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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떠나고…시민운동세력 '도덕성' 심판대 올랐다

"4년간 위력에 의한 성추행 지속"

변호인·여성단체 긴급 기자회견

약자 보호·배려 등 강조했지만

성추행 의혹에 도덕성 평가절하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성형주기자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닷새간의 장례 절차를 마치고 고향인 경남 창녕에 영면한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는 박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여성 측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이날 “피해여성이 4년간 위력에 의한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며 “제대로 된 수사와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시장은 한국 사회의 진보와 혁신을 이끌며 수많은 이정표를 세웠지만 떠나는 순간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던졌다.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성추행 의혹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변호했고,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며 줄곧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해온 그였기에 성추행 의혹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성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사후에라도 성추행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다.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 역시 고통을 호소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점점 심해진 가해의 수위…도움 요청했지만 서울시도 묵살했다”


“우리가 접한 피해 사실은 비서가 시장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업무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를 접촉하고, 사진을 전송하는 등 전형적인 권력과 위력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범행은 피해자가 비서직을 수행한 기간뿐 아니라 다른 부서로 발령 난 후에도 지속됐습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피해 호소인 측이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성형주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한 피해호소인 A씨와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피해 여성에 대한 박 시장의 범행은 시간이 갈수록 수위가 높아졌다. 피해여성 A씨는 서울시 측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묵살당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가 시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내부에서는 ‘단순실수로 받아들이거나 사소하다’고 반응해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며 “점점 가해의 수위가 심각해지고 부서를 옮긴 뒤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경찰과 서울시 측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고소인이 부재하다고 해도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지 않는다”며 “서울시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조사단 구성해 진상을 밝혀야 하고 정부와 국회도 피해자 호소를 외면 말고 책임 있는 행보 위한 계획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 떠나는 날 열린 회견…‘발인날 이래야했나’ VS “최대 예우 지킨 것”


피해 여성 측이 박 시장의 발인 날인 13일 기자회견을 진행한 부분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앞서 박 시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피해 호소인 측 기자회견에 앞서 “생이별을 겪고 있는 유족들이 온전히 눈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고인과 관련된 금일 기자회견을 재고해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시청에서 진행된 영결식 이후 고향인 경남 창녕에서 영면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을 돕고 있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피해자에게 큰 부담과 압력이 되는 2차 피해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 엄중한 시각을 미룰 수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미경 소장 역시 “장례기간을 최대한 기다린 후 오늘 발인을 마친 오후에 기자회견을 연 것”이라며 “저희 나름대로는 최대 예우를 갖춘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피해자의 글을 대독하기도 했다. 글에 따르면 피해여성은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며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고 썼다. 또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헤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냐. 나와 내 가족이 고통의 일상에서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편 경찰 고위관계자는 “피고소인인 박 시장이 사망한 만큼 이번 고소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며 수사종결 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경찰은 고소인 측의 요청에 따라 관할경찰서를 통해 고소인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갈등 심각.."포용과 협치 어느때보다 중요해"


박 시장은 공인으로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유산을 남기고 떠난 인물이다. 그가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3선 서울시장을 지내면서 사회 발전과 혁신에 기여한 공로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성추행 의혹 속에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생을 마감하면서 그가 평생에 걸쳐 몸으로 실천한 사회적 약자 보호와 배려, 연대와 소통의 가치도 평가절하되는 분위기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정이 13일 서울시청에서 영결식을 마친 후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권욱기자


박 시장의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뤄지겠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도덕성을 최고 가치로 내세우며 어느덧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은 민주화·시민운동 세력에 큰 숙제를 남겼다. 또 박 시장의 장례방식과 조문 논란에 이어 최근 타계한 고(故) 백선엽 장군의 현충원 안장 논란까지 겹치면서 우리 사회는 또다시 두 동강 났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진영 간 대결 양상이 재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이념·진영 간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국민적 피로감은 물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포용과 협치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의 사망으로 인해 성추행 의혹이 제대로 규명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지도층의 성인지 감수성을 가다듬고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는 “사회 변화에 앞장서 온 사람들 안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그것을 바꾸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영·심기문·성행경·이지성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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