’가 한국에서도 머잖아 열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어 김 대표는 “국내는 공모리츠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상장된 리츠가 15~20개 정도 되고 배당 경험이 생기면 좋은 투자상품이라는 인식이 확대될 것”이라며 “제이알투자운용도 이를 위해 앞으로 임대료 수입이 안정적인 물류창고와 오피스 등에 대한 리츠를 더 상장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내내 리츠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나타낸 그는 “은퇴 후 내 노후자산도 리츠로 구성할 계획”이라며 웃어 보였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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