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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웨이크 섬





1941년 12월7일 아침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 공격을 개시한 지 1시간 뒤 서태평양의 한 작은 섬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미군기지의 비행기 8대와 비행장이 파괴되고 미 해병대원 23명이 죽었다. 사흘 뒤에는 일본 함대가 상륙작전에 나섰다. 미군 해안포의 공격으로 일본 구축함이 격침돼 160여명의 승조원이 몰살됐다. 일본군은 2주일이 지나서야 이 섬을 점령했다. 미국 전사(戰史)는 이 전투를 미 민병수비대가 텍사스주에서 멕시코군을 상대로 싸웠던 ‘알라모 전투’에 견줄 정도로 높이 평가한다. 바로 태평양전쟁 당시 미일 간에 벌어졌던 ‘웨이크(Wake)섬 전투’다.

웨이크섬은 하와이 서쪽 3,700㎞, 괌 동쪽 2,430㎞, 일본 남쪽 3,204㎞에 위치한 산호섬이다. 면적은 7.4㎢로 여의도의 두 배 정도이고 전체 해안선 길이가 19㎞에 불과할 정도로 크지 않다. 1588년 스페인의 탐험가 알바로 데 멘다냐 데 네이라가 발견했고 1796년 영국의 W 웨이크가 찾은 후 ‘웨이크 섬’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898년 미국이 필리핀과 괌을 식민지로 삼고 하와이를 병합한 뒤 중간 기착지로 무인도였던 이곳을 점령했다. 비행기가 개발된 뒤 미국은 1935년에 이 섬에 활주로를 만든 데 이어 1939년에는 아예 일본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군사기지로 건설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잠시 점령했지만 전쟁 후 미군기지로 복구됐다. 6·25전쟁 때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이곳에서 비밀회담을 했다.



최근 미중 갈등 이후 웨이크섬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괌보다도 더 먼 5,000㎞나 떨어져 있어서 중국이나 북한의 중거리미사일이 쉽게 타격할 수 없다. 미국이 올해 초 이 섬의 활주로를 대규모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해 최근 완료했다. 미 국방부는 최근 수년 동안 수억달러를 들여 이곳에 재무장·재급유를 위한 보급시설을 확충하는 등 군사요새로 만들었다. 이곳이 중국 공격을 위한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중국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 우리의 안보 좌표를 재점검해봐야 할 때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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